한글대장경 제82권

천경집 발문(跋文)

oṃ maṇi padme hūṃ 2026. 3. 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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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불초 손 지탁(不肖孫知濯)이 젊어서 함월 선조(涵月先祖)를 설봉 정사(雪峰精舍)에서 뵈었으나, 一生을 모시지 못하고 그대로 더나 멀리 놀기를 마치 궁자(窮子)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하였었다. 그러다가 이제 불초의 나이 七十二에 선사(先師)의 유고(遺稿)를 보고는 감개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즉 이것이 이른바 고, , 무상(苦空無常)이라는 것인가? 어제 티끌을 날리던 곳이 지금은 푸른 바다가 되었구나. 선사의 수자(手滋)가 백년 뒤의 우리들에게까지 미쳐 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구나.

 그러나 선사는 서래(西來)의 무문인자(無文印子)를 찼으니, 어찌 언어나 문자로써 불조(佛祖)의 알 수 없는 그 경지에 이르려 하였으랴? 말해 본다면 선사의 본회(本懷)로는 이 유고를 불살라 버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三교() 성현의 책과 제자 백가(諸子百家)의 학설 등, 천하 고금의 글들이 산처럼 많이 쌓였는데, 선사의 한 권 유고도 그 속에 끼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많은 것과 이 한 권이 다른가, 다르지 않은가? 다르면 저것은 많고 이것은 적은 것이며, 다르지 않다면 이 한 권의 글이 저 많은 이치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니 여기서 비로소 선사가 일찌기 문자를 떠나지 않고 해탈을 말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들었다. 즉 본사 능인씨(本師能仁氏)는 四十九년 동안 일찌기 한 자도 말하지 안했으며, 지난 겁()의 八천 번에도 일찌기 한자도 말하지 안했고, 그리고 달마(達摩)가 서방에서 와서 문자를 세우지 않은 것이나, 내지 천 七백의 공안(公案)이 다 문자를 떠난 소식이다. 그런데 어찌 선사만이 홀로 말이 있겠는가? 이 말이란 실은 선사의 실법(實法)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저 운문 고(雲門杲)가 벽암서(碧岩書)를 불사른 뒤에 참으로 그 선사의 도덕을 저버리지 않은 것과 같다. 옮기는 진실로 옳으나 옛날 한산(寒山), 습득(拾得)에게 무슨 문자가 있었겠는가? 당인(唐人)들이 옛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목엽당(木葉堂) 벽에서 그것을 수습하여 한산시 一권이 세상에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이 선사에겐들 무슨 문자가 있겠는가마는 그 문인들이 잊지 못하기 때문에 응기(應機) 접물처(接物處)에서 기억해 얻어 「천경집」 一권을 그 자손들에게 끼쳐 주게 한 것이다.

 불초손 화악 지탁(不肖孫華岳知濯)이 삼가 발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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