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대장경 제82권

편양당집(鞭羊堂集) 제三권

oṃ maṇi padme hūṃ 2026. 3. 9. 23:51

 편양당집(鞭羊堂集) 제三권

 

 언기(彦機) 지음

 

 수륙소(水陸䟽)

 

 논과 집을 팔아 수륙(水陸)을 닦는 맑은 의식은 속사(俗士)라도 할 수 있는 일이거늘, 향과 등을 마련하여 티끌 같은 세계에 공양하는 넓은 법을 도인(道人)으로서 어찌 게을리할 수 있겠읍니까? 곧 참된 정성을 받들어 삼가 법안(法眼)을 더럽히나이다.

 생각하오면 제자는 전생에 식업(食業)을 닦아 바가지 드는 몸을 면하고, 비록 이름은 들났지마는 도()를 닦는 공이 없아오니 뛰어난 말이 들바람 앞에 선 것이 애석하고, 허깨비의 몸이 부질없이 늙는 것을 한탄하나이다. 선업(善業)을 짓기에 스스로 힘쓰면서 은혜로운 정을 믿지마는 어찌하리까?

 염제(閻帝)의 부름을 거절하기 위해서는 각황(覺皇)의 힘을 의지해야 하겠거늘, 하물며 생족(甥族)을 취하는 것으로 악()을 쉬고 자비를 행하는 일이라 하겠읍니까? 의지할 데 없는 과부와 어려움이 있는 늙은이가 남군(南郡)에 나아가 공양하고 북당(北堂)에 맛난 음식을 바치기를 권하나이다. 들구렁에는 바람이 차고 무덤의 잔디에 눈물을 뿌립니다.

 이미 어머니의 공덕을 갚았거늘 어찌 스승님의 은혜를 모르오리까? 가을 바람을 따라 서쪽으로 돌아가고 향로를 마주하여 북쪽에 절합니다. 소제(少弟)는 청년을 등지고 장년이 되었으며, 스승님은 백발로 변하여 첨지가 되었읍니다. 내 마음을 아뢰오면 이전의 소원에 꼭 맞습니다. 고기가 고기의 뜻을 안다는 것은 실로 나를 격려시키나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한갖된 선()만이  아닙니다.

 아울러 우리 어머니를 천도(薦度)하여 연향(蓮鄕)으로 인도하되, 그 우거(寓居)를 밝게 하여 백련(白蓮)의 훌륭한 짝을 모으고, 전단향 조각을 사르어 금산(金山)의 법의 자리를 베풉니다. 근래에 죽은 제매(弟妹)의 선망(先亡) 부모로서, 어두운 길에 막힌 넋과 변방에서 싸우다 죽은 혼이, 단대(丹臺)에 발을 들여 놓아 마침내 생()이 있는 검은 업을 벗어나고, 묘한 경계에 몸이 이르러 시원하게 위없는 깊은 이치를 보며, 상하의 동참(同參)과 제자 자신이, 지금은 경행(慶幸)을 받들어 목숨을 마치고, 뒤에는 진원(眞源)에 돌아가 끝까지 놀아지이다.

 

 천제소(薦弟)

 

 외로운 난초가 일찍 떠나매 사()를 곡()하는 슬픔을 어찌 견디겠으며, 시내의 차 싹이 이에 향기로운데 부처님께 기도하는 공경함을 감히 뒤에 하면서, 곧 슬픈 정성을 펴 넓으신 자비를 우러러 욕되게 하나이다.

 삼가 생각하오면 제자 아무는 처음에는 머리 깎고 물들인 옷을 입을 때에 석림(釋林)의 난봉(鸞鳳)이 되기를 바랐는데, 한창 꽃다울 때에 어찌 봄 꿈의 원앙(鴛鴦)이 될 줄 알았겠읍니까? 가는 이를 애통하는 정은 구름처럼 일어나고, ()을 빛낼 보람은 우뢰같이 사라졌읍니다. 이미 가지가 떨어진 마른 나무가 되었고, 장차 길을 잃고 돌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록 늙고 젊음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뜻으로는 죽고 삶이 같은 것입니다.

 일찌기 상승(上乘)을 들었으매 五온()이 허공의 꽃과 같음을 알지마는, 행을 원만히 닦지 못했으매 어찌 九거()의 불난 집을 면할 수 있겠읍니까? 삼가 우사(羽士)를 불러 연담(蓮譚)을 외우게 하면서 그윽한 도움으로 깨달음의 길에 오르게 하소서.

 살아 있는 사람의 슬픔을 가엾이 여기고, 죽은 사람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며, 四사()와 五독()이 얼음처럼 녹고, 九결()과 十전()이 눈처럼 흩어지며, 자비의 바다가 넓어 저 언덕으로 지도해 먼저 오르게 하고, 공덕의 숲을 열어 법의 다리를 넘어 빨리 건너게 하소서.

 

 천형소(薦兄)

 

 맑은 가을이 비로서 다다르매 오작교(烏鵲橋) 곁에 성군(星君)이 서로 만나는 날이요, 기러기 행렬의 중간이 끊어졌으매 묘향동(妙香洞) 속에 돌아간 사람을 천승(薦昇)하는 때이니, 세 번 변한 우거(寓居)에 계덕(戒德)을 다시 정성스럽게 하나이다. 아침에 옥함(玉函)을 열어 헷갈린 마음의 부처를 바로 가리키고, 밤에 아름다운 모임을 베풀어 의지할 성현에게 각각 공양합니다. 五전(殿)이 변하여 이루어지거니 어찌 애통하는 생각이 없겠나이까? 十방 부처님께서 반드시 경지(鏡智)의 빛을 돌리실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나니, 영가(靈駕)께서는 금강(金剛)의 예리한 칼날로 번뇌의 굳은 맺음을 끊고, 흰 소를 타고 불난 집 문을 나오시고, 자비의 배에 올라 연꽃 창고에 오르소서. 오늘은 비록 연지(連枝)를 떠나는 한()을 원망하지마는, 오는 세상에서 음광(飮光)의 인연 맺기를 원합니다.

 

 천양친소(薦兩親)

 

 나를 낳으시느라 괴로와 하신 은혜는 양친보다 더한 이가 없고, 방편으로 사람을 제도하는 자비는 三보()보다 더 큰 이가 없나니, 오로지 깊은 정성을 기울여 넓은 법을 우러러 의뢰하나이다.

 생각하오면 우리 부모님은, 내가 성중(城中)에서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고부터 하늘 끝에서 몇 가을을 지냈는가? 상천(湘川)은 아득하고 형악(衡岳)은 아련하기만 하나이다.

 혹은 八한()을 가까이하고 혹은 六극()을 떠나면서, 하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은 뒤에 한 번 사람의 몸을 얻었으니, 그것은 침개(針芥)가 서로 맞는 것과 같고, 거북과 나무가 다행히 만난 것과 같습니다. 四공()의 위도 오히려 어렵거늘, 하물며 九부()의 가운데가 어찌 쉽겠읍니까? 만일 인자한 배를 빌지 않으면 무엇으로 괴로움의 이 바다를 건널 수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티끌 수 같은 보배를 다 기울여 이 금사(金沙)에 나와 사문(沙門)을 불러 모아서는 감로(甘露)를 삼가 여는 것입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부모님은 살아서는 천수(天壽)를 마치면서 사매(邪魅)의 침노를 아주 끊으셨으니, 돌아가셔서는 연대(蓮臺)에 나시어 항상 옥호(玉毫)의 광명을  입으시고, 스스로 三덕()의 보배 창고를 열어 九거()의 외롭고 가난한 이를 구휼하시옵소서.

 

 생전소(生前)

 

 삼가 듣건대, 석존(釋尊)께서는 그 어머님을 교화하기 위하여 도리천(兜利天)에서 설법하셨고, 목련(木蓮)은 그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하여 철위성(鐵圍城)으로 지팡이를 떨쳤다 하옵는데, 그것은 강상(綱常)이 지극히 중하고 은의(恩義)를 잊기 어려운 것을 말해 줍니다. 저 분들은 성현으로서도 그렇게 하였거늘, 나는 범부인데 감히 그렇게 하지 않겠읍니까? 그 죽은 뒤의 제도하기 어려움보다는 생전의 인도함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어떤 노파가 말하기를,

 『나는 마치 하늘에서의 존영(尊榮)이 끝없다가 빈천한 몸이 된 것 같이 이는 빠지고 머리는 세어 이미 六十이 지났읍니다. 인자한 할미의 즐거운 곳을 알고 싶으면 과거 성인들의 큰 법을 실천해야 하겠읍니다. 그리하여 상자와 전대를 모두 기울여 여기 향과 등을 공양하옵는데, 단재(檀財)의 적음은 헤아리지 않고, 홀로 능감(菱鑑)의 밝기 만을 믿나이다.

 하였읍니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주상(主上)의 三전(殿)께서는 그 금지(金枝)는 상서를 낳으면서 언제나 새롭고, 그 옥엽(玉葉)은 상서가 엉기어 영원히 무성하며, 간과(干戈)는 그치어 주기(珠基)는 땅처럼 오래가고, 우양(雨陽)은 때를 맞추고 보력(寶曆)은 하늘처럼 영원하여지이다.

 다음에 원하옵기는, 상비(孀妣)께서는 그 연세가 미수(眉壽)로 오래 사시고, 복이 이르고 편안하시며, 몸은 마야(摩耶)의 성후(聖后)를 섬기고, 발은 연장(蓮藏)의 금지(金池)를 밟으소서.

 또 원하옵나니, 선망(先亡)께서는 이 묘한 힘을 받들고 저 즐거운 나라에 나되, 九품() 연지(蓮池)에서 모든 부처님의 접인(接印)을 친히 받들고, 三계() 화택(火宅)에서는 여러 아이들의 수화(水火)를 아주 떠나시며, 언제고 아무 해로움이 없고, 온갖 상서가 날로 있으며, 동서남북에서 편안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가 자재하여, 남은 물결이 미치는 곳에서 고통하는 무리를 모두 적시소서.

 

 시왕소(十王疏)

 

 지팡이를 떨치고 염주를 가지고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은 오직 대성(大聖)의 자비의 서원이요, 원인을 미루어 결과를 결정하되 결정하는 문서에 사정이 없는 것은 여러 왕()의 총명한 지혜의 거울입니다. 무릇 이끌어 주는 힘을 입으려면 귀의(歸依)하는 정성을 다할 만한 것이 없읍니다.

 삼가 생각하오면 제자들은 다 같이 선생의 좋은 인()을 받들고 금생의 묘한 과()를 함께 얻어, 아침 저녁의 한 벌의 옷과 한 끼의 밥은 비록 각자의 노력에서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평생에 조용히 앉고 편안히 눕는 것은 실로 다 짝이 없는 그윽한 자비를 받들기 때문입니다. 나서 자라는 것은 건곤의 조화(造化)보다 무거운데, 갚아 드림은 털끝 만한 공보다 작습니다.

 그리하여 힘써 마음을 드러내는 재물을 갖추어 잠깐 공경을 드리는 예를 펴려 하와, 삼가 산중의 석덕(碩德)에게 명령하고 만경(萬景)의 도량에 나아가, 과교(科敎)의 의식에 의하여 예수(豫修)의 모임을 베푸는 것이오니, 이 아래의 정성이 위를 치매 신령스런 거울에 가만히 통하리라 생각하옵니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모두 큰 성인의 가엾이 여김을 입고 여러 왕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 색신(色身)은 항상 안온하여 마침내 음양(陰陽)의 조그만 어그러짐도 없고, 보수(報壽)는 멀고 높아 끝까지 송춘(松椿)과 함께 오래가며, 많은 생()의 죄를 멸하고 ,여러 겁의 원한을 제하기를, 우러러 통령 안하(通靈案下)에 사뢰나이다.

 

 표훈사 입비재사(表訓寺立碑齎詞)

 

 제자 아무와 아무 등은 청허(淸虛) 대사님의 법유(法乳)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다 함께 발원하고, 돌을 갈아 풍악산 오른쪽에 비를 세웠읍니다. 그리고 숭정(崇禎) 六년 계유 여름 四월 八일에 간폭(柬幅)을 닦고 함과()를 갖추고는, 산중의 여러 장노(長老)와 몇 사람을 맞이하여 무차(無遮)의 법연(法筵)을 표훈사(表訓寺)에 베풀고, 법기(法器)를 받들어 바다처럼 모인 성현과 十방에 항상 머무는 삼보님께 공양하면서 보호해 주시기를 우러러 바라나이다.

 도는 하늘처럼 크기에 고금에 간단 없이 높여 따르고, 덕을 사람에게 베풀면 그것을 기록하나니, 그 향기를 후세에 전하려면 명뢰(銘誄)보다 더 큰 것이 없읍니다. ()을 이미 아뢰어 마치고 여기 경사스런 자리를 마련하였읍니다.

 생각하오면 선사(先師)는 영악(靈岳)의 빼어난 정기를 받고 부처님의 끼치신 명령을 받듭니다. 풍채와 골격은 우뚝히 높고 거룩한 지혜는 그윽히 깊으며, 티끌과 섞이는 자취를 보이시니 그것은 큰 자비의 원력(願力)입니다. 시기를 맞추어 세상에 나오매 인연 있는 나라에 탄생하시어, 때 묻은 옷을 입고 호사스런 옷은 벗으시고 부처 없는 세상에서 교화를 행하였읍니다.

 七十세 때에는 노고(魯誥)를 전공하고, 二十세 때에는 축분(竺墳)을 연구하였는데, 세상의 무상(無常)함을 관()하고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고는, 청운(淸雲)의 허깨비 바다를 침뱉고 설산(雪山)의 맑은 향기를 사모하였읍니다. 三산()에서 문을 닫고 九년 동안 벽을 향해 앉았다가, 선원(禪苑)의 과거에 오르고 공문(空門)에 급제하였으니, 하늘 끝의 가을 달이요 바다 위의 푸른 산이었읍니다.

 오랫 동안 외롭고 가난함을 슬퍼하다 법의 보시를 행하려 하였나니, 선서(善逝)의 지혜의 샘물을 파고 중생의 마른 흙을 적시었읍니다. 은산 철벽(銀山鐵壁)에서 불조(佛祖)의 종풍(宗風)을 능히 통하고, 석화 전광(石火電光)에서 인천(人天)의 눈을 활짝 열어, 마니(摩尼)로 두루 응하고 감로(甘露)로 널리 적시었으니, 그 법을 듣는 사람은 가타(伽陀)의 약을 먹는 것 같고 진유(眞乳)의 죽을 먹는 것 같았읍니다.

 안개를 쓸고 하늘을 보매 신금(神襟)이 담박 시원해지고, 구름을 해치고 달을 마주하매 법안(法眼)이 다 맑아졌으며, 보소(寶所)에 이른 이가 더욱 많고 법륜을 굴리는 이가 수 없었으니, 三한()의 법주(法主)요 八방()의 종사(宗師)로서, 그 은택은 인천(人天)에 미치고 명성은 화하(華夏)에 퍼졌으며, 미천(迷川)을 건너는 보배로운 뗏목이요 깨달음 길의 금승(金繩)이었으니, 해야 할 일을 이에 마치셨읍니다.

 쌍림(雙林)에서 옷을 떨치고 옥호(玉毫)가 빛을 감추니, 색신(色身)의 영골(靈骨)을 부수고 금강(金剛)의 신주(神珠)를 내리매, 九부() 四중()이 각각 금담(金曇)을 받들고, 향악(香岳) 봉호(蓬壺)에 받들고 돌아가 다투어 보탑(寶塔)을 일으켰읍니다. 그 법윤(法胤)을 손 꼽아 보면 부용(芙蓉)의 친자(親子)요 태감(太鑑)의 원손(遠孫)입니다.

 무너진 기강을 다시 정돈하고 기우는 기둥을 거듭 받치며, 왕을 돕는 도략을 겸하여 책임지고 세상을 건지는 공을 또한 가졌으니, 충의(忠義)는 임금의 마음에 맞고 영화는 아름다운 부처를 맡았아온데, 특히 성대(盛代)의 돌아보는 은혜를 받들고 산문(山門)의 현작(玄斫)을 잘 세웠으니, 만폭(萬瀑)의 골과 백화(白花)의 들에 맑은 냇물은 흘러 섬돌을 돌고 오랜 전나무는 우거져 빛을 드리웠었읍니다.

 지난 해 한가을에 비를 세우고 이 해 첫여름에 경사스런 자리를 베풀면서, 삼가 붉은 정성을 다하여 아름다운 공양을 깨끗이 차리나니, 하늘 이슬은 유리의 경계에 뿌려지고, 골짝 바람은 첨복(簷蔔)의 향기를 풍깁니다.

 삼가 생각하오면 모든 부처님 세계는 각기 그 장소를 달리하고, 五악()의 산천은 각기 그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중향계(衆香界)는 법기(法器) 보살이 사는 곳이요, 풍악산은 태악 진군(太岳眞君)이 지키는 곳 입니다.

 삼가 원하옵나니, 우담(優曇) 대사는 청허(淸虛)를 끌어 벗으로 삼고, 또한 진군(眞君)을 시켜 현석(玄石)을 진주처럼 보호하게 하시면, 이 색계(色界)가 무너질 때에도 이 금강산은 예와 같을 것이요, 비람(毘嵐)이 불어칠 때에도 이 돌은 의연(依然)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상전하(主上殿下)의 종사(宗社)는 안녕하여 용도(龍圖)의 장구함을 길이 누리시고, 국경은 안온하여 영원히 계격(鷄檄)의 날아다님이 아주 없어지이다.

 또 그 다음에는, 각각 열명 영가(列名靈駕)께서 염부(閻浮)를 아주 떠나고 극락 세계로 빨리 돌아가, 친히 묘한 법을 듣고 무생(無生)을 담박 깨달아지이다.

 또 그 다음에는, 여러 단신(檀信)들은 여러 성인들의 보호를 고루 받고, 모든 신령들의 그윽한 도움을 힘입어, 재앙은 눈처럼 사라지고 경사는 구름처럼 일어지이다.

 

 원불표(願佛表)

 

 삼가 듣자오매 티끌과 모래 같은 국토에서 서방을 가장 즐거운 곳이라 하고, 十방의 여래님 가운데서 아미타가 가장 높은 명호라 하옵니다. 七보()로 장엄한 땅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고, 八진() 공덕의 못에는 연꽃이 서로 비칩니다. 황금의 월면(月面)은 붉은 연꽃 가운데 빼어나고, 백옥(白玉)의 호광(豪光)은 세계 안을 두루 비춥니다. 광명의 화불(化佛)은 三十六만억으로서 그 이름이 같고, 청정한 개사(開士)는 끝없는 향수해(香水海)의 권속입니다.

 진묵겁(塵墨劫) 동안 도를 닦을 때 지승왕자(智勝王子)로서 자재왕(自在王) 앞에서 발심하고 이내 법장 비구(法藏比丘)라 하였아온데, 八十八원()을 내니 원마다 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요, 十六(觀門)을 여니 문마다 모두 거두어 교화하는 것이었읍니다. 항상 고해(苦海)  인자한 배가 되시니 물에 빠진 이를 구제한 것이 무수하고, 항상 연향(蓮鄕)의 지름길이 되시니 진실을 모르는 이를 얼마나 지도하셨던가.

 황룡(黃龍)이 배를 저으매 담란(曇鸞)은 七보()의 배 가운데 오르고, 옥연(玉輦)이 허공을 날으매 선도(善導)는 五운()의 안으로 향합니다. 하늘 풍악 소리가 허공에 차니 보배 일산이 와서 장정(長正)을 맞이하는 때요,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니 꽃 줄기가 문후(文后)를 끌어 대하는 저녁입니다. 장님이 다시 눈을 뜨매 유씨녀(劉氏女)의 눈을 긁는 금 비치게요, 몸의 병이 다시 나으매 풍부인(憑夫人)의 병을 다스리는 좋은 약입니다. 관음 보살은 그를 위해 항상 머리 위에 이고 있고, 마명 조사(馬鳴祖師)는 그 때문에 그 발에 우러러 예배하였읍니다.

 어두운 거리를 비추매 금 수레바퀴는 긴 밤의 지혜의 등불이요, 중생을 건지매 생사의 큰 물결의 금 갈구리입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한 소리에 천마(天魔)는 그 심간(心肝)이 꺾이고, 단정히 앉아 열 번 생각하면 염제(閻帝)는 명부(冥簿)에서 목록을 깎습니다. 진실로 바다를 건너 언덕에 오르고자 할진대 이 좋은 삿대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읍니까.

 그리하여 제자는, 혹은 쇠를 녹여 만들고, 혹은 그림을 그리어 묘향산과 풍악산에서 경례하고, 혹은 흙을 이겨 만들고, 혹은 조각하여 방장산(方丈山)과 두류산(頭流山)에서 머리를 조아렸읍니다. 얇은 비단의 고상한 위의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숙여 합장하게 하고, 묘한 모습의 단엄함은 월륜(月輪)의 금빛에서 일찌기 보지 못했읍니다

 순금의 一구(?)로 마침 공문 도우(空門道友)의 사귐을 입었고, 감태 청라(?靑螺)는 바로 못 위의 연대(蓮臺)의 입상(立像)을 본받았읍니다. 三十二상()의 분명함은 열 가지 모양의 비단처럼 빛나고, 八十종호(種好)의 장엄은 천강(千江)의 달처럼 밝습니다. 승요(僧繇)의 묘한 솜씨는 반드시 신령(神靈)의 그윽한 도움을 입었을 것이요, 호두(虎頭)의 천재는 응당 조화(造化)의 비밀한 부림을 빌었을 것입니다.

 동림(東林)의 흰 꽃 떨기 속에는 혜원(慧遠)이 우러러 의지하고, 서호(西湖)의 푸른 대의 단() 위에는 유민(遺民)이 정례(頂禮)합니다. 금산(金山)에서 다시 만남은 三생() 六十겁()의 덕분이요, 존안(尊顔)을 우러러 뵈옴은 八만 四천세()의 인연입니다. 만일 금생에 일찍 조주(趙州)의 현관(玄關)을 통해 벗어나면, 후세에는 우리 미타님 정토(淨土)에 가서 나기를 원하옵니다. 인자한 아버님께 우러러 사뢰고 귀의하옵나니, 벌거숭이 이 아이를 가엾이 여겨 굽어 보호하소서.

 

 ()스님께 올림

 

 ()는 사룁니다.

 강하승(講下僧) 아무가 강하로부터 와서 기에게 존자(尊者)의 담서를 줌으로 안부를 묻고 물러간 다음 꿇어앉아 읽어보니 글뜻은 멀고 작법은 거대하여 애당초 얕은 지식으로는 죄다 알 수 없는 것임을 살피고 연구하기 꽤 오래하니 지시한 바의 뜻 대략을 알 것 같사오나 바로 그 성대함에 깊히 부끄러울 뿐입니다.

 기는 배움을 일삼아 남북으로 쫓아 다닌지가 지금 十년이 넘었사오나, 천성이 본래 천박하여 얻은 바가 없을 뿐 아니라, 이것을 얻으면 저것을 잃고, 앞의 것을 깨달으면 뒤의 것을 잊으니, 업은 이루지 못하고 도는 더욱 궁하여 파사(婆娑)에게 물 따라 주는 사람이 될 수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五六인()과 함께 강을 건너 남방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 오자, 모두 달아나고 혼자 뒤에 남았으니 이른바 날개를 감춘 자였으며, 종자(從者)도 또한 그 어머니의 병으로 오지 않았으니, 의지할 데 없는 외로운 몸인데다 또 병까지 생겼읍니다. 그러므로 이 때 급한 것은 오직 병을 다스리는 일 뿐인데, 무슨 재목으로 현인(賢人)들을 끌어다 눈 속에 세우겠으며,  무슨 여가에 대중 앞에서 나의 미친 말을 지껄이겠읍니까.

 스님은 내가 이런 줄을 아시면서도

 『하풍(下風)에 서서 서여(緖餘)를 듣겠다.

고 하시니, 이것은 실로 남의 얼굴을 뜨겁게 하고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비록 용렬하고 우둔하나 어찌 급급(汲汲)히 일을 좋아하는 말에 혹에 취하겠읍니까?

 또 스님은 말이 곧아 망녕되지 않은데 그 하고자 함이 어찌 그리 구차스럽습니까?

 나는 봉래산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봄에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우선 머무는 것은, 씩씩하게 데리러 오기시기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거기 가서 그 최상봉(最上峰)에 살면서 미타에게 예배하기를 끝없이 하는 것으로써 필생의 일을 삼으려는데 과연 스님도 그렇게 할 수 있겠읍니까?

 먼저 편지에 스님은 스스럼 없이 나를 존숙(尊宿)이라 일컬었읍니다. 이른바 존숙이란 나이 많고 덕이 높은 사람의 통칭(通稱)입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 고래(古來)의 사가(師家)로서 아무도 남의 문하(門下)가 되지 않고 스스로 장로(長老)가 된 사람을 보지 못했읍니다. 스스로 낮으면서 높이어 손으로 주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하의 장()이면 사람들은 그를 추켜 장로 혹은 존숙이라 하는데, 만일 스님 같은 이면 그런 이름을 들을 수 있거늘, 무엇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스님마저 옳지 않다고 사절하시는데, 하물며 그런 사람이 아닌 내가 어찌 그 말을 좇아 사납게 그 큰 명예를 얻을 수 있겠읍니까?

 사흘이 멀다 하고 글을 보내지마는 그 옳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그저 그대로 두면, 스님의 과한 칭찬을 나도 그대로 취하는 것이 비록 번거롭지마는 어찌 그냥 둘 수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빈 곳집을 모두 기울여 푸른 눈을 더럽히는 것이니 죄송하고 부끄럽기 만만입니다.

 을묘년 봄에 기()는 사룀.

 

 방외(方外)의 사람에게

 

 ()는 사룀니다.

 봄 뒤의 편지에

 『요즘은 면벽(面壁)이 어떠합니까? 천향로(天香爐)의 아름다운 곳에 올랐으니 스님의 공부는 여기에 이르러 더욱 힘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 합니다. 내가 항상 스님을 존중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내가 이 세상에 나서 부처를 배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무리를 뛰어나고, 그 짝을 떠나 뜻을 세상 밖에 두고, 경전을 버리고 염화(拈花)의 묘한 뜻을 연구하는 이가 그 몇이나 되겠읍니까?

 스님의 재주는 사람을 뛰어나고 기운은 구름을 업신여기어, 부귀와 공명을 초개(草芥)와 같이 가벼이 여겨 저기서 나와 이리로 들어오니, 이름을 버리고 세상을 업신여기는 허물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금강(金剛)의 보검()을 들어 정문(頂門)의 바른 눈을 활짝 띄우고, 염가(閻家)의 늙은이를 三천리 밖으로 물리쳐 거꾸러뜨리면 어찌 유쾌하지 않겠읍니까?
 
그러나 한 가지 주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즉 스님은 이치만을 가장 훌륭하다 하고 육체를 무시하니, 이것은 반드시 스님이 남이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사랑함으로써, 후래(後來)를 격려하는 것이요, 굳이 지키는 것은  아닐 것이니, 만일 진실로 그렇다면 그것은 편계(偏計)요 통식(通識)이 아닙니다.

 몸이란 도의 싹이요 또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싹에 의하여 뿌리를 얻고, 그릇이 완전해야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이 어찌 도를 해치는 것이겠읍니까? 세제(世諦)가 비록 억지로 물()이 오는 것을 거역하지 않더라도, 오지 않는 것을 쫓아가면 그것은 다 치우침이니, 중도(中道)에 있으면서 막히지 않고 고요히 도와 합하면 그가 참 도인입니다.

 지금부터는 남이 음식을 주면 먹고 남이 옷을 주면 입으면서,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지키어 마침내 성인의 경계에 이르는 것이 내 소망입니다. 한묵(翰墨)을 통달하는 것은 고요한 가운데서 적당하지 않는 것이라 도를 친할 것입니다. 이미 서로 거두어 주는 친분이니, 그러므로 멀리서라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양 처사(南陽處士)에 답함

 

 봉래산인 기(蓬萊山人機)는 두 번 절하고 남양 처사 족하(足下)께 삼가 답합니다.

 나는 서산(西山)에서 돌아와 봉래산으로 가려고 물병과 지팡이를 챙겨 길을 떠났읍니다.

 하루는 태영(太英) 스님이 나를 찾아 와서 봉서(封書) 하나를 주었읍니다. 나는 세 번 네 번 읽고 족하께서 나를 못내 애중(愛重)히 여기어, 나를 성현이 교화하는 경지에 데리고 가는 것으로 확실히 알았읍니다. 이는 친구에게서 받았더라도 느꺼운 마음을 잊을 수 없거늘, 하물며 어릴 때부터 평생을 바친 대유(大儒)와 대학사(大學士)에게서 이겠읍니까? 멀리 남양을 향해 머리를 숙여 감사할 뿐이었읍니다.

 그러나 오랫 동안 자세히 음미(吟味)해 볼 때 의심이 없을 수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감히 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즉 이른바 도덕이 높고 문장이 묘한 이는, 옛날로 말하면 청량(淸凉), 규봉(圭峰), 영명(永明), 영가(永嘉) 등이요, 지금으로 말하면 서산(西山), 송운(松雲) 등이니, 거기 어찌 내가 들겠읍니까? 나는 비록 서산 문중(門中)의 출신이지마는 학문이 서산에 미치지 못함이 멀거늘, 하물며 서산의 그 재질과 덕에 견주겠읍니까? 그것은 천만 만만입니다.

 나는 생각하건대 들은 이가 잘못 내게 전한 것인 듯 같읍니다. 나를 족하께 천거한 이는 태엄(太嚴)과 대영(大英)인데, 태엄과 대영은 내 친구이며, 또 관서(關西)에는 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없으니, 그릇 전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알겠읍니다. 나는 엄과 영의 벗입니다. 전에 엄이 지나치게 칭찬하는 말로 나를 족하께 농담하였으므로, 지금 말을 낮추어 덕을 칭송하되 욕되게 편지까지 하게 한 것이니, 이것은 한갖 나로 하여금 망녕되게 족하의 큰 칭송을 받게 하였을 뿐 아니라, 얼굴이 뜨겁고 마음이 불안하게 한 것입니다. 아마 나를 아는 사람으로서 족하가 나를 이렇게 우대한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웃으면서

 『한공(韓公)  태전(太顚)과 서로 친한 것을 옛날에 잘못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언기(彦機)는 선림(禪林)의 녹록(碌碌)한 사람인데, 그 아무 공()이 언기를 그처럼 사모한다는 것은 나는 그 까닭을 모르겠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엄의 무리가 족하의 총명으로 하여금 한갖 나를 잘못 보게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세 치의 혀로 초() 나라도 그르치고 한() 나라도 그르쳤으니, 족하는 그를 어긴 도인이라 생각하십니까?

 나는 도덕도 좋아하고 문장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힘이 미치지 못하여 그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서, 그저 이럭저럭 이제 四十년이 되었읍니다. 현자(賢者)가 되려 하여도 어려운데 어찌 대각(大覺)의 화신(化身)의 경계에 이르기를 바랄 수 있겠읍니까?

 엄의 무리가 나를 족하께 칭찬할 때에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말하고 말해야 할 것은 말하지 않았읍니다. 그 말해야 할 것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임천(林泉)과 구학(丘壑)입니다.

 우리 동방의 유명한 산수(山水)는 다 이 언기의 소유입니다. 푸른 산과 반석과 굴과, 세고 잔잔하게 흐르는 물 등은 모두 내 가슴 속에 가득 엉기어 있읍니다. 이 다음에 내가 행여 족하의 문 앞을 지날 때 자리를 주어 앉으라 하고, 향로봉(香爐峰), 풍악산(楓岳山), 두류산(頭流山) 등의 절과 기괴한 형상들을 물으신다면 그것은 다 언기의 입에서 나와 족하의 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티끌 마음이 다 사라지고 세상에 뛰어난 흥취가 솟아날 것이니, 이로써 족하가 나를 사모한다면 나는 족하에게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겠읍니다. 족하는 무엇으로 나를 취하시는 것입니까? 만일 전자(前者)라면 엄의 무리는 반드시 족하에게 죄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요, 후자라면 족하가 나를 대우한다 해서 남의 희롱을 받지 않을 것이니, 오직 족하께서 재량하십시오.

 

 고성(古城)께 올림

 

 전일에 합하(閤下)께서 여러 번, ()를 묻고선 선()을 묻고, 관음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신비스러운 작용을 물으셨읍니다. 그래서 지금 간단히 우리 불조(佛祖)의 가르침과 관음 보살의 변화의 자취와, 또 부촉(付囑)하고 유통(流通)한 일을 인용하여, 합하의 부처님을 향하는 정성스러운 뜻을 내는데 도움이 되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육조(六祖)는 말하기를,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받치고 밑으로는 땅을 받치며, 밝기는 해와 같고 검기는 옻과 같으며, 항상 활동하는 가운데 있으나 활동하는 가운데서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

하였는데,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일태극(一太極)이나 노자(老子)가 말하는 천하모(天下母)도 다 이것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 물건의 본체(本體)는 공허하나 신령하고 어둡지 않아, 모든 이치를 갖추고 모든 일에 응하므로, 천지(天地), 음양(陰陽), 일월(日月), 성신(星辰), 산천(山川), 초목(草木), 사람 및 금수(禽獸)의 무리로서 그 어느 하나도 그의 은혜와 힘을 입지 않고 성립되는 것은 없읍니다. ()이 있는 것은 다 그것을 갖추었는데 누가 홀로 그것이 없겠읍니까? 다만 우매한 사람이 그 까닭을 모를 뿐이니, 이른바 백성은 날마다 쓰면서 모른다 함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우리 석가 여래님만이 스스로 정반왕(淨飯王)의 태자 자리에 있으면서 금륜(金輪)만승(萬乘)의 자리를 침 뱉 듯 버리고, 설산(雪山)에 들어가 六년 동안 수도(修道) 하시다가, 납월(臘月) 八일 밤에 명성(明星)을 보고, 앞에서 말한 그 한 물건을 환히 깨달아 정각(正覺)을 이루고 찬탄하시기를,

 『신기하여라, 일체 중생이 다 여래의 지혜를 갖추었는데 다만 망상(妄想)과 집착으로 그것을 증득하지 못할 뿐이다.

하셨읍니다. 그리하여 집 안의 보배 창고를 보이기 위하여 말로 가르치고 이치를 세워 四十九년 동안 여러 곳에서 연설하셨으니, 자비스런 구름은 널리 퍼지고 법의 비는 멀리 쏟아졌읍니다. 그러자 어리석고 매마른 자는 모두 그 은혜를 입고 번성하였으니, 거기서 중재(中才)와 하근(下根)으로서 그 말을 받들어 뜻을 이해하는 것이 이른바 교문(敎門)입니다.

 조사(祖師)들이 보인 기관(機關)은 교문(敎門)과는 판이하여 입을 열기 전에 곧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다만 한참 동안 말이 없기도 하고, 혹은 기대 앉아 발을 뻗기도 하며, 혹은 눈썹을 치키고 눈을 깜빡이며, 혹은 불자(拂子)를 들고 주장자를 세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은산 철벽(銀山鐵壁)이라 발을 붙일 문이 없고, 석화 전광(石火電光)이라 사의(思議)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만일 누가 여기서 석화 전광을 한 번 잡으려 하여 곧 잡고, 은산 철벽을 한 번 뚫으려 하여 곧 뚫으면, 그는 무리에서 뛰어난 상지(上智)로서, 좋은 말()이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것은 이른바 격외선풍(格外禪風)입니다.

 또 부처님은 말세(末世) 중생으로서 법음(法音)을 직접 듣지 못한 이를 위하여, 十六 관문(觀門)을 따로 세우고, 아미타불을 정성껏 생각하여 연화정토(蓮花淨土)에 왕생(往生)하게 하며, 다시 관세음보살이 三十二 응신(應身)과 천수(千手) 천안(千眼)과 八만 四천의 손과 눈으로 六취()에 고통하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것을 찬탄하되, 호근 물에 빠지고 불에 타며, 혹은 감옥과 도적과 호랑이와 음흉한 여러 어려움을 당했을 때, 지성으로 이름을 부르며 생각하면 다 그것을 면한다 합니다.

 만일 기도하는 일이라면, 혹은 과거(科擧)에 올라 녹위(祿位)를 구하고, 혹은 복과 수명을 구하며, 혹은 단정한 남녀를 구하고, 혹은 공후(公侯)와 장상(將相)을 구하며, 혹은 부처 나라에 가서 나기를 구하는 사람으로서 그 이름을 부르면서 빌면, 보살은 묘한 지혜의 힘으로 밝은 거울이 물건을 비추는 것처럼 무슨 소원이라도 다 이룰 수 있나니, 이것은 이른바 염불문(念佛門)입니다.

 대개 중생이 미()한다는 것은 이것을 미하는 것이요, 불조(佛祖)가 닦아 증득한다는 것은 이것을 증득하는 것이며, 말하는 현밀(現密)의 법은 이것을 보이는 것이니, 근기에는 三종이 있으나 법은 一이요, 문에는 三종이 있으나 이르는 곳에는 二가 없읍니다. 그렇다면 참선이 곧 염불이요 염불이 곧 참선이니, 여기에 무슨 간격이 있겠읍니까?

 부처님이 임종(臨終) 때에 불법을 국왕과 대신들에게 부촉(付囑)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리 문의 담이 되어 외호(外護)하고 유통(流通)하게 하였으니, 그 뜻은 그런 무거운 책임을 맡기려면 유력(有力)한 권세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귀하고 천함과 어질고 어질지 않음이 없이, 마침내 이 도로 다스려 큰 원각(圓覺)의 성()에 함께 들어가게 하려 하였으니, 그 제도가 광대하고 심원(深遠)하다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후대(後代)의 군신(君臣)들로서 불교에 귀복(歸伏)하는 자가 많았으나, 그것을 다 끌어 오려면 번거롭기 때문에 그 한 두 가지를 들어 표방(標枋)을 삼으렵니다.

 서천(西天)의 이견왕(異見王)은 처음에 三보()를 헐뜯었는데, 파라제존자(婆羅提尊者)가 불성(佛性)의 八움게(用偈)로 말하기를,

 『당신의 불성(佛性)이 태() 안에 있으면 몸이 되고, 세상에 있으면 사람이며, 눈에 있으면 보는 것이요, 귀에 있으면 듣는 것이며, 코에 있으면 냄새를 분별하는 것이요, ,혀에 있으면 말하는 것이며, 발에 있으면 걸음을 걷는 것이요, 손에 있으면 물건을 잡는 것입니다. 두루 나타나면 온 사계(沙界)를 함께 하고, 거두어 가지면 한 티끌 속에 있는데, 아는 사람은 그것이 불성인 줄 알지마는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정혼(精魂)이라 합니다.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왕은 이 게송을 듣고 마음이 곧 열리었읍니다.

 () 나라 헌종(憲宗)은 대의(大意) 선사의 『불성은 물 속 같다』는 비유를 듣고 가만히 그 진종(眞宗)을 통했읍니다.

 배 휴(裵休) 상국(相國)이 개원사(開元寺)에 들어가 황벽 희운(希運) 선사에게 물었읍니다.

 『이 벽화(壁畵)의 고승(高僧)들의 형의(形儀)는 여기 있는데 그 고승들은 지금 어디 있읍니까?

 황벽이

 『배 휴 상국님.

하고, 불렀읍니다. 상국이

 『예!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황벽이

 『배 휴가 어디 있읍니까?

하자, 배 휴는 그 말에 곧 깨달았읍니다.

 왕 상시(王常侍)가 날마다 목주(睦州)를 뵈오러 갔는데 하루는 왕 상시가 늦게 왔읍니다. 목주가 묻기를,

 『왜 이리 늦었는가?

하자, 상시가

 『마구(馬毬)를 구경하느라 늦었읍니다.

, 대답했읍니다.

 『사람이 피곤하던가?

 『피곤합니다.

 『말이 피곤하던가?

 『피곤합디다.

하니, 얼른 뜰 앞에 돌기둥을 가리키면서,

 『돌기둥도 피곤하던가?

 상시는 어쩔 줄을 모르고 밤새껏 의심하다가 깨치고는

 『돌기둥도 피곤했읍니다.

고 하였더니, 목주가 『그렇다』했읍니다.

 낭주 자사(朗州 刺史) 이 상(李翔)이 약산(藥山)에게 물었읍니다.

 『어떤 것이 도() 입니까?

 약산이 아래 위를 가리키면서 말했읍니다.

 『알겠는가?

 『모르겠읍니다.

 약산이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도다.

하자, 그 말에 이 상은 깨달음이 있었읍니다.

 한 문공 유(韓文公 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가 되었을 때, 태전(太顚) 선사와 친했읍니다. 한공(韓公)이 선사에게

 『군주(軍州)에 일이 많사오니 경절(徑截)로써 가르쳐 주십시오.

했읍니다. 그러나 선사는 한참 동안 잠자코 있었읍니다. 그러자 삼평(三平)이 선상(禪床)을 세 번 내리쳤읍니다. 한공이 말하기를,

 『스님 문하(門下)에는 뛰어난 제자가 많습니다. 저 시자(侍者)에게서 나는 깨닫게 되었읍니다.

고 했읍니다.

 태사 황 정견(太史 黃庭堅)이 회당 심(晦堂 心)선사를 찾아가서 묻되 「이삼자(二三子)는 나를 숨긴다고 하느냐? 나는 숨김이 없다」고 한 중니(仲尼)의 말 뜻을 물었는데 심 선사는 잠자코 있었읍니다. 하루는 정견이 선사를 따라 산에 오르는데, 바위 곁에 계수나무가 우거져 있었읍니다. 선사는 태사에게 물었읍니다.

 『저 모란꽃 향기를 맡습니까?

 『예, 맡습니다.

 『나는 숨김이 없읍니다.

 태사는 그 뜻을 깨달았읍니다.

 , 장 천각 무진 거사(長天覺 無盡居士)가 도솔(兜率)의 열 화상(悅和尙)을 찾아 뵈었을 때, 열 화상은 그에게 덕산(德山)의 『탁발 화두(托鉢話頭)』를 주어 참구(參究)하게 하였읍니다. 그는 자지 않고 밤새도록 참구하다가, 얼떨결에 발을 뻗어 요강을 뒤덮은 바람에 활연(豁然)히 크게 깨쳤으니, 이것은 다 손으로 중니(仲尼)의 일월(日月)을 받들고 허리에 비로(毘盧)의 심인(心印)을 차고서, 일찌기 우리 법을 도운 것입니다.

 요즘 들으매, 합하(閤下)께서는 백성을 다스릴 때 먼저는 위엄으로 껴잡고, 뒤에는 인()으로 열복(悅服)하게 함으로써, 형덕(刑德)을 아울러 행하여 그 교화가 해우(海隅)에까지 퍼진다 하옵니다. 장차는 중망(衆望)이 될 덕으로써 한갖 한 고을에만 베푼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합하께서는 다음 날 반드시 조정(朝廷)의 우의(羽儀)가 되실 것입니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과거의 일을 거울 삼아, 여래(如來)의 진종 묘결(眞宗妙訣)에 있어서 그 근력(根力)에 맞는 한 법을 가리어, 거기에 전력을 다해 참구하여 우리 금선(金仙)님의 중대한 유부(遺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으시면 천만 다행이겠읍니다. 존의(尊意)가 어떠하신지요?

 물으심을  받들고 답이 없을 수가 없어, 못남을 헤아리지 않고 존엄(尊嚴)을 욕되게 하오니 그 죄가 만만(萬萬)이옵니다.

 

 부휴당(浮休堂)께 올림

 

 제자 언기는 삼가 좌하(座下)에 드리나이다.

 남방에서 온 사람의 말을 듣자오매 대자실(大慈室)의 도력(道力)이 더욱 굳세시고, 침관(浸灌)에 있어서도 또한 게으르지 않으시다 하오니 못내 기쁘옵니다.

 저는 사정이 있어 집시(執侍)한지 오래지 않아, 그 법해(法海)에 헤엄은 치면서도 아직 골수에 배지 못하였아오니 이것이 평생의 큰 한이옵니다.

 작년 봄에 봉래산에서 신흥사(神興寺) 사람을 만나 편지를 써서 붙였아온데, 그 시절이 못내 어수선하여 전하지 않고 도로 가지고 들어왔었읍니다. 이제 언사(彦師) 편에 좌하(座下)에 올려 멀리서 정()을 표하오니, 인자하신 마음으로 받아 주소서.

 

 ()법사 에게

 

 스님이 앉은 보리수 아래 서산에서 나온 족하의 이름이 있다고 들으니 언기는 천지(天池)에서 놀고 북명(北溟)으로 되돌아온 자이옵니다.

 이는 바로 스님의 스승인 옛 웅공(雄公)의 벗이니 거듭 슬퍼합니다. 웅공과 헤어진지 이제 이미 十년이 넘었고, 그리고는 끝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마쳤는데 그 때문에 스님이 웅공의 반렬에서 제일가는 사법임을 듣고 한번 만나 웅공이 남긴 말씀을 간절히 듣고 싶소이다.

 그 말씀은 우리 선사(先師)의 말씀이니 대저 선사의 말씀은 시배(時輩)의 입과는 같지 않으니 마치 파인(巴人)의 백설곡(白雪曲)이 자기(子期)의 귀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리니 어찌 그 들음이 일찍 있지 아니하였든 것임을 뉘우치지 않겠읍니까.

 이럼으로 내가 지저기는 자들의 희롱하고 웃는 바가 되지만 희롱하고 웃는 자가 많을수록 그 도가 끊기지 아니함은 있지 않는 것이니 우리 선사의 도가 끊기고 웅공의 도만 홀로 끊기지 아니함이 있지 않을 것이며, 역시 선사의 도는 전하고 웅공의 도만 홀로 전하지 아니함도 있지 않을 것이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끊기지 않겠읍니까. 「사람은 얻는데 있다」고 할 수 있으니 스님이 능히 그 도를 전하여 후세에 전한다는 것은 정녕 이른바 한 여우의 겻뜨랑(一狐之腋) 입니다.

 스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도가 끊어지려 하며는 또한 앞으로 끊기지 않게끔 도모할 것인데 만일 「나는 웅공의 제자이니 너의 말이 비록 옳으나 내가 어찌 다시 너를 위하겠느냐」하신다면 기는 다시 말할 수 없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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