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대장경 제82권

편양당집 서(鞭羊堂集序)

oṃ maṇi padme hūṃ 2026. 3. 6. 23:30

 편양당집 서(鞭羊堂集序)

 

 불가에서 돈오(頓悟)와 현해(懸解)로 도에 들어간다면 언어를 기다릴 것 없는 것이며, 삼승(三乘)과 보제(普濟)로 교()를 설명한다면 언어가 아니고는 넓이 개유할 수 없다.

 그렇다며는 불가에 언어가 있는가 없는가. 대체로 항하(恒河)로 성품을 비유하고 연화(蓮花)로 마음을 지적한 四十二장(), 三천대장(大藏)과 성문(聲聞)의 인연으로 결과를 이룸을 풀이 한 것과 동수(童壽)가 날마다 일천계률을 번역한 것이 모두 부처가 대중에게 열어보여, 여러 미혹함을 깨닫게 한 것이니 부처인들 어찌 일찍이 언어를 그만 두었겠는가.

 무릇 이 석가의 신통(神通)으로 스승이 되고, 아난(阿難)의 각혜(覺慧)를 얻어 제자를 삼아도 역시 언어를 그만 둘 수 없었는데, 하물며 뒷 세상의 말류(末流)로 석가가 가르치지 아니하고 아난같은 이가 아님에야, 또 어찌 언어를 그만 둘 수 있으리요.

 불법이 중국에 들어와 흘러 동토(東土)에 퍼진지 또한 수천년이라, 호걸스러운 분들이 은미(隱微)한 언어로 가르침을 부촉하여 대대로 잇는 사람이 있었다.

 고려 시대 태고화상(太古和尙)이란 이가 하무산(霞霧山)에 들어가 석옥(石屋)에게서 임제(臨濟)의 진종(眞宗)을 얻어 여덟번 전하여 서산(西山) 대사에 이르고, 크게 현묘한 바람을 일으키니 남긴 글이 갖추어져 있고, 또 전하여 편양자(鞭羊子)를 얻으니 실로 서산(西山)의 적사(嫡嗣)이다.

 편양자의 속성(俗性)은 장씨(張氏)이고 호는 언기(彦機)인데 모친에게 특이한 꿈이 있었고 출생하니 특이한 성품이 있었다.

 어려서 현빈장노(玄賓長老)에게서 계를 받았고, 장성하여서는 서산대사에게서 인()을 증명받았다. 두루 여러 노숙(老宿)을 찾아 그 의심을 정()하였고 대승(大乘)을 깊이 탐구하여 그 학업을 모았으며, 도를 이룬 뒤에는 당()을 열어 두고 편안히 앉아 일찍 산을  나서지 않았으나 덕업(德業)은 나날이 높아지고 명예(馨聞)는 나날이 전파되어 문하에 들어와 배우고 질문하는 자의 신발이 뜰에 가득하였다.

 타고난 자질이 간요(簡要)하고 원대하여 언제나 정묵(靜嘿)하였고 기봉(機鋒)을 밖으로 거두고 신명(神明)을 안으로 빛이며 수발(受發)한 기운이 조금 미목 사이에 노출되어 있었다.

 세속일을 하거나 법좌(法座)에 올라도 사람과 더불어 차별함이 없고, 말씀은 맑고 간편하여 한마디로 이치를 분석하니, 목마른 자가 강물을 마신듯 하고, ()를 갔다가 실()로 돌아가곤 하였다.

 또 가려서 버리는 것으로 시와 문을 하였는데 잡스러움을 뽑아버리고 기틀을 새롭게 함이 붓을 잡고 얽어서, 한때 이름을 구하려는 자가 갑자기 얻어서 그 길고 짧음을 견줄바가 못되니, 역시 그 하늘에서 받은 것이 온전함을 볼 수 있다.

 고인이 말하기를 「혜원(惠遠)은 덕스러운 도량이 장하고 도림(道林)은 재치(才致)가 승()하다」하였는데 이 둘을 겸비한 자는 오직 편양자로다.

 일찍이 풍악산 천덕사(天德寺), 구룡산(九龍山) 대승암(大乘庵) 묘향산 천수암(天授庵)에 머물었고, 마침내 갑신(甲申) 五월에 서악(西岳) 내원(內院)에서 시적(示寂)하니, 수를 헤아려 보니 겨우 六十四이고 납()을 셈하여 보니 五十三이다.

 문도(門徒) 수 백명이 삼가 법에 의하여 뒷일을 맡아 유감없이 하였고, 이미 신주(神珠) 다섯을 거두어 보현사(普賢寺)의 남쪽 산마루에 석종(石鍾)을 세웠으며, 또 행적을 뽑아 동서양악(東西兩岳)에 비를 새기었으며, 일을 마치고 그 큰 제자 설청(說淸)이 스님이 남긴 글 몇권을 지고 남으로 천 여리를 아술호(牙述湖) 위에 달려와 서문을 동주거사(東州居士)에게 물으니 거사는 편양자와 큰 인연이 있어 공문(空門)의 사귐이 매우 심후한지라,

 「나는 있는데 네 스승은 잃었구나. 누가 일러주어 네 스승의 지나버린 그림자와 남긴 자취로 나를 슬피 눈물 흘리게 하는가.」하였다.

 그리고 다시 말하였다. 「네가 지고온 책은 편양자의 언어이지 석가씨의 언어가 아니로다. 그러나 석가씨라도 능히 그 언어란 것을 그만 둘 수 없었는데 편양자인들 어찌 능히 그 언어를 그만 둘 수 있었겠는가.

 편양자의 언어와 행동이 곧 석가씨의 언어요 행동이니 너의 무리가 편양자의 언어 전하기를 역시 석가씨의 언어 전하는 것과 같이 한다면 그것이 반드시 전하여 질 것을 의심하지 않으리라.

 슬프다. 거사는 서토(西土)에 있으면서 편양자와 납월회일(臘月晦日)의 일을 논의하여 갈등이 자못 번거로왔는데, 이제 편양자는 이미 알았건마는 돌아보니 아직 아지못한 자는 예 처럼 새벽닭 저녁 종에 실로 인간 세대의 느낌이 있어 아울러 한 마디 기록하노라.

 정해(丁亥) 동주산인(東州山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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