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대장경 제82권

천경집(天鏡集) 하 권

oṃ maṇi padme hūṃ 2026. 3. 3. 00:04

 천경집(天鏡集) 하 권

 

 해원(海源) 지음

 

 고원군 구룡산 대승암 사적(高原郡九龍山大乘庵事蹟)

 

 흐르기 쉬운 것은 세월이요 기록하기 어려운 것은 사적이다. 사적도 글이 아니면 고금에 전할 수 없고, 세월도 기록이 아니면 시종(始終)의 때를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비루한 글로써 그 흥폐(興廢)의 대강을 간단히 적는 것이다.

 험준한 산세가 멀리 백두산의 맥을 이어 북고주(北高州)의 서쪽에 떨어져 산이 되었으니 그것을 구룡산이라 한다. 구룡이란 비로봉(毘盧峰) 밑에 구룡연(九龍淵)이 있기 때문이다.

 九는 양수(陽數)의 극()이요 용은 음물의 큰 것이다. 음양의 二의()가 조화(造化)를 얽히어서 영구(靈區)를 빚어내어 세상에 나타낸 것이다.

 그 중간에 대승(大乘)이라는 암자가 있으니, 그것은 고금의 고명(高明)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여기 살면서 위없는 대승의 이치를 강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력(萬曆) 경인년 봄에 서산 청허(西山淸虛) 대사가 여기 와서 머물렀으니 즉 선조조(宣祖朝)였으며, 왜화(倭畵) 병풍 二좌()와 은사(銀絲)향로 一좌와 금자(金字) 화엄경 一축()이 지금도 남아 전하는데, 그것은 선조의 내리신 물건이니 더욱 이물(異物)이라 할 것이다. 그 뒤에 송운(松雲), 편양(鞭羊), 풍담(楓譚), 월저(月渚) 등이 차례로 여기 와서 종풍을 크게 떨쳤으니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이른바 저 부춘(富春)의 산수도 엄릉(嚴陵)의 숨은 자취가 아니었?면 세상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요, 상산(商山)의 천석(泉石)도 사호(四皓)의 높은 행적이 아니었?면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이 지금 이 구룡산의 밝은 산과 고운 물도 청허, 송운 등, 여러 대사의 내왕한 높은 발자취가 없었던들 천지 사이에 버려진 하나의 언덕이 되어 반드시 인간 세상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 암자는 언제 창건 되었는가? 혹은 말하기를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라 하고, 혹은 아조(我朝)의 초기라 한다. 세상이 멀고 사람이 없어지니 고적이 아득하여 마치 [1]서계(書契) 이전에 있는 것 같아, 초창 연대를 상고 할 길이 없다.

 융경년(隆慶年) 간에 산승 의순(山僧義淳)이 三창()했다는 자취가 판기(板記)에 실려 있고, 강희(康熙) 경사년에 四창한 것이 건륭(乾隆) 기미년 봄에 화재를 만났으며 경신년 봄과 여름에 걸쳐 중건한 것이 이 암자 ?폐의 대강일 뿐이다.

 또 전후 三창할 때에는 상량하는 날마다 비상히 큰 새가 날아와 들보 위에 앉아 세 번 울고는 날개를 치면서 날아갔다 하니, 이것은 무슨 징표였던가? 옛 사람 말에 「성인이 나려면 봉황이 먼저 온다」하였으니 의심컨대 천추 사이에 신승(神僧)이 나올 것이라는 것인가?

 옛날에는 이 암자 곁에 九암이 있었다고 한다. 즉 각원(覺圓), 도성(道成), 비로(毗盧), 상암(上庵), 고대승(古大乘), 심적(深寂), 송대(松台), 중암(中庵), 그리고 환희암(歡喜庵)인데 九암 가운데 남아 있는 하나가 곧 원각암이다. 옛 말에 「의신암(義信庵)이 뒤에 여기서 도를 이루었기 때문에 공신(空神)의 청에 감동하여 원각암」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한다. 옛날에 九암이 있은 것도 九룡에 응해 세운 것이리라. 그러나 전기가 없기 때문에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진년에 내 문인(門人) 월송 찬천(月松) 대사가 삼가 청허 · 송운 두 대사의 진영(眞影)을 그려 전각(殿閣)에 봉안하고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으니 이른바 [2]규모(葵慕)의 정성이 돈독하고 또 은근하다 할 수 있다.

 이 산이 무너지지 않으면 이 암자가 폐하지 않을 것이요 이 암자가 폐하지 않으면 이 진영도 천추에 전하여 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성승(聖僧)의 진영을 봉안하였은즉 지기(地祗)가 옹호하고 八부()가 받들 것이니 암자는 이것을 얻어 더욱 견고해질 것이요 산은 이것을 얻어 빛날 것이다. 누가 일러 후세에 이익이 없다 할 것인가. 뒤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계유년 봄과 여름에 七간의 큰 집과 상중단(上中壇)의 탱화와 九백여의 재물을 갖추어 그리고 색칠하니, 그것은 다 월송(月松) 대사의 절풍 목우(櫛風沐雨)한 고통과 노형 고골(勞形苦骨)한 공이니 그 공이야말로 큰 것이다.

 자세한 기록이 없고 옛일을 전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한갖 관견(管見)으로 그 사적을 주워 모으는 것이니, 이른바 옥을 쪼아 옥을 흠 내는 것이라, 식자들의 꾸지람을 면하지 못할까 두려워 한다.

 

 환성 화상 행장(喚惺和尙行狀)

 

 대개 행장이란 숨기기도 어렵고 기술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살아서 어질지 않았는데 죽어서 어질다고 일컬으면 남의 웃음을 사는 것이요, 살아서 도가 있었는데 죽어서 나타냄이 없으면 남의 비방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 세상 사람의 비방과 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사의 일생을 대강 적어 본다.

 화상의 휘()는 지안(志安)이요, 자는 삼낙(三諾)이며, 호는 환성(喚惺)이니 그 향정(鄕井)은 춘천(春川)이다. 속성(俗姓)은 정()씨로서 강희(康熙)갑진 六월 十일에 나서 옹정(雍正) 기유 七월 七일에 세상을 마치시니, [3]동신(東身)에 응한지 六十 六춘()이요 [4]서계(西戒)를 받은지 五十 一하()였다.

 十五세에 출가하여 상봉 대사(箱峰大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十七세에 입학(入學)하여 월담 화상(月譚和尙)에게서 법을 이어 받으니 그는 곧 청허(淸虛)의 五대() 적손(嫡孫)이다. 또 화엄종(華嚴宗)의 모운 진언(慕雲震言) 화상에게 나아가 처음으로 그 당()에 올랐다.

 형기(形氣)는 위무(威武)하고 성운(聲韻)은 청원(淸遠)하여, 거처는 일정하지 않았으나 가는 곳마다 법려(法侶)들이 문정(門庭)에 가득 찼었다. 교의(敎義)를 논()하면 양양(洋洋)히 파도가 만 이랑이요, 선지(禪旨)를 굴리면 의연(嶷然)히 애안(崖岸)이 천 길이었다.  그래서 지금 해내(海內)에서 농선(弄禪)하고 통교(通敎)한 자들은 다 선사의 풍격(風格)이니, 이른바 전단(栴檀)을 옮겨 심으면 다른 물건에서도 다 같이 향기가 나는 것과 같다.

 연하(烟霞)를 밟아 선()을 닦는 곳과 법당(法幢)을 세워 교()를 강하는 곳은 즉 관동(關東)의 풍악(楓岳)과 관북(關北)의 황룡(黃龍)과 춘천(春川)의 청평(淸平), 지평(砥平)의 용문(龍門), 광주(廣州)의 청계(淸溪), 강릉(江陵)의 오대(五臺), 안동(安東)의 태백(太白), 보은(報恩)의 속리(俗離), 공주(公州)의 계룡(鷄龍), 상주(尙州)의 대승(大乘), 문경(聞慶)의 양산(陽山), 예천(醴川)의 대곡(大谷), 청도(淸道)의 운문(雲門), 자인(慈仁)의 반룡(盤龍), 순흥(順興)의 부석(浮石), 성주(星州)의 쌍계(雙溪), 금산(金山)의 직지(直指), 산음(山陰)의 지곡(智谷), 내지 호남(湖南)의 크고 작은 명찰(名刹)로서 그의 교화한 곳이 아님이 없지마는 번거로움을 피해 다 적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다 천지 사이에 소요하는 일대(一大) 한활계(閑活計)인 것이다.

 갑진년 봄에 금산사(金山寺)에서 화엄법회(華嚴法會)를 개설하였을 때는 법중(法衆)이 천 백여인이었으니, 영산(靈山)과 의희()하고 기원(祗園)과 방불하다. 그 도를 높이고 그 덕을 우러르는 대중의 입이 바로 비()이거니 어찌 따로 붓에 있겠는가. 아아, 그 영대(靈臺)와 신우(神宇)는 우러를 수는 있어도 엿볼 수는 없으며, 그 법해(法海)와 지원(智源)은 건널 수는 있어도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영적(靈跡)이 많지마는 대강 말하면 四종이 있다. 즉 한라산(漢羅山) 위의 입적(入寂)의 비()와 청평사(淸平寺) 속의 거듭 온다는 참()과 우중(雨中)의 두 번 죽을 것을 면한 것과 꿈 속에서 두 귀절()의 시를 얻은 것이다.

 이른바 재()를 베푼지 백일만에 두 귀절의 시를 얻었으니 그것은 「담득수미도대해(擔得須彌渡大海), 대시문개초리행(大施門開草裏行)」이다. 꿈 속에 이 시를 준 사람이 스스로 말하기를 「근노사(勤老師)」라 하였으니 이가 곧 나옹 혜근(懶翁惠勤)이다. 이 시의 뜻은 「큰 법을 짊어지고 모든 미한 중생을 두루 교화한다」는 조짐으로써, 이것이 그 첫째이다.

 정유년 七월에는 금강산 정양사(正陽寺)에 머물고 있었다. 마침 큰 비를 만났는데, 갑자기 고향으로 가게 되어 어느 동가(洞家)에 이르렀다. 그 집은 집도 크고 사람도 후()하여 유숙할 만하였지마는, 다시 그 인근의 오막살이로 찾아갔는데 겨우 용신(容身)할 수 있는 집이었다. 그 날 밤에 먼저 들었던 그 절과 그 집은 물이 들어 二十여명이 죽었다. 하룻밤 사이에 두 번 죽을 변을 면한 것은 실로 하늘이 돕고 신이 보호한 것이니 이것이 그 둘째이다.

 청평사(淸平寺)는 고려초에 서천(西天)의 박달다 존자(博達多尊者)가 세운 절로서 허물어져 빈 터가 되었는데, 화상의 지팡이가 여기 이르르자 폐허가 된 것을 모두 복구시켰다. 그 절 정문 밖에 쌍연(雙淵)이 있는데 그것은 존자가 판 것이다. 사람을 시켜 그것을 다시 파는데 한 조각 단비(斷碑)를 얻었다. 그 비에 참()이 있는데 「유충관부천리래(儒衷冠婦千里來)」라 하였다. 어떤 이가 해석하기를

 「유()는 곧 선비()요 충()은 곧 마음이며 관부(冠婦)는 곧 여자가 갓을 쓴 것이니 안()자요 천리(千里)는 곧 중()자이니 이것을 합해 말하면 지안 중래(志安重來 ···지안이 거듭 온다)라는 참()이다」

하였다. 그것은 존자가 예언한 것인가? 이것이 그 세째이다.

 한라도(漢羅島)에 부처가 있는데 그 배면에 「삼성입적처(三聖入寂處 ·· 세 성인이 입적할 곳이다)」라고 하였다. 저 중국의 정법(正法)보살이 여기서 열반하였고 그 백년 뒤에 다시 동국(東國)의 허응(虛應) 대사가 여기서 입적하였으며 그 뒤에 또 우리 화상이 여기서 입적하였다. 참으로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다. 입적하실 때에는 사흘 동안 끊이지 않고 산이 울고 바다가 끓었으며, [5]역책(易簀)하는 저녁에는 여러 날 동안 천지의 상서가 끊이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 네째이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이적(異跡)은 온 세상의 치속(緇俗)들이 다 환히 아는 사실이니, 만일 이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방을 받을 것이요, 만일 교묘한 말로 거짓을 꾸민다면 이른바 살아서는 현인이 아닌데 죽어서 현인이라 일컫는 것이니, 세상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한 선사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라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아아, 오랫동안 염소 창자 같은 세상 길을 밟으면서 호랑이 뿔 같은 인정을 살피지 못하고 잠깐 남의 모함의 틀에 빠져 저 외로운 섬에 귀양간 것은 인욕(忍辱) 선인의 가리왕(歌利王)에 대한 것과 사자(師子) 존자의 계빈왕(罽賓王)에 대한 것으로서 그 묵은 빚을 갚은 것이니, 그러므로 화상에 있어서는 그 해가 없거늘 그 자손에 있어선들 어찌 그 원한이 있겠는가.

 평소에 세상을 따른 사적이 별처럼 많으나 조그만 재주도 다 적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밝은 행실의 만분지 일이나마 대강 적어 행장으로 삼는 것이다.

 숭정 기원(崇禎紀元) 후 두 번째 경오 봄에 문인 해원(門人海源)이 삼가 지음

 

 이선 경위록(二禪涇渭錄)

 

 二선()이란 여래선(如來禪)과 조사선(祖師禪)이다.

 옛날 二조()는 달마(達摩)에게 나아가 인연의 문답으로 여래선을 알았고 법인(法印)의 문답으로 조사선을 알았다. 또 방공(龐公)은 석두(石頭)에게 여래선을 알았고 마조(馬祖)에게서 또한 조사선을 알았다.

 지금 총림(叢林)에서는 여기에 의거하여 말하기를 격외선(格外禪) 가운데 여래선과 조사선이 있고 원돈문(圓頓門)은 곧 의리선(義理禪)이라 한다. 이 주장은 의거하는 데는 있으나 이치에는 당치 않다. 선의 이름에 四종이 있는 것처럼 선의 체()에도 四종이 있어야 한다. 의리선과 격외선의 체는 원래 알 수 있지마는 여래선과 조사선은 무엇을 체로 삼는가? 내 생각으로는 전연 그렇지 않다.

 대개 여래선과 조사선이란 능설(能說)의 사람을 잡아 이름을 세운 것이요 의리선과 격외선은 소설(所說)의 법을 잡아 이름을 세운 것이다.

 대개 여래님이 세상에 나오신 뜻은 다만 진여(眞如)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한 마음의 현로(玄爐)로 모든 모양을 도야(陶冶)하여 한 비로(毗盧)의 면목을 나타내는 것이 곧 원돈문(圓頓門)의 의리선이다.

 또 조사가 서쪽에서 와서 활인검(活人)으로 비로의 굴집을 때려 부수고 본지(本地)의 풍광(風光)을 나타내면 이른바 「이 법의 법위(法位)에 머물러 세간상(世間相)이 항상 머문다」는 것이니 이것이 곧 격외선이다.

 그 뒤로 하택(荷澤)과 홍주(洪州) 등 백여인의 설법은 다 원돈문의 요의(要義)를 근본으로 하였고, 규산(圭山)이 선원집(禪源集)과 별행록(別行錄)을 지어 격외선과 맞서면서 비로소 의리선이라는 이름을 세웠다.

 대개 선교(禪敎)의 사체(事體)의 다름으로 말하면 빙탄(氷炭)의 같지 않음이요 선교의 법체(法體)의 같음으로 말하면 수파(水波)의 다름이 없음이다. 그러므로 청량(淸凉)은 법체의 같음에 의거하여 선지(禪旨)를 합해 밝히면서 말하기를

 「달마의 마음으로 마음에 전하는 소식도 원교(圓敎)의 증입생(證入生)을 벗어나지 못한다.

고 한 것이다. 그러나 원교의 학자들이 [6]허교(虛驕)의 병에 떨어져 선교의 고하를 모르기 때문에 목우자(牧牛子)는 원교의 증입생을 깨뜨리되, 「어로(語路)와 의로(義路)의 자취를 면하지 못한다」함으로써 격외의 경절문(徑截門)을 나타내었은즉, 실로 격외선 가운데 여래선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二조와 방공이 처음으로 깨치고는 여래선을 알았다고 한 것은 처음 깨친 것이 말후(末後)의 굳은 관문을 뚫지 못하고 의로(義路)의 자취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깎아 내려 여래선이라 한 것인데, 어찌 달마와 석두가 격외선을 드날리면서 다시 여래선을 지시했겠는가. 또 격외선 가운데 조사선이 있다 하지만 조사선이 어떻게 격외선이겠는가. 능설(能說)과 소설(所說)의 다름을 너무나 모르는 말이다.

 또 어떤 이는 [7]체중현(體中玄)을 의리선에 배대(配對)하고 [8]구중현(句中玄)[9]현중현(玄中玄)을 여래선에 배대하며, 따로 一구()를 두어 조사선에 배대하는데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체중현을 의리선에 배대하는 것은 실로 그렇다 하겠거니와 구중현을 경절 언구(徑截言句)등이라 하고 현중현을 양구 봉할(良久棒喝)등이라 하니, 어떤 여래선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등의 언구와 양구 봉할 등의 작용이 있던가? 이것은 근거없는 말로서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대개 三현 및 一구는 조사선의 경절문 가운데의 병을 부수려는 말인데, 어찌 여래선에 배대해 보겠는가? 남에게 속임을 받지 않는 눈은 사람마다 진실로 있나니 오직 통달한 사람은 사람으로 말을 버리지 말고, 시험삼아 그 당부(當否)를 사실해 보라.

 

 석왕사사적 후발(釋王寺事蹟後發)

 

 강헌 성조(康獻聖祖)가 용잠(龍潜)으로 계실 때 신승 무학(神僧無學)이 이미 길몽(吉夢)을 풀이하고 또 명험(冥驗)을 아뢰었다.

 그래서 드디어 응진전(應眞殿)을 세우고 인하여 五백 성재(聖齋)를 베풀었으니 이른바 천진(天眞), 진헐(眞歇) 二당()과 인지료(仁智寮), 용비루(龍飛樓) 등이 다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등극(登極)한 뒤에는 명령을 내려 큰 절의 누각과 요사(寮舍)를 창건하니 웅장하고 화려하며 번쩍임이 一도()에 으뜸이었다. 건문(建文) 신사년에는 수레가 친히 가시어 소나무를 골에 심고 배나무를 동산에 심으시니, 지금까지 친히 가시어 소나무를 골에 심고 배나무를 동산에 심으시니, 지금까지 소나무 베는 것을 금하는 것과 배를 나라에 바치는 것도 다 그 때의 성교(聖敎)에 의한 것이다.

 또 불상을 보호하고 경문을 찍어 보내며 나아가서는 노비(奴婢)들을 나누어 주고 전지(田地)를 떼어 주심은  다 세상에 없는 특별한 은전(恩典)인즉 그 성의(聖意)가 이 절을 못잊어 하심이 보통이 아니시었다.

 그러나 아깝다. 여러 번 병화(兵火)를 만나 문적(文跡)이 아주 없어졌다. 정통(正統) 이후의 흥폐와 성훼(成毁)가 얼마인지 모르나 고적이 거의 없어졌으니 지난 일이 아득하여 추인(追認)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비교적 자세하여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오직 근일의 일 뿐이다.

 숭정(崇禎) 기원 후 신사년에 화재가 있었는데, 벽암 각성(碧岩覺性) 대사가 재물을 모아 중건할 때, 그 역사를 임오년에 시작하여 갑신년에 마치니 그 뒤로 임궁(琳宮)과 寶殿이 산골에 즐비하고 푸른 기와 붉은 벽돌이 시내와 못에 번쩍였으니, 선거(禪居)의 웅장함이 이에 그 극치였었다.

 성조(聖朝)가 친필을 한 번 휘둘러 탕잔(蕩殘)된 것을 홀로 보완하시니, 천신(天神)과 지령(地靈)이 아끼고 두호해서 그렇게 했던가? 숙종(肅宗)은 이에 아직 남아 잇는 그 필적에 깊이 감동하고 또 오래 전하는 성심을 가상히 여겨 손수 보결(補缺)하고 인해 발문(跋文)을 써서 마침내 비석까지 새기게 하였다. 건륭 무인년 봄에는 지금 성상(聖上)께서 또 추모기(追慕記)까지 지어 二성()의 어필 밑에 새기셨다. 아아, 세 임금의 글씨가 하루 아침에 비면(碑面)에 빛나니 전후의 동일한 법식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청허기(淸虛記) 및 도선전(道詵傳)을 출판하여 영원하기를 도모하고 또 세 임금의 어필을 간행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구민(龜珉)에 빛나지마는 또한 여러 곳에 널리 펴서 무궁한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송 문인(永松門人)을 대신해서 선사(先師)를 제사하는 글

 

 청구(靑丘)에 자취를 내리시니 그 이름은 널리 들렸다. 평생에 하신 일은 패엽(貝葉), 영문(()())이요, 수월(水月), 선심(禪心)이며 연하(烟霞) 도골(道骨)로서, 그 견고함은 황금과 같고 그 절개는 푸른 솔과 같았다. 계율과 경전을 부지런히 닦으매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티끌 속의 군자요, 세상 밖의 장부인데, 호랑이를 풀어 놓으매 동쪽 골짝으로 가고 물을 가리키매 서쪽으로 흘렀다.

 석화 전광(石火電光) 속에 어느덧 마흔 여섯 하늘이 어찌 돕지 않아 우리의 이 종장(宗匠)을 뺏아 갔는가. 배는 밤 골짝에 잠기고 계수는 가성(佳城)에 꺾이었다. 법의 기둥이 이미 꺾이고 조사의 등불이 또 꺼지니, 달은 선계(禪階)에 어둡고 바람은 이굴(理窟)에 슬퍼하며, 꽃을 문 새가 슬퍼하고 경문을 듣는 용이 우나니, 만물의 느낌이 이러하거늘 사람이 어찌 느껴웁지 않으랴.

 한 문중에서 공부하면서 법의 젖을 나누어 마시다가 오늘 아침에 영원히 떠나나니 어찌 못내 슬퍼하지 않으랴. 형과 아우에서 이미 빠졌거니 [10]훈지(塤箎)를 누가 화답해 주리. 지는 햇볕 앞에 눈물로 울고 떨어지는 달 아래 창자가 끊긴다. 다만 맑은 차 한 잔으로 영감(靈龕)에 절하고 올리옵나니, 오직 영혼은 어둡지 않으사 내림해 응감하시기 바라나이다.

 

 용연사 중건 낙성소(龍淵寺重建落成疏)

 

 원각(圓覺)의 가람(伽藍)은 토각(兎角)을 걸어 들보로 삼아 심지(心地)에 세우고 진여(眞如)의 원우(院宇)는 구모(龜毛)를 이어 기와로 삼아 성천(性天)에 지었다. 오랜 겁()에 원래 근부(斤斧)의 인연이 없거늘, 참 터에 어찌 성훼(成毁)의 운수가 있겠는가. 용연(龍淵)의 범찰(梵刹)을 달성(達城)의 남쪽 언덕에 넓게 여나니, 비슬(毗瑟)의 신령스런 산은 첩역(鰈域)의 동토(東土)에 높이 솟았다. 산은 석가(釋迦)의 금골(金骨)을 간직했고, 절에는 라려(羅麗)의 아름다운 자취가 있다. 종이 성루(星樓)에 울어 소리가 옥동(玉洞)을 흔드니 영취(靈鷲)의 도량과 방불하고 향을 아전(鵝殿)에 피워 기운이 금사(金沙)를 쬐니 기원(祗園)의 정사(精舍)와 비슷하다.

 항상 파랑새가 잘 살핀다고 말했거니 어찌 흰 말이 돌며 울 줄을 뜻했으랴. [11]목객(木客)이 바람을 녹여 갑자기 이마를 데이는 재앙이 있는데 [12]병동(丙童)이 불을 불어 잠깐 섶을 옮기는 은혜가 끊어졌다. 만 골짝에 재가 날으고 하루 아침에 종소리가 끊어졌다. 새와 짐승은 한낮에 슬퍼하고, 용과 하늘은 황혼에 시름했다.

 이에 치백(緇白)의 무리에게 두루 알리고, 두척(斗尺)의 도움을 우러러 바랐나니, 천 길 푸른 바다의 한 알 좁쌀을 모아 자비의 궁()을 얽고, 백리 뽕밭의 한 조각 베자치를 얻어 장엄한 전(殿)을 세웠다. 그리하여 동랑(東廊)은 서상(西廂)에 이어 나란히 늘어졌고, 불전은 성루(星樓)와 더불어 가지런히 솟았으니, 복을 비는 중한 땅이 되기에 알맞고 복을 심는 좋은 밭이 될 만하다.

 땅귀신이 가만히 간직하여 뛰어난 절을 하루 저녁에 기다렸고, 산지기가 비밀히 보호하여 보배스런 곳을 천추에 남긴 것이니, 하늘이 한 짓이요 사람의 힘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성주(城主)인 송공(宋公)이 주머니 근을 풀은 힘이요, 또 큰 시주 여러 분이 돈을 낸 공이다.

 지금 섣달을 맞이하여 특히 경찬()의 모임을 베푸나니, 등불은 약왕(藥王)이 몸을 태우는 불에 밝고 단()은 가섭(迦葉)이 미소하는 꽃에 열린다. 낮에는 七축()의 연경(蓮經)을 연설하고  밤에는 三단()의 훌륭한 자리를 베푼다. 하늘은 보배 일산을 드리워 성현들을 상방(上方)에 맞이하고 땅은 금련(金蓮)을 솟구처 고취(苦趣)를 하계(下界)에서 부순다. 높은 스님네가 자리에 가득하고 달아 놓은 번기는 허공에 나부낀다. 七七의 등불 광명은 어둔 거리의 큰 밤을 비추어 깨뜨리고, 三三의 법의 무리는 자성(自性)의 미타(彌陀)를 담박 깨친다. 법악(法樂)은 하늘을 흔들고 범음(梵音)은 땅을 진동시킨다.

 이 공덕으로 엎드려 원하옵나니, 주상 삼전(主上三殿)께서는 그 용루(龍樓)는 문무(文武)의 바람에 길이 펄렁이고 봉각(鳳閣)은 요순(堯舜)의 해에 거듭 밝으시며, 금지(金枝)는 열매를 맺고 옥엽(玉葉)은 그늘을 드리우소서.

 성주 합하 송공(城主閤下宋公)은 재앙의 껍질을 길이 벗어버리고, 아들 많고 손자 많고, 수와 복을 누리시며, ()의 날개를 높이 펴고 녹()이 모이고 귀가 더하고 편하고 한가하시며, 정치는 감당(甘棠)적시고 공은 세류(細柳)에 높아지이다.

 크고 작은 각 시주들과 기꺼이 동참하여 인연을 맺는 여러 사람들과 또 법계의 잠긴 혼과 걸린 넋의 무리와 풀을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 무리들도 이 뛰어난 인연을 입고 저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며, 한 방울의 남은 물결에 四생()이 모두 목욕하여지이다. 옥호(玉毫)의 성인을 우러러 삼가 붉은 정성의 글을 올리나이다.

 

 수륙야소(水陸夜疏)

 

 낮에는 [13]영산(靈山)을 연주하여 이마 위의 구슬을 이미 얻고 바람이 움직여 번기가 움직이는 곳에서 밤에는 수륙재를 베풀어 옷 속의 보배를 달이 밝고 등불이 밝은 때에 또 봅니다. 앞 산 뒷 산에 꽃은 빨갛게 피었는데, 서쪽 숲 동쪽 숲에 새들은 지저귑니다. 물건마다 등명지(燈明智)의 체(), 걸음마다 보현행(普賢行)의 문()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는 외경(外境)에 대해서는 불만과 만족이 번거러이 일어나고, 내심(內心)에 있어서는 미워함과 사랑함이 번갈아 일어나면 몸은 세상 일을 반연하여 [14]十전()의 노끈을 더욱 맺고, 마음은 이익의 길로 달려 [15]五장()의 덮개를 벗기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생사는 겁석(劫石)으로도 헤아리기 어렵거늘, 미래의 윤회인들 [16]개성(芥城)으로 어찌 다하리까.

 지금 시냇 가의 버들이 황금을 떨치는 절기와 고개 위의 매화가 백옥을 토하는 때를 당하여, 먼저 명전(冥錢)을 드리고 다음에 수륙재를 베푸나이다. 그릇마다의 감로(甘露)는 미소의 꽃을 두루 뿌리고 등불마다의 밝은 빛은 모두 몸을 태우는 불입니다. 하사(河沙)의 三보()가 모두 모이고 법계(法界)의 六사()가 다 왔읍니다.

 엎드려 바라옵나니, 이 훌륭한 인연을 의지하여 이 괴로운 세계를 떠나며 몸은 바로 빙산(氷山)과 같아 오래지 않고, 곳은 화택(火宅)과 같아 편하지 않사오니, 찰나 사이에 곧 왕생을 얻고, 아승지겁(阿僧祗劫)동안 항상 안양(安養)에 살아지이다.

 十방의 三보()를 우러러 대하여 삼가 [17]九곡()의 촌성(寸城)을 아뢰나이다.

 

 어머님을 위한 생일의 재소(生日齋疏)

 

 부처님의 덕은 그지없어서 모래로 세더라도 헤아리기 어렵고, 어머니의 은혜는 끝이 없어서 뼈를 가루로 내더라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비스런 문을 두드려 저승 길을 닦아야 하겠읍니다.

 한 세상의 부모는 천겁(千劫)의 인연입니다. 슬프다. [18]춘정(椿庭)에 대해서는 풍수(風樹)를 젊어서 울었사온데, 다행히도 [19]훤실(萱室)에 있어서는 한온(寒溫)을 만년(晩年)에 기다립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소자(小子)는 이익을 구하고 이름을 구하여 이미 도를 닦을 길이 없었사온데, 아버지를 구()하고 어머니를 구함에 어찌 하늘에 나시게 할 방도가 있겠읍니까. 마음으로 헤아리고 몸을 어루만져도 어떻게 할 길이 없사옵니다. 이제 생신이 닥쳐오매 정성스런 축원이 더욱 깊어집니다.

 여기 범연(梵筵)을 베풀고 삼가 향화(香火)를 사루나니, 낮에는 영취(靈鷲)의 진전(眞詮)을 연설하매 三보()가 함께 내림하고, 밤에는 명부(冥府)의 정재(淨齋)를 베풀매 十전(殿)이 한꺼번에 오십니다. [20]규성(葵誠)은 비록 작사오나 능감(菱鑑)은 곧 두루 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자모(慈母)께서는 살아서는 오래 사시되 그 복이 냇물처럼 이르고 떠나서는 낙토(樂土)로 돌아가셔서 그 과보가 성인과 같아지이다.

 

 표충설초재소(表忠設醮齋疏)

 

 고통을 덜고 즐거움을 주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생각하기 어려운 은혜요 몸을 버려 나라를 편케 하는 것은 셋 스님의 마르지 않는 힘입니다. 세상을 덮은 공이 이미 큰데 사람을 구제하는 덕이 깊습니다. 귀신을 느끼게 하고 천지를 움직였으니, 여기 인심이 함께 우러러 진영(眞影)을 천추 뒤에 받들고 윤은(綸恩)은 갑자기 떨어지니 사우(祀宇)를 三강()의 골 가운데 세웁니다. 춘추로 언제나 향을 사루는 의식이 있어 치속(緇俗)이 모두 경규(傾葵)의 뜻을 냅니다.

 생각하면 우리 세 스님은 부처님의 참 아들이라 일컫지마는 실은 국가의 좋은 신하입니다. 큰 골짝에 봄이 쇠잔해 버들은 황금을 떨치는 계절이요, 산 얼굴에 햇볕이 따뜻하매 매화는 백옥을 토하는 때입니다. 아름다운 때를 맞아 삼가 법회를 베푸나니, 이것은 각황(覺皇)이 四생()을 구제하는 무궁한 원이요, 오직 소제(小弟)가 세 스님을 천도하는 무진한 정성입니다. 항아리의 꽃은 마음 땅에 가지런히 피고 단()의 촛불은 성품의 하늘에 외로이 밝습니다.

 우러러 홍훈(鴻熏)을 바라 三전(殿)의 학산(鶴算)을 위로 비나니, 원컨대 가피(加被)를 드리워 四해()의 낭연(狼煙)을 길이 고요하게 하소서. 드리는 것은 한 잔 두 잔의 맑은 차요, 공경하는 것은 백 번 절하고 천 번 절하는 붉은 정성입니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백련화(白蓮花) 안에 자비의 광명을 특히 놓으시고, 청구국(靑丘國) 가운데 억조의 백성들을 다시 구제하소서.

 

 생재표백(生齋表白)

 

 四상()의 산이 높아 八만 지옥의 길에 닿을 만하고 五욕()의 바다가 넓어 三천 염라(閻羅)의 문에 이어졌읍니다. 업경(業鏡)이 밝고 밝아 막아도 도망치기 어렵고 제망(帝網)이 너르고 널러 섬기면서 빠뜨리지 않습니다. 선악이 이미 현저하거니 인과를 어찌 속이겠읍니까.

 엎드려 생각하오면 광음이 이미 저물어 한 덩이 몸둥이가 반은 이미 썩었읍니다. 이미 깨끗한 업을 닦은 바 없나니 어찌 저승 길의 향할 곳을 면하겠읍니까. 왕사성(枉死城) 밖에 곤곤(滾滾)한 찬 바람이요, 내하교(奈河橋) 곁에 도도(滔滔)한 피 물결입니다. 낮에 한탄하나니 몸을 어루만지며 어찌할 줄 모르고, 밤에 시름하나니 뜻으로 헤아리나 당황할 뿐입니다.

 여기 붉은 정성을 기울여 그윽한 응감을 우러러 바라나니, 붉음이 단상(壇上)에 비치매 이것은 모두 가섭(迦葉)의 파안(破顔)의 꽃이요, ,차가 바루에 가득 차매 그 모두 조주(趙州)가 법을 보이는 물입니다. 규성은 비록 작으나 능감(菱鑑)은 두루할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저승 하늘의 해와 달이신 十명왕(冥王), 괴로움 바다의 인자한 배이신 대교주(大敎主)께서는 각기 신통력(神通力)을 놓고, 인자하게 가엾이 여기는 청을 드리워 주소서. 생전의 재()를 미리 닦아 죽은 뒤의 길을 삼으려 하나이다.

 오늘의 이 진정하는 하소연은 뒷 날의 고증(考證)하는 명문(明文)이 될 것입니다.

 

 예수재소(預修齋疏)

 

 제망(帝網)의 구슬은 회회(恢恢)하여 인과의 가볍고 무거움을 빠뜨리지 않고, 염라(閻羅)의 거울은 소소(昭昭)하여 선악의 높고 낮음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구슬과 거울에 사정이 없어서 재앙과 복이 틀리지 않습니다. 방광(放光)하고 지팡이를 흔들어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는 것은 지장 대성(地藏大聖)의 인자한 배요, 거울을 걸고 저울을 들어 죄안(罪案)을 결제하는 것은 염라 열왕(閻羅列王)의 사나운 위엄입니다. 이끌어 주는 힘을 입으려 하거늘 어찌 귀의(歸依)의 정성을 다하지 않겠읍니?.

 삼가 생각하오면, 다행히 먼 허공의 한 오리 실 같은 몸을 얻은 것은 다 지난 겁()의 여러 성인의 덕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가난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게 생전의 세월을 지냈다 하지만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이 죽은 뒤의 저승 길을 닦기 어렵습니다. 날마다 푸른 마다의 좁쌀을 모으고, 때마침 뽕밭의 베자치를 모아 적으나마 수백의 티끌 재물로 삼가 十왕()의 재회(齋會)를 닦습니다. 지장님의 인자한 배가 아니면 내하교(奈河橋) 위를 어떻게 건너며 명왕님의  사나운 위엄이 아니면 왕사성(枉死城)곁을 어떻게 지내겠읍니까?

 삼가 청정한 사리(闍梨)를 청하고 천진(天眞)의 정람(精藍)에 나아가, 낮에는 영산(靈山)을 세워 七축()의 묘전(妙典)을 연설하고, 밤에는 명회(冥會)를 열어 十전(殿)의 빛나는 자리를 베푸나니, ()은 파안(破顔)의 꽃을 피우고 등불은 몸을 사루는 불을 밝힙니다.

 엎드려 비옵나니, 명왕(冥王)의 위덕은 오늘 아침에 다 통하고, 대성(大聖)의 인자한 광명은 오는 세상을 두루 비추소서. 그리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바른 인()을 닦아 업의 과보를 끊고 몸은 재앙이 없어 송춘(松椿)과 같으며, 과보가 다해 목숨을 마치고는 속히 극락(極樂)에 나서 연대(蓮臺)와 보각(寶閣)에서 미타(彌陀)를 함께 뵈옵고 왼쪽으로는 관음(觀音)을 이끌고 오른쪽으로는 세지(勢至)와 짝하게 하소서.

 명부(冥府)를 우러러 대하여 삼가 정성의 소문을 읽나이다.

 

 천사왕재소(薦師王齋疏)

 

 선을 상 주고 악을 벌 주는 것은 명왕(冥王)의 큰 자비요, 고통을 ?람을 구제하는 것은 지장(地藏)의 권화(勸化)입니다. ()에 업의 ? 달고 손에 밝은 구슬을 받치니, 五역()과 三도()가 다 밝은 구슬? 나타나고 四생()과 七취()가 모두 업의 거울 속에 비치나니, 환화(幻化)가 다함이 없고 권형(權衡)이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돌아가신 스님의 많은 바람 같은 생활은 언제나 운수(雲水)의 세계에 붙여졌고, 밝은 달 같은 마음은 항상 인의(仁義)의 도를 닦았으므로 사람들은 기덕(耆德)이라 일컬었고, 그 행은 바로 두타(頭陀)였읍니다. 갑자기 열반으로 나아가 저승 길이 막히었읍니다. 두 바퀴가 머물지 않아 어느덧 소상(小祥)을 당하였고, 백겁(百劫)에 만나기 어려우므로 삼가 변변찮은 정성을 하소하오니, 범부의 마음은 조각조각이오나 성인의 거울은 밝고 밝습니다.

 삼가 원하옵나니, 영가(靈駕)님은 내하교(奈河橋) 위에서 숙원(宿寃)의 미()한 혼령을 만나지 마시고, 업경대(業鏡臺) 앞에서 여러 생의 죄장(罪障)을 길이 끊으시고, 이 묘한 힘을 받들어 저 즐거운 세계에 나소서.

 또 원하옵나니, 제자는 五장()이 모두 사라지고, 二엄()을 완전히 갖추어지이다. 명부(冥府)를 우러러 대하여 삼가 천소()를 읽나이다.

 

 예참소(禮懺)

 

 쌍림(雙林)에서 입멸(入滅)한 뒤로 선교(禪敎)가 서천(西天)에 나뉘어졌고, 양계(兩桂)가 그늘을 드리워 돈점(頓漸)이 동토(東土)에 갈라졌읍니다. 선굴(禪窟)에는 조계(曺溪)의 달이 비치고, 이계(理階)에는 영취(靈鷲)의 바람이 생깁니다. 六대()로 등불을 전하고 五종()이 불꽃을 이었읍니다. 一참() 一례()에 혹장(惑障)과 업장(業障)의 인연을 녹이고 三지() 三관()에 진제(眞諦)와 속제(俗諦)의 경계를 밝히나니, 멸하지 않는 것은 조사의 자리요, 폐할 수 없는 것은 참회의 자리입니다. 백원(白猿)의 해에 주하(朱夏)의 철을 맞아, 간략히 훈범(熏範)을 베풀어 六화()의 고선(高禪)을 청하고 삼가 정단(淨壇)을 만들어 七축()의 묘전(妙典)을 연설합니다. 산은 설봉(雪峰)이라는 훌륭한 땅이요 절은 석왕(釋王)이라는 깨끗한 가람(伽藍)인데 번기의 꽃은 뜰에 가득하고, 향의 연기는 햇빛을 가리웁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는 몸을 운수(雲水)에 붙였으나 안으로 관조(觀照)의 공이 없고 마음은 이도(利途)로 달리면서 겉으로는 위의의 모양을 나타냅니다. 흰 눈은 천 가락의 머리털에 들고 붉은 마음은 모든 덕이 높은 이에게 기울어집니다. 그러므로 티끌 재물을 내어 여기 참회하는 자리를 마련했읍니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여러 대조사께서는 가만히 깊은 뜻을 펴서 쐐기를 뽑고 못을 빼며, 비밀히 진기(眞機)를 나타내어 돌을 깨고 언덕을 무너뜨리소서. 그리하여 사람은 혹업(惑業)인 애욕의 밧줄을 끊고 각각 거래(去來)의 티끌 그물을 뚫어 외로운 달은 오직 밝고, 여럿의 마음은 정성을 다하며, 살아서는 五복()이 늘어 무궁에 누리고 죽어서는 九품()에 돌아가 즐거움이 다하지 않게 하소서.

 간절한 기원을 어찌할 수 없어 삼가 이 소로 아뢰나이다.

 

 독성재표백(獨聖齋表白)

 

 ()을 관()하고 도를 즐기어 무생(無生)을 각장(覺場)에서 증득하고 지혜를 운전하고 자비를 일으켜 유정을 고해에서 건지십니다. 느낌이 있으면 반드시 응하고 따르지 않는 소원이 없으시니, 묘용(妙用)은 생각하기 어렵고 신통은 헤아릴 수 없읍니다.

 엎드려 생각하면, 제자는 이 탁한 세상에 나서, 일찌기 운수(雲水)의 몸이 되고, 저 밝은 스승을 찾아 또한 불조(佛祖)의 말을 배웠읍니다. 그러나 三장()의 구름은 솟고 十사(使)의 밧줄에 묶이나니, 바탕이 둔하고 성품이 미련하여 글에는 헛갈리고 뜻에는 막힙니다. 이치의 하늘이 높고 넓거니 대롱으로 엿보아 어찌 두루 알겠으며, 성품의 바다는 차고 깊거니 표주박을 기울여 어찌 헤아리겠읍니까. 패엽(貝葉)을 대하여 눈물을 흘리고 [21]가타(伽陀)를 생각하면서 한숨을 지웁니다.

 이에 깨끗한 단()을 높이 만드니 흰 구름 붉은 나무 속이요, 붉은 정성을 우러러 다하니 보개(寶盖)의 옥동(玉洞) 속입니다. 잠깐 영원(靈源)을 하직하고 이 자리에 오시기를 청합니다.

 엎드려 바라옵나니 성자(聖者)께서는 원컨대 슬기의 칼을 주시어 만겁의 애욕의 밧줄을 끊고, 특히 싱그러운 광명을 놓아 천생의 티끌 그물을 찢게 하시며, 악마의 장애를 아주 꺾고 도의 싹을 더욱 빼어나게 하시며, 만축(萬軸)의 영문(靈文)을 눈으로 한 번 보아 입으로 외우고 六대()의 진결(眞訣)을 귀로 한 번 들어 마음에 지니게 하소서. 겸추(鉗鎚)를 크게 선림(禪林)에 열매 광석을 버린 금철을 많이 얻고, 낚시줄을 바로 교해(敎海)로 내리매 미끼를 찾는 어룡(魚龍)을 만나게 하소서.

 영취(靈鷲)의 바람을 다시 일으키고, 계봉(鷄峰)의 달을 거듭 밝히며, 재앙을 굴려 복을 만들고 수명의 별을 길이 밝히며, ()을 통달하고 진()으로 향하며, 멀리 깨달음의 언덕에 올라 세세(世世)에 보리(菩提)의 길에 서 물러나지 않고 생생(生生)에 열반의 성()에 한가히 놀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함령(含靈)이 모두 종지(種智)를 원만히 하여지이다.

 

 옥추경(玉樞經)을 읽는 표백(表白)

 

 한가히 보급(寶笈)을 읽으면서 옥허(玉虛) 가운데 편히 앉고, 항상 기린을 타고 은하(銀河)위에 한가히 놉니다. 여러 하늘이 옹호하고 뭇 신선이 앞에서 인도합니다. 몸을 十방에 나타내고 마음을 三계()에 운전합니다. 요사(妖邪)함을 꾸짖고 귀신을 베나니 바람과 천둥을 부려 위엄을 떨치고, 때를 따르고 사람을 이롭게 하나니 음양을 조화시켜 명령을 내며 아래 위가 비록 끊기었으나 사람과 하늘이 서로 따릅니다.

 지금 조선국(朝鮮國) <운운(云云)>은 전생의 흉()함으로써 금세의 화를 당하였으니 이매(魑魅)는 문()에 들고 요사(妖邪)는 뜰에 가득합니다. 고질(痼疾)이 몸을 누르니 장차 생을 붙일 길이 없고 신음하여 베개에 엎드렸거니 어찌 죽음으로 돌아가는 문을 면하겠읍니까. 조금 전에 조객(弔客)이 잦더니 이내 상여가 계속 나갑니다. 하늘인들 어찌 헤아렸겠읍니까. 사람들이 모두 가엾이 여깁니다.

 삼가 생각하오면 천존(天尊)께서는 옥부(玉府)의 층대(層臺)에는 상벌(賞罰)의 조목이 있고, 보문(寶文)의 영전(靈篆)에는 선악의 법을 밝혔으니, 어떤 요사함도 다 제거하고 소원이 있으면 다 들어 주십니다. 화도 오직 하늘이요 복도 또한 하늘입니다.

 여기 뜰과 마루를 엄숙히 하고 九천()의 진성(眞聖)을 청하여, 보전(寶篆)을 외우면서 모든 요사함을 물리치려 하나이다. 그러므로 상서로운 구름이 뜰에 가득하고 신령스런 광명이 집을 비추어 화를 제거하고 재앙을 흩어 기운이 상쾌하고 정신이 맑아지게 하소서. 그렇다면 이것이 어찌 몸을 나타내고 마음을 운전하여 사람 세계의 화와 장애를 제거하고 벼락을 채찍질하고 비를 부리어 천구(天衢)의 요사함과 악마를 베는 일이 아니겠읍니까.

 그러므로 붉은 마음을 하소연하여 죄를 무릅쓰고 아뢰는 것입니다.

 

 안변 고산 석교 권선문(安邊高山石橋勸善文)

 

 하늘과 땅이 열리어 철령(鐵嶺)을 해동(海東)에 둘러쌌고, 돌과 골을 구획하자 학성(鶴城)을 관북(關北)에 경계 지웠다. 철령은 상마(桑麻)의 백리를 달리고 학성은 도리(桃李)의 천촌(千村)을 안았다.

 여기 물이 있어 이름이 심천(深川)이다. 용용(溶溶)한 큰 냇물은 부양(釜壤) 사이에 쏟아지고, 족족(簇簇)한 뭇 산은 검봉() 밑을 둘러 있다. 그 물은 석치(石齒)를 울리고 그 소리는 뇌문(雷門)에 미친다. 겨울 눈이 얼어 흐를 때 가벼운 걸음을 두 번만 떼어 놓으면 옥항아리가 천 덩이요, 여름 비가 넘쳐 흐를 때 놀란 물결이 한 번 뒤치면 눈꽃이 만 점이다.

 산을 빼는 사람이라도 그 용맹을 보이기 어렵고 바람을 따르는 기마(驥馬)도 그 발굽을 펼 수 없으며, 사사로운 일로 천천히 가다가도 여기 이르러서는 시름을 머금고, 관청의 일로 빨리 달리다가도 여기 다달아서는 급함을 잊는다. 더구나 소를 끌고 말을 모는 무리도 아직 건너지 못했는데, 등에 지고 머리에 인 사람이야 어찌 넘을 수 있겠는가.

 배로 건널 수 있을 듯하여 시험하면 댈 수 없고 나무로 다리를 놓을 수 있으나 오래지 않아 썩고 말았다. 그렇다면 썩지 않고 건널 수 있는 것은 오직 돌다리 뿐이다. 그러므로 그 맹세가 바다보다 넓고 산보다 깊다 해도 하우(夏禹)가 오지 않으면 어찌 귀부(鬼斧)로 쪼을 수 있으며, 진제(秦帝)가 이미 갔거니 자전(紫電)으로 몰기도 어렵구나.

 그러므로 선()을 권장하는 글로 재물을 쌓아 둔 사람들에게 두루 아뢰는 것이다. 즉 하늘에는 오작(烏鵲)이 있어서 견우 직녀(牽牛織女)가 오고 갈 수 있게 하고 땅에는 황천(黃泉)이 있어서 침혼 체백(沈魂滯魄)을 건네주어 오고 가게 하는 것이다. 천지도 그러하거니 인세(人世)가 그렇지 않겠는가.

 하루 아침의 무지개다리는 만고(萬古)의 귀경(龜鏡)이다. 이것은 오직 지난 때의 건너기 어려운 변을 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곧 후일의 기관(奇觀)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리에 올라 물을 건너면 반드시 마경(馬卿)의 기둥에 시를 쓴 생각이 일 것이요, 물가에 다달아 만물을 고루 보면 반드시 장수(莊叟)의 물고기를 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니 이 공이 크고 이 경치가 아름답구나.

 삼가 바라건대, 여러 선사(善士)님은 주머니의 돈이나 병 속의 좁쌀을 아끼지 마시라. 풍운(風雲)은 비록 변하나 이 다리는 길이 있을 것이며, 바라와 산은 변하더라도 그 은혜는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원으로 말미암아 국경에는 경사(驚沙)의 그림자가 끊기고, 마을에는 격양(擊壤)의 소리가 일 것입니다.

 

 석왕사 대웅전 상량문(釋王寺大雄殿上樑文)

 

 하늘이 대계(大界)에 비어 성신(星辰)의 형상을 높이 열었고, 땅이 영잠(靈岑)에 솟아 해악(海岳)의 형세를 높이 열었다. 九천()과 十지()는 一기()를 나누었고, 천방(千邦)과 만국(萬國)은 四우()에 벌려 있다.

 대개 벽안(碧眼)이 강을 건너던 처음과 백마(白馬)가 경전을 싣고 온 뒤로 명산과 승지(勝地)에 탑사(塔寺)를 세우는 이가 자못 많았고, 깊은 골과 높은 바위 밑에서 선정을 닦은 이가 무수하였다.

 그런데 이 산은 다투어 흐르는 만학(萬壑)의 물은 동으로 왕양(汪洋)한 은해(銀海)에 들어가고 다투어 빼어 난 천암(千岩)은 남으로 높은 철령(鐵嶺)을 떠받쳤다. 아름다운 풀과 고운 꽃은 항상 옥계(玉階)에 나고, 계자(桂子)와 천향(天香)은 어지러이 금단(金壇)에 떨어진다. 학을 짝한 참중은 홀로 사립문을 연루(蓮漏)의 밤에 닫았는데, 삼란(驂鸞)을 탄 신선 나그네는 얼마나 단풍잎 가을에 시를 읊었던가? 땅은 신령스런 구역을 숨겼고 산은 훌륭한 땅을 간직하였다. 강헌 성조(康獻聖祖)는 용이 일어날 터에 잠저(潜邸)했고 무학 국사(無學國師)는 호랑이가 엎드린 땅에 안선(安禪)했다.

 이 대웅전(大雄殿)은 홍무 흑구년(洪武黑狗年)에 반수(?)가 공사를 맡았는데 숭덕 백사(崇德白蛇) 봄에 병동(丙童)이 재앙을 일으켰으며, 벽암(碧岩) 화상이 뜻을 내어 전에 수리하였고, 풍곡(楓谷) 대사가 발심하여 지금처럼 중창(重創)하였다. 상방(尙方)의 넉넉한 내림을 많이 얻은데다 또 도백(道伯)의 돕는 인연을 보태었고, 온 절의 스님네가 다 정성을 기울여 메아리처럼 응하고 온 고을의 농민들이 모두 손바닥을 털어 그림자처럼 따랐었다.

 목수 각민(覺敏)은 그 재주가 三생()에 익었고 그 이름도 또한 한 나라에 가득하였는데, 묘하기는 왕린(王繭)보다 뛰어나고 공교롭기는 윤편(輪扁)에 비기었으니 돌을 다듬어 줏초를 만들면 진편(秦鞭)과 우부(禹斧)의 그윽한 도움이 있는가 의심스럽고, 소나무를 깎아 들보를 얹으니 노궁(魯宮)과 한전(漢殿)의 아름다움이 무엇이 부럽겠는가? 十주()의 요대(瑤臺)에 방불하고 三산()의 패궐(貝闕)과 비슷하다.

 사라쌍수(沙羅雙樹)는 다시 천추에 빛을 더하고, 우담일화(優曇一花)는 다시 만고에 그늘을 드리우며, 숲과 산이 빛을 움직이니 하늘 귀신과 땅 귀신이 모두 기뻐하고, 시내와 골이 빛을 더하니 지나는 나그네와 사는 스님네가 다 같이 기뻐한다. 우내(宇內)에 있어서 이보다 귀한 것이 없고 천하를 통해서 아름다움이 으뜸 될 것이다. ()하고 환()함이여, 성대하고 웅장하도다.

 여기 공사를 마침에 다달아 귀신을 울릴 아름다운 글이 없음을 부끄러워 하면서, 적으나마 짧은 시를 읊어 긴 들보를 드는 것이다.

 

 ()으로 하니,

 황룡산(黃龍山) 빛이 하늘을 짝하였다.

 푸른 바다를 굽어보면 부상(扶桑)이 가깝나니

 빈 처마가 붉은 새벽 햇빛을 먼저 얻는다.

 

 (西)로 하니,

 멧부리 우뚝우뚝 하늘과 가지런하다.

 선암(禪庵)이 층층한 봉우리 밑에 벌려 있나니

 조각조각 차 달이는 연기가 골에 가득 헤맨다.

 

 ()으로 하니,

 소나무, 노송나무 천 길을 솟아 바위를 의지했다.

 굽이진 시내의 찬 샘물은 석치(石齒)를 울리는데

 늙은 용은 항상 있어 맑은 남기(嵐氣)를 일으킨다.

 

 ()으로 하니,

 벌려 선 산과 기이한 바위가 북극을 떠받쳤다.

 ()의 바다 가운데서 얼마나 풍상을 겪었던고

 늙은 소나무 가지 위에 선학(仙鶴)이 깃들었다.

 

 ()으로 하니,

 누각에 올라 은하의 물결을 우러러 본다.

 섬궁(蟾宮)의 계수 그림자는 인간에 떨어지고

 옥루(玉樓) 소리에 티끌 세상의 꿈이 놀란다.

 

 ()로 하니,

 임궁(琳宮)이 산뜻한데 세상 나그네의 걸음이 없다.

 신승(神僧)은 경쇠 치다 연경(蓮經) 읽는데

 수구(獸口)의 향 연기는 오리오리 일어난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상량한 뒤에 주기(珠基)는 길이 견고하고 연궁(蓮宮)은 오래 보존하시며, 땅이 늙고 하늘이 거칠도록 부처의 해는 만만겁(萬萬刧)에 항상 밝고, 바다가 마르고 돌이 타도록 성수(聖壽)는 천천추(千千秋)에 더욱 길어지이다.

 

 진정사 보광전 상량문(鎭靜寺普光殿上樑文)

 

 북으로 먼 천유(天維)는 철령(鐵嶺)을 천리에 끊었고 동으로 기울어진 지축(地軸)은 용강(龍江)의 쌍성(雙城)을 진압했다. 그 가운데 신령스런 구역이 있으니 그 이름이 태박(泰博)이다.

 좌우에는 흰 돌과 맑은 물이요, 전후에는 벌려 선 산과 뭇 봉우리다. 불 때가 백 번이나 둘렀으니 규룡의 허리가 돌을 기대었고, 산 병풍이 사방에 펼쳐졌으니 봉황 날개가 구름을 흔든다. 용강(龍江)은 해약(海若)의 가만한 숨길에 응하고, 학대(鶴臺)는 산우(山虞)의 옹호를 받는다. 영취(靈鷲)와 비슷하고 조계(曺溪)에 방불하다. 이 절은 많이 풍상을 지났으니 몇 번이나 흥폐를 겪었던고.

 신라 말기의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자리를 잡음에 시작하여 고려 초기의 대명 태조(大明太祖)의 보호로 끝이 났다. 六군()을 거느리고 해외로 나갔다가 다행히 이 절의 선방에 자게 되어 七성()을 항아리 속에 받아들여 처음으로 이 산의 신령스런 맥을 잡았었다. 백척이나  높은 누각은 헤매는 나루터의 보배스런 배가 되었고 종각(鍾閣)은 여섯 때로 맑은 소리를 꿈꾸는 집에 떨치었다. 구전(?殿)은 앙려(鴦廬)와 더불어 가지런히 솟았고 금종(金鍾)은 옥경(玉磬)과 함께 나란히 울었다. 꽃비는 허공에 날고 단의 연기는 해를 가리웠다. 훌륭한 인연은 기다림이 있고, 보배로운 운수는 이지러짐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리. 적용(赤龍=丙辰)의 여름에 갑을(甲乙)의 남쪽 바람에 섶을 옮기는 경계를 지키지 않고 병정(丙丁)의 부는 불에 이마를 태우는 은혜를 감사하였으니, 찬 재는 만 골짝의 바람에 흩어지고, 거친 담장에는 천년의 달이 비치었으며, 금사(金沙)의 흙은 검고, 보배탑의 연기는 푸르며, 구름이 호구(虎丘)에 슬퍼하니 용천(龍天)은 흰날에 시름하고, 바람이 학수(鶴樹)에 슬퍼하니 까막까치는 황혼에 설워하며, 종소리는 새벽 창에 끊어지고 향은 예탑(禮榻)에 감돌았다.

 여기 대사(大士)가 있으니 그 이름은 연암(蓮庵)이다. 그는 일찌기 감로(甘露)의 문에 놀면서 스스로 제호(醍醐)의 성품을 얻었다. 아주(鵞珠)처럼 계율을 지키매 괴로운 절개를 각림(覺林)의 표()하고 용경(龍鏡)처럼 마음을 맑히니 진공(眞工)을 정계(淨界)에 비치었다. 집집에서 곡식을 거두니 까치가 나무가지를 물어다 집을 짓고, 곳곳에서 돈을 거두니 벌이 꽃을 따다 꿀을 만든다. 공수(公輸)가 도끼를 놀리고 이루(离婁)가 먹줄을 잡았다.

 역사를 무오년 한가을에 시작하여 공사를 기미년 늦여름에 마치니 높다란 보전(寶殿)은 눈 앞에 다시 나타나고, 웅장한 종소리는 구름 밖에 다시 떨친다. 옛날의 화려함이 오늘의 웅장함이다. 어두움이 끝나면 밝음이 오고 굽히기를 마치면 폄이 오는 것이다. 비로소 하늘의 운수 있음을 알고, 바야흐로 땅이 영()을 가짐 깨닫겠다. 고래 용마루에 연기가 어리니 실로 사람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니요, 무지개 들보에 해가 빛나니 환하기 신의 솜씨가 도운 것 같다. 산 같은 역사를 마침에 다달아, 용 같은 들보를 이에 들어 올린다.

 

 ()으로 하니,

 푸른 바다의 부상(扶桑)이 지척 사이에 있다.

 아침 해가 처음으로 하늘과 물 밖에 나오니

 백천의 모든 부처가 붉은 광명을 놓네.

 

 ()으로 하니,

 큰 강에 쌍으로 쏟아지는 용담(龍潭)이 있다.

 용용(溶溶)한 맑은 물이 다함이 없이 흘러

 멀리 인간 세계로 가서 욕탐(欲貪)을 다 씻는다.

 

 (西)로 하니,

 섬 밖의 푸른 산이 되는대로 흩어졌다.

 잣나무가 줄을 지어 뜰 앞에 서 있나니

 조사(祖師)의 오신 뜻을 이미 모두 드러냈네.

 

 ()으로 한,

 절벽의 푸른 벼랑에 염소가 뿔을 걸었다.

 속인의 발길은 원래 길이 통하지 않아

 깊은 바윗굴은 헛되이 다락 종소리에 답한다.

 

 ()으로 하니,

 띄엄띄엄 종소리는 은하 물결에 사무친다.

 하늘에 가득 찬 성두(星斗)는 빛나는 문장인데

 우러러 보면 하늘 사람들이 갔다 왔다 하여라.

 

 ()로 하니,

 지륜(地輪)의 그 다음은 바로 곧 금륜(金輪)이다.

 가엾어라, 팔렬(八熱), 팔한(八寒)의 무리들이여,

 그 모두가 그 당시에 죄를  지은 자들이네.

 

 엎드려 원하옵나니, 상량한 뒤에는 창앞의 호랑이는 착해지고, 뜰위에는 연꽃이 나며, 땅이 티끌 속에 들 때까지 공덕의 바다는 마르지 않고, 하늘이 겁석(劫石)을 녹일 때까지 자비의 집은 무궁하여지이다.

 

 용비루 상량문(龍飛樓上樑文)

 

 온 천하가 모두 우리 임금님의 큰 터요, 훌륭한 땅과 이름 난 산이 모두 우리 부처님의 절이다. 고을은 안개처럼 四해()에 벌려 있고, 절은 바둑돌처럼 三산()에 깔려 있다. 군자의 고을에 마땅하고, 실로 법왕(法王)의 도()이다. 이 절의 곡림(穀林)의 기운은 금사(金沙)에 더욱 무르녹고, 기수(祗樹)의 남은 향기는 옥동(玉洞)에 멸하지 않는다. 토굴의 신석(神釋)은 三천을 교화하고, 또 임금의 스승이 되었으며, 초막의 진인(眞人)은 九주()에 올라 억조(億兆)의 희망에 길이 부응(副應)하였다. 뿌리가 견고하여 금지(金枝)가 더욱 무성하고 근원이 멀어 갈래가 더욱 깊다. 땅이 별다르고 사람이 기이하매, 하늘이 보호하고 귀신이 감추었다. 성조(聖祖)가 잠저(潜邸)하고 용흥(龍興)한 남은 터요, 신승(神僧)이 안선(安禪)하고 호복(虎伏)하던 남은 자취이다. 연대가 이미 멀었으니 흥폐가 대중 없었다.

 홍무(洪武)에 초창하고 홍치(弘治), 황양(黃羊=己未)의 해에 중창하였으며, 가정(嘉靖)에 다시 세우고 만력(萬曆), 황마(黃馬=戊午)의 해에 복구하였다.

 삼가 생각하오면 성조(聖祖)께서는 그 공은 만세(萬世)에 높고 그 덕은 백왕(百王)의 으뜸이어서 야객(野客)은 다 부처의 마음을 본받아 모두 기뻐하고, 산승(山僧)도 나라의 은혜에 감격하여 함께 즐거워하였다. 그리하여 토목(土木)을 아주 정묘롭게 하여 옛터에 큰 집을 짓고, 시주 인연을 널리 모아 기이한 공을 후대에 베풀었다. 만세(萬歲)의 용루(龍樓)에는 태평의 봄이 다시 돌아왔고 천추의 봉각(鳳閣)은 상고의 문화를 다시 폈다. 一국()에는 一승()의 거울이 밝았고 八해()에는 八조()의 바람이 불었다.

 또 보라. 한 갈래 찬 샘물은 용이 누운 것처럼 바다로 향하고, 백척의 높은 기둥은 봉이 날으는 것처럼 공중에 솟았다. 문은 두우(斗牛)의 별을 마주했고 지개는 봉호(蓬壺)의 달을 받아들인다. 연기와 놀은 서로 빛나고 바위와 골짝은 함께 맑다.

 목수 아무개가 정정(丁丁)히 칼날을 놀리고 자자(孜孜)히 역사에 애쓰니 높다란 옥탑(玉塔)에는 하늘 바람이 어로(御爐)의 향을 불어 보내고, 아스라한 금루(金樓)에는 새벽 놀이 선장(仙仗)의 해를 거두어 연다. 붉은 지대 뜰에는 해가 따뜻하고 푸른 자물쇠에는 봄이 화창하다. 어찌 특히 국가의 도움만이 되겠는가? 또한 산사(山寺)의 운치를 나타내는 것이니 적으나마 짧은 시를 지어 여기 긴 들보를 들어 올린다.

 들보의 동쪽 <운운(云云)······>

 엎드려 원하옵나니, 상량한 뒤에는 재는 흩어져 메우고 티끌은 날아 바다에 빠지며, 금지(金枝)와 옥엽(玉葉)은 약목(若木)과 함께 늘 번영하고 보탑(寶塔)과 경수(瓊樹)는 불탄터를 대하여 우뚝 서지이다.

 

 양산 통도 백년대회서(梁山通度白蓮大會序)

 

 설송(雪松) 가지에는 빙설(氷雪) 같은 열매가 많이 맺혔는데, 호암대(虎岩臺) 밑에는 용호(龍虎) 같은 스님네가 널리 모였다. 건륭(乾隆)의 흑구(黑狗=任戌), 곳은 바로 양주(梁州)의 영취(靈鷲)이다. 봄이 만학(萬壑)에 돌아와 꽃이 천봉을 수 놓았다. 석가(釋迦)의 금신(金身)을 이미 통도(通度)의 명찰(名刹)에 간직했나니, 비로(毗盧)의 보게(寶偈)는 마땅히 백련(白蓮)의 선암(禪庵)에서 열어야 한다.

 남북의 뛰어난 근기들은 향을 천리에서 생각하고, 동서의 짝 없는 무리들은 현()을 한 책상에서 규명한다. 가로 말과 내리 말이 모두 이 잡화(雜華)의 그윽한 이치요, 왼쪽으로 불고 오른쪽으로 침이 모두 다 격외(格外)의 현관(玄關)이다. 마니(摩尼)를 광명장(光明藏)속에 비치고 신주(神呪)를 실라성(室羅城) 안에서 연설한다. 선교(禪敎)를 아울러 말하고 사리(事理)를 쌍으로 거둔다.

 강주(講主) 아무는 동토 팔해(東土八垓)에서 첫 손까락에 꼽혀 머리에 있고, 서산 육대(西山六代)의 천등(千燈)을 나누어 처음에 있다. 승풍(乘風)을 추락하려는 때에 떨치고, 도화(道化)를 행하기 어려운 세상에 밝혔다. 깨끗한 병을 三낙실(諾室)속에서 차고 쇠나무를 五파선(派禪) 가운데 심었다. 홀로 겸추(鉗鎚)를 정돈해 노비(爐鞴)를 크게 열었다.

 백수(栢樹)의 비밀한 뜻을 전하여 심오한 이치를 나타내고 패엽(貝葉)의 신령스런 글을 강하여 이치와 성품을 끝까지 궁구하며, 부지런히 가르쳐 인도하고 법다이 유통(流通)을 도왔다.

 또 스승과 제자는 좌우에서 설법하고 들으며, ()과 교()로써 비밀한 뜻을 고금에 전한다. 경쇠 소리는 시냇물 메아리와 함께 울고, 선의 노래는 교의 가락과 함께 어울린다. 계봉(鷄峰)의 달은 다시 밝고 영취의 바람을 다시 일으킨다. 행단(杏壇)의 三천 제자에 十철()의 영걸이 있었고 영산(靈山)의 백만 제자에 十대()의 웅재(雄才)가 나타났었다. 옛날에도 이러했거니 지금이라 어찌 그렇지 않으랴.

 二백도 더욱 가득한데 쌍오(雙五)야 말할 것 있겠는가. 진계(晋溪)와 용담(龍潭)은 구암(龜岩)을 도는데 구름이 젖었고, 동곡(東谷)과 서악(西岳)은 계봉(鷄峰)을 대해 달이 밝다. 풍악(楓岳)에서는 소나무를 의지해 놀고, 금곡(金谷)에서는 근심을 잊고 누웠다. 이 밖의 十대사(大士)는 그 수는 十실()에 미치지 못하나 재주는 九승()에 밑돌지 않는다.

 빈도(貧道)는 교해(敎海)의 남은 물결이요 선림(禪林)의 병든 잎으로서 다행히 이 아름다운 모임을 만났으니 침개(針芥)의 인연이라 할 수 있고, 즐겨 현음(玄音)을 들으니 더욱 훈지(塤箎)의 뜻을 기뻐한다. 이 산이 부셔지지 않으면 이 절은 영원히 있을 것이다. 흐르기 쉬운 것은 세월이요 잊기 쉬운 것은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변변찮은 글로 천추에 전하는 것이다.



[1], 서계(書契) ·· 문자(文字). 중국 고대의 문자로 나무나 대에 새겨서 증표로 삼았다.

[2], 규모(葵慕) ·· 깊이 사모함.

[3], 동국(東國), 즉 우리 나라에 태어난 것.

[4], 서계(西戒)는 서쪽에서 전해온 불교의 계. , 비구계.

[5], 역책(易簀) ·· 사람이 죽는 것.

[6], 허교(虛驕) ·· 실속이 없으면서 뽐내는 것.

[7],8,9, 체중현(體中玄) · 구중현(句中玄) · 현중현(玄中玄) ·· 三현(). ()은 심원한 가르침의 뜻. 임제록(臨濟錄)에서는 실천 속에 나타나는 진실. ② 말이나 인식 위에 나타나는 진실. ③ 그것 자체로서의 진실. 삼론현의(三論玄義)에서는 주역(周易) ② 장자(莊子) ③노자(老子)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대체로 三론 현의의 입장을 가리킴.

 

 

[10], 훈지(塤箎) ·· 옆으로 부는 젓대.

[11], 목객(木客) ·· 산에 사는 도깨비.

[12], 병동(丙童) ·· 병정동자(丙丁童子).

[13], 영산회상곡(靈山會上曲)을 가리킴.

[14], 십전(十纏) ·· 중생을 얽매어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며 열반을 증득하지 못하게 하는 열 가지 번뇌 망상.

[15], 오장(五障) ·· 수행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 번뇌장(煩惱障) · 업장(業障) · 생장(生障) · 소지장(所知障)

[16], 개성(芥城) ·· 四방이 一유순(由旬)이 되는 큰 성. 여기서는 오랜 겁()을 비유해서 씀.

[17], 구곡의 촌성 ·· 구곡간장(九曲肝腸).

[18], 춘정(椿庭) ·· 아버지.

[19], 훤실(萱室) ·· 어머니.

[20], 규성(葵誠) ·· 사모하는 정성된 마음.

[21], 가타(伽陀) ·· 게송(偈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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