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대장경 제82권

무용당집(無用堂集) 하권

oṃ maṇi padme hūṃ 2026. 2. 27. 00:24

 무용당집(無用堂集) 하권

 

 수연(秀演) 지음

 

 나아가지 못함을 답함

 

 요즈음 과분(過分)하게 부름을 입어 못내 감격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무용(無用)은 무용(無用)의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비록 그 말석(末席)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十九인()의 눈웃음을 어찌하겠읍니까? 여러 형들은 어째서 나 수연(秀演)을 주머니 속의 송곳으로 여기면서도 첫 손가락을 꼽아 부르셨읍니까?

 내가 옛날 주머니를 차고 단교시(斷橋市)를 지나가는데, 어떤 소금장수가 달려나와 내 옷자락을 당기면서

 「내 소금을 사시오, 내 소금을 사시오」하였읍니다. 그가 어떻게 내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알겠으며, 또 내가 마음이 있었다면 왜 끝끝내 거절하였겠읍니까? 나는 법계(法界)를 짊어질 힘이 없는데, 형들이 만에 하나라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 소금장수와 무엇이 다르겠읍니까?

 더구나 대교(大敎)는 대기(大機)라야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니, 보살(菩薩)의 쌓은 행()은 마치 폭린(曝麟)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육군(六群) 이하로 몇 十층이 있는 줄모르는데, 八十권의 화엄경(華嚴經)을 몇 달 동안에 다 읽어 마친다면 어찌 그렇게도 초솔(草率)한 일이겠읍니까?

 그것은 마치 꿈 속에 천마리 강산을 두루 돌아다닌 자가, 꿈을 깬 뒤에 방불하게 상상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그러고도 말하기를

 「나는 화엄경을 다 읽었다.

하면서 스스로도 자부(自負)하고 남에게도 자랑한다면 이 두 가지는 저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나는 마치 느리고 절룩거리는 말과 같은데 어찌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과 같겠읍니까? 바로 일생을 두고 기약해도 오히려 부족할 것이니, 그러므로 나 같이 비루한 자로 하여금 그 법석(法席)을 더럽히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 나는 기질(氣質)이 약하고 어려 十여년 동안 뒷방에 혼자 있으면서, 앉았거나 누웠거나 모든 것을 오직 마음에 편리한대로만 하고 지냈는데, 만일 일단 그 대중 가운데 끼이게 된다면, 나의 옛 습관을 버리고 남의 새로운 취미를 ?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치 닭이 종고(鍾鼓) 소리를 즐기고 잔나비가 주공(周公)의 옷을 입은 것과 같을 것이니,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한 유(韓愈)의 미치광이 노릇을 해서 시원하겠읍니까?

 봄이나 여름이 초목을 다 살리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지마는 마르고 썩는 놈은 어찌할 수 없으며, 가을이나 겨울이 초목을 다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지마는 소나무 잣나무는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시(四時)를 맡은 것은 천지(天地)인데, 천지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여러 형인들 또한 나를 어쩔 것입니까?

 천 사람도 많지 않고 한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니, 부디 여러 형들은 적당한 사람을 구하고 달리 사람을 바라지 마십시오.

 귀를 어지럽게 했읍니다. 한 번 웃으시기 바랍니다.

 

 [1]최 정언(崔正言)에게 부침

 

 비록 합하(閤下)의 풍색(風色)은 뵈옵지 못하였사오나, 선사(先師)께서 세상에 계실 때 합하의 형제분을 매우 칭송하여 말씀하시기를

 「당세(當世)의 유아(儒雅)로 존경할 만한데, 만일 그 높은 풍의(風義)가 아니라면 어찌 능히 도()가 같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성심(誠心)으로 열복(悅服)할 수 있게 하겠는가?

하셨읍니다.

 이 말씀을 들을 그 때에는 귀가 놀라고 마음이 움직여, 한 번 그 두 분을 모시고 고론(高論)을 듣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 채, 학사(學士)님이 먼저 떠나시고 얼마 안 되어 선사께서 또 그 뒤를 이으시니, 세상 일이 다 틀린지라 실로 통곡할 일이었읍니다.

 지금은 오직 합하만이 계시되 다행히 인근(隣近)이라, 의리로 보아서는 마땅히 서둘러 달려가 뵈었어야 하겠사온데, 이럭저럭 이렇게 되었사오니 그 죄가 많다 하겠읍니다.

 그런데 요즘 듣자온대 그 행차가 산정(山庭)까지 왔다가 그대로 돌아가셨다 하옵는데, 그럴 흥미가 없어 그랬사온지 깊은 숲 속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서는 실로 알 수 없는 일이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빈도(貧道)의 죄가 아니오니 합하께서는 용서하십시요.

 만일 합하께서

 「조수(鳥獸)와 함께 사는 자로서 비록 인정(人情)에서 멀다 하나, 나와 그는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으므로 그가 오래 전부터 내게 와서 나를 뵈었어야 할 것이다. 내가 거기 가기 전에는 그가 나를 모른다 한다면 그는 반드시 실성(失性)한 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간만(簡慢)한 자일 것이다. 저 혜원(惠遠)과 태전(太顚)이 어찌 고승(高僧)이 아니겠는가?

하신다면, 빈도(貧道)의 죄는 물을 얼음에 보탠 것 같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편지로 사뢰는 것입니다.

 요즈음 장마 더위가 물러갔사온데 기거(起居)가 어떠하시온지 사모하는 마음 못내 간절하옵니다.

 빈도는 본성(本性)이 매우 옹졸하고, 보내고 맞이하는 데에 게으를 뿐 아니라 거기에다 선사(先師)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로는 만사에 아무 생각이 없어졌읍니다. 그런데다 광음(光陰)은 새처럼 빨라 사람을 재촉하여 노사(老死)의 구덩이 속에 거꾸로 떨어뜨리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삼으니 참으로 두려워할 만한 일이옵니다.

 그러므로 앞길의 자량(資糧)은 마음을 거두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서방(西方)의 성자(聖者)를 간절히 부르는 것 만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만 길의 큰 구덩이를 건너 저 칠보(七寶)의 연꽃 위로 오름에는 이 이외에 다른 길이 없읍니다.

 모르겠읍니다. 합하께서는 천척이 넘는 외나무 다리 위에서 붙들 만한 어떤 무엇을 이미 준비하고 계시옵니까? 이 마당에 있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나를 밀어 험한 땅에 떨어뜨리는 도구일 뿐이며, 오직 믿을 만한 것은 한결 같이 서방을 생각하는 깨끗한 업()이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짚어야 할 그 쇠지팡이인 것입니다.

 옛날의 백향산(白香山), 장 승상(張承相), 황 태사(黃太史) 등도 늙으막에 가서는 다 서방(西方)을 생각하는 글로 발원(發願)하였는데, 그것은 다 본받을 만한 일입니다. 합하께서 만일

 「나는 유자(儒者). 나는 이단(異端)을 믿지 않는다」

하신다면, 그렇다면 저 백향산의 무리들은 유자가 아닙니까? 합하는 지금 금세(今世)에 살고 계시지마는 모양도 옛이요, 마음도 옛이며 행하는 것도 다 고인(古人)의 도()입니다.

 효도를 위해서는 힘을 다하고 충성을 위해서는 목숨을 다하여 고향에 살면 고향 사람이 그 선()을 칭송하고, 백성을 사랑하므로 백성이 그 덕을 노래합니다. 十년 동안 칼을 갈아 다만 닭 한 마리에 시험해 보는데 백리태고(百里太古)[2]희황(羲皇) 시대에 높이 누워 있으니, 만일 서릿발 같은 칼날로 그 [3]촉룡(燭龍)[4]운붕(雲鵬)을 당하게 한다면, 그 신물(神物)은 다시는 칼집 속에서 울지 않을 것입니다.

 요즈음 어떤 [5]한사(寒士)가 와서 합하를 칭찬하기를 백성이 생긴 뒤로 아직 없었던 인물이라 하였읍니다. 그래서 그가 떠난 뒤에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 구리쇠로 초상(肖像)을 만들어 받들었는데 그 한사(寒士)는 그 고을 사람이었읍니다.

 또 옛날 유 자후(柳子厚)는 유주후(柳州候)로 있었읍니다. 그가 죽은 뒤에 사당의 상()을 받들었는데, 이것으로 그것을  비교할 때 유주보다 현명하심이 멀었읍니다.

 합하께서 만일 임금님에게 충성하고 부모님에게 효도하며 백성들에게 인자하고 물건을 사랑하는 마음을 정토(淨土)에 회향(回向)한다면, 합하는 반드시 구품(九品)의 연지(連池)에서 그 빛나는 자금색(慈金色)의 몸으로 금강대(金剛臺) 뒤에 우뚝히 높이 서실 것이니 합하가 아니고 누구이겠읍니까. 합하는 부디 힘쓰십시오.

 아직 한번도 뵈옵지 못했사온데 이렇게 죄송스럽게 편지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여러해 동안 우러러 사모하는 정성이기 때문이며, 또 듣건대 사람으로써 그 말을 버리지 않는다 하오니, 합하께서는 굽어 살피시기 바라나이다. 그리고 또 시 一절()을 드리오니 이것은 내 뜻을 말했을 뿐이옵니다. 그러나 어찌 시라고 할 수 있겠읍니까?

 

 임 교리(林校理)에게 올림

 

 봄이 돌아와서 오가는 인편에 합하(閤下)의 병후(病候)가 조금 나아 산사(山寺)에서 한가히 지내신다 들었읍니다. 그 고요한 속에서 반드시 소득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빈도(貧道)는 마음 공부가 처음보다 차츰 떨어지고 그저 흰 머리털만 많이 얻었을 뿐입니다. 죽기 전에 다시 합하를 뵈옵고 지난 날에 다하지 못한 정회를 풀어 보고 싶사오나, 합하는 병으로 왕림하시지 못하고 빈도는 늙어 달려가지 못하오니, 이 소원마저 빈 골짜기로 돌아가지 않나 두려워할 뿐이옵니다.

 항상 지주(地主)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합하의 풍류를 찬탄하였는데, 유아(儒雅)[6]명부(明府)도 또한 수석정(水石亭)으로 맞이하고 싶사오나 아직 이루지 못하니, 이 또한 한 가지 한()이옵니다.

 이 수석정에 관한 시구(詩句)로서는 명사(名士)들의 작품이 매우 많은데 합하의 [7]보타(寶唾)를 얻지 못해 사람들도 다 흠으로 생각합니다. 병후(病候)도 요즈음에는 회복 되셨다는데, 왜 한 번 붓을 휘두르기를 아껴 이 임천(林泉)의 한 빛을 감손(減損)시키십니까?

 춘추전(春秋戰)의 국책국어(國策國語)이 산중에 없읍니다. 만일 나를 위하는 합하의 사랑이 아니면 누가 나로 하여금 그것을 한 번 읽게 할 수 있겠읍니까? 그런 줄 아시고 오는 사람의 어깨를 붉게 하시면 천만 다행이겠읍니다.

 자세히 못 씁니다.

 

 황 부사(黃府使)에게 올림

 

 어제 풍색(風色)을 뵈옵게 된 것은 실로 천행이었사온데, 헤어지고 만남이 무상(無常)하여 이 숲속이 또 쓸쓸하게 되었읍니다. 이 한림(李翰林)의 시에 만남은 적고 이별이 많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인가 합니다.

 깃발을 올리신 뒤로 민정(民政)을 다스림에 있어서 신상(神相)이 여전하시다니 못내 기쁘옵니다.

 빈도(貧道)는 수석정(水石亭) 위에 고요히 앉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다 마음을 기쁘게 하고 성품을 기르는 소리와 빛깔이라, 이 가운데서 얻는 것은 다만 스스로 즐거워할 만한 것이온데, 합하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한()할 뿐이옵니다.

 옛부터 명인 달사(名人達士)들로서 숲 속에 사는 사람들과 잘 지낸 이가 많았사온데 합하께서도 그것을 이어받았으니 또한 고인(古人)이옵니다. 조만간 합하께서 임 교리(林校理)를 데리고 이 수석정 위에 앉아 이 즐거움을 나누어 누리신다면 백련(白蓮)에 높은 모임도 한낮 일로만 추억하지 않게 되리니 오직 이것을 바랄 뿐입니다.

 졸시(拙詩)는 편지에  다하지 못한 정회(情懷)를 대신하는 것이오니 살펴 주시기 삼가 바라옵니다.

 백성을 위하시는  몸 진섭(珍攝)하시기 삼가 비오면서, 송구스러움 다 쓰지 못합니다.

 

 임 교리(林校理)에게 올림

 

 생각하면 성인(聖人)의 제도로서는 끝났다 하더라도 효심(孝心)만 변하지 않았으면, 반드시 신상(神相)이 있어 멀리 우러르는 정이 실로 갑절이나 될 것입니다.

 산인(山人)은 금년에 나이 六十七이라 거의 다해 가는 목숨이 아침이 아니면 저녁일 것이니, 오직 두렵기는 합하(閤下)를 다시 만나 뵈옵기 전에 뼈가 먼저 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듣건대 상국(上國)의 명령을 받자왔다 하는데 사실입니까? 만일 사실이라면 장유(壯遊)도 겸하게 될 것이니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는 탄환이 어느 한구석에서 쓰이지 못함과 같나니, 이것 또한 부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이 참판 광좌(李參判光佐)씨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으며 또 어디 계시는지, 회서(回書)에 알려 주시기 삼가 바랍니다.

 일찌기 조계산(曹溪山)에서 다행히 모시고 고론(高論)을 듣자온지 어느덧 十년이 지났읍니다. 노졸(老拙)이 먼저 옛날 놀던 곳에 가 있으면서 다시 찾아 주시기를 눈이 빠지라 기다린지도 이제 이미 五년, 六년이 되었읍니다. 어찌 일찌기 한 사람을 만난 탄식이 예와 이제의 구별이 없이 이처럼 다 같은 것입니까? 이것은 실로 눈이 높은 낭군(郞君)을 그리는 선연(嬋姸)한 신부(新婦)의 마음과 같고, 또 진흙에 붙은 솜을 만에 하나라도 건지려는 늙고 추한 노파의 안타까움과 같은 것이니 왜 이처럼 주착이 없는지 모르겠읍니다.

 봄 추위에 귀체 보중(保重)하시기 삼가 비오며, 짧은 종이에 다 쓰지 못합니다.

 

 김 수재(金秀才)에게 부침

 

 요즈음 가뭄과 장마가 잇달아 무더위가 대단하온데 시외(侍外)의 면식(眠食)이 어떠합니까?

 계축년(癸丑年)에 한 번 만난 점은 피차가 다 서로 같은데, 산인(山人)은 산을 내려가지 않고 세객(世客)은 세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다시 모일 인연 없음이 지금까지 한()스럽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들으매 [8]달 속의 계수나무를 거의 꺾을 뻔하다가 못했다 하니, 가지는 높고 손이 짧아 그리 된 것입니까? 가석합니다.

 여러 사람들의 소망일 뿐 아니라, 마치 九만리의 먼 길을 거의 간 것과 같으니 경하할 만한 일입니다. 이것이 어찌 하늘이 그 기운을 채우고 그 손을 길게 하여 맨 꼭대기의 가지를 꺾게 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렇다면 오늘에 조그만 것을 잃고 후일에 큰 것을 얻음이니 또한 경하할 만한 일입니다. 족하께서는 왜 슬퍼하십니까? 기뻐하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또 들으매 족하께서는 장자(莊子)에 힘을 써서 과거(科擧)의 글로 삼으려 하신다니, 한 편으로는 족하를 위해 기뻐하고 한 편으론 족하를 위해 슬퍼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장자(莊子)는 옛날의 신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으로서 그 도는 크고 그 지혜는 밝아 천지를 작다 하고 일월을 어둡다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 언론은 넓고 문장은 뛰어나 중니(仲尼)의 인()과 백이(伯夷)의 의()도 그 우스게를 면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으며, 그 때에 있어서 아무도 알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9]도룡(屠龍)의 한숨을 쉬었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늘 하물며 지금이겠읍니까?

 만일 지금에 장자의 웅변과 대론(大論)으로 천하를 누르려 한다면, 천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반드시 괴상타 할 것이요, 괴상타 할 뿐 아니라 또 그 따라 그르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을 나타낼 수 있고 이름을 드날릴 수 있으리까. 족하(足下)를 위해 한 번 슬퍼함이 옳지 않겠읍니까?

 그러나 장자(莊子)의 골수(骨髓)를 얻어 마음을 [10]()에 어리게 하고 기운을 [11]()에 합하게 하여, 무유향(無有鄕)과 광막야(廣漠野)에 소요(逍遙)하고 방황(彷徨)하면서 만승(萬乘)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천금(千金)을 초개(草芥)처럼 보는 이를 하늘의 군자(君子)라 한다면 그는 밑으로 녹록(碌碌)한 공명을 내려다 보기를 마치 [12]원추(鵷鶵)가 썩은 쥐고기를 보듯하리니, 그렇다면 이것은 족하를 위해 한 번 기뻐함이 옳지 않겠읍니까?

 그러나 족하의 뜻이 어찌 여기 있겠읍니까? 그것은 꽃을 따서 꿀을 만들고 벌레를 빌어 벌을 만드는데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아아, 그것은 족하의 뜻이 작아 하늘의 군자가 되지 못하고 사람의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러나 몸을 들내고 이름을 드날려 부모를 나타내는 것이 효도의 처음인데, 족하는 부모에게서 받은 몸과 터럭을 감히 헐지 않은 것을 효도의 마지막이라 하여 족하는 이로써 족하의 현()이 산인(山人)의 현()과 거리가 먼 것을 슬퍼하는 것입니다.

 산인(山人)은 자벌레처럼 바윗굴에 엎드려 있으면서 지기(志氣)가 마르고 오그라들어 다만 다 썩어 가는 몸둥이만 보존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고인(故人)을 위해 가엾이 여기는 것입니까?

 혹 치소(緇素)가 다르다 하여 꺼려하지 않으시거든 구름을 헤치고 한 번 찾아 주시면, 반 나절이나마 한가함을 얻고 이 숲 속도 적막하지 않을 것입니다.

 갈등(葛藤)이 끝나지 않아 잔소리를 면하지 못했읍니다.

 

 최 상국(崔相國)에게 올림

 

 저는 백암(栢庵)의 역사(役事)로 천리 밖에 있어서 합하(閤下)의 행차를 바랄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이전부터 동강공(東岡公)이 백암을 사랑하는 것은 도 잠(陶潛)이 혜원(惠遠)에 대한 것이나 소 동파(蘇東坡)의 종밀(宗密)에 대한 것보다 더욱 깊었읍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합하의 문으로 달려간지는 이미 오래였읍니다.

 삼가 사뢰옵나니 봄이 저물어 가는데 상국 합하의 [13]체리(體履)가 어떠합십니까. 엎드려 사모하옵기 못내 간절합니다.

 저는 죄역(罪逆)이 깊고 중하여 불측(不測)의 화를 당했읍니다. 즉 연전 七월 二十五일 초저녁에 백암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그 애통함을 어찌 다 사뢸 수 있겠읍니까. 백암이 떠난 뒤로는 잇따라 밤마다 광서(光瑞)가 있었사오며 이레째 화욕(火浴)하던 날 밤에는 그 상서가 더욱 컸으니, 한 줄기 흰 기운이 마치 흰 비단 폭처럼 남북으로 뻗쳐 원근(遠近)이 다 보았읍니다.

 또 三일을 지나서 뼈를 거두는 날에는 한 조각 영골(靈骨)을 소나무 가지 위에서 얻었는데 금년 늦봄이나 초여름에는 탑을 세워 그것을 모시려 하였읍니다. 의리로 보아 마땅히 곧 달려가 아뢰려 하였사오나, 일이 어긋나고 길이 멀어 이제사 비로소 인편에 전하게 되어 정례(情禮)를 전연 돌아보지 않았사오니 아홉 번 죽은들 어찌 후회하겠읍니까.

 수년 전에 현낭군(賢郎君)님이 나라의 일로 호남(湖南)을 순찰(巡察)할 때 임송사(臨松寺)에서 수연(秀演)이 백암의 역사 때문에 그 암자에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 오라고 명령하셨읍니다. 그 때 동강공이 백암을 사랑하셨다는 옛 일을 친절히 이야기하셨읍니다. 죄송스럽게 그 얼굴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들을 때, 귀는 시원하고 눈은 뜨이었으며 마음은 저절로 열리고 손은 저절로 합해졌읍니다.

 수연(秀演)은 후생(後生)으로서 비록 동강공을 모시지 못하였고 또한 합하를 뵈옵지 못하였사오나, 삼가 현랑군(賢郞君)의 아모(雅貌)와 호기(浩氣)를 접하게 되오매 마치 두 선생을 뵈옵는 듯하였사오니, 그 기쁘고 다행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었겠읍니까.

 선사(先師)의 유고(遺稿)는 거의 十여편에 이르지마는 모두 흩어져 없어지고 겨우 몇 편만이 남았기에 그 중에서 정선(精選)하여 출판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것을 보내 드리오니 합하께서 [14]근정(斤正)해 주심이 어떻겠읍니까. 그리고 그 머리에 서문을 써 주시면 선사가 세상에 계실 때나 떠나신 뒤에나 합하께서 내리신 영광을 얻음이 지극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이미 서방(西方)으로 가신 영혼도 또한 깊은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부수고 뼈를 가루로 만들더라도 그 깊은 은혜의 만에 하나라도 갚기 어려울 것입니다.

 존엄(尊嚴) 앞에 이렇게 번거로움을 드리면서도 죄를 피할 줄 모르는 것은 오로지 합하께서 선사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또한 나를 사랑하여 허물하지 않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황송하여 더 자세히 쓰지 못하나이다.

 

 곡 성쉬(谷城倅)에게 올림

 

 얼마전에 만나 뵈옵게 된 것은 실로 하늘이 준 것입니다. 항아리 속의 건곤(乾坤)이 비록 한가하다 하나 꿈 속의 세월은 매우 바빴으니, 만나고 헤어짐이 전광(電光)과 석화(石火) 같음을 어찌합니까. 마치 날아 다니는 신선이 잠깐 머물면 옥 같은 이()가 반쯤 열리는 것처럼, 학가(鶴駕)가 행차를 돌릴 때 미처 눈도 들기 전에 이미 아득한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읍니다.

 남겨 두신 시를 때때로 읊어 보면 어금니와 볼에서 향기가 생기는데, 이로써 우러러 사모하는 고달픔을 조금 누그러뜨릴 뿐이옵니다.

 생각하면 요즈음 꾀꼬리의 노래가 차츰 미끄러워지고 보리 물결이 처음으로 일어나는데, 공무(公務)의 여가에 흐린 정신을 떨어 버리고 청산과 녹수를 방촌(方寸)에 담고 소요(逍遙)하실 것입니다.

 빈도(貧道)는 대중을 가르치는 이외에 다른 일이 없고 날마다 힘쓰는 공부는 다만 흩어지는 마음을 거두어 들이는 것 뿐입니다.

 [15]산인(散人)의 종적(蹤跡)이란 마치 깊은 안방의 처녀와 같아서 사람을 보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스스로 나아갈 길이 없사온데 아무리 굳이 뵈옵고자한들 어찌 될 수 있겠읍니까. 다행히 [16]오마(五馬)를 다시 [17]?(蘿逕)으로 돌리실 수 있으면 이 [18]임하(林下)가 이처럼 적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거친 글씨와 거친 말이 한 장 편지로 다하지 못한 정회를 다시 폅니다. 혹 틈을 내어 한 번 찾아 주시면 얼마나 기쁘겠읍니까. 황송함을 다 쓰지 못합니다.

 

 삼가 호남 방백(湖南方伯)에게 올림

 

 정월에 제가 사미(沙彌)가 가는 편에 편지를 드렸사온대, 문지기의 거절로 전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으니 참으로 섭섭하였읍니다.

 지금은 하늘과 땅이 서로 조화하여 만물이 화락하온데, 삼가 사뢰옵기는 합하의 기후가 시절을 따라 태평하시다 하오니 못내  기쁘옵니다.

 빈도(貧道)는 작년 十二월에 송광사(松廣寺)로 옮겨 또 한 봄을 맞이하여 선송(禪頌)을 폐하지 않으면서, 합하의 내리시는 외호(外護)를 입사오니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중들의 병은 이치를 세밀히 분석하는데 있사온데, 합하께서 잘 살피시고 [19]이언(邇言)을 들어 주셔서, 장님으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고 절름발이를 잘 걷게 하시니 만일 인인 군자(仁人君子)가 아니면 천지의 [20]곡성(曲城)의 큰 도량이십니다. 한 집이 무너짐을 붙들고 한 사람의 물에 빠짐을 건지는 것도 사람들이 다 칭찬하거늘, 하물며 이렇듯 하시어 마치 봄이 모든 초목에 은혜를 펴는 것과 같음이겠읍니까. 모든 산에 기뻐하는 빛이 띄고 모든 골짝에 즐거워하는 소리가 가득하거늘, 어찌 희황(羲皇)의 시대만을 태평성세라 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혹 왼쪽 눈은 다시 밝아졌지만 오른쪽 눈이 그대로 어두워 옛날의 완전한 눈으로 회복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합하께서 만일, 한 눈이면 족하다 하시면서 금쪽집개를 다시 드시지 않는다면, 아아 마침내 반쪽 사람이 되고 말 것임을 어찌합니까. 그러나 부모로서 자식에 대해 그럴 수가 있겠읍니까. 이것은 천치 아이의 망녕된 생각일 것입니다.

 날마다 춘행(春行)을 바라면서 다시 풍색(風色)을 뵈오려 하옵는데, 누가 니승(尼僧)을 위하여 가을을 기약하겠읍니까.

악시(惡詩) 이율(二律)은 지난 겨울에 지어 둔 것이온데, 그 캐묵은 것을 이제사 드리옵니다마는 다만 뜻을  나타내었을 뿐이옵니다. 포고(布鼓)가 어찌 뇌문(雷門)에 맞겠읍니까.

 엎드려 비옵건대 창생(蒼生)을 위하는 존체(尊體) 보중(保重)하소서. 황송하옴 자세히 드리지 못합니다.

 

 이 석사(李碩士)에게 답함

 

 날마다 [21]풍색(風色)을 뵈옵기를 바라던 차에 먼저 주신 편지를 받자오니, 마치 바다 기러기의 한가한 모습을 뵈옵는 것 같습니다.

 빈도(貧道)는 다만 시천(詩川) 선생이 석사(碩士)의 성장(姓長)이신 줄로만 들었사온데 이제 또 [22]조수(?)의 일까지 하심을 알았으니 어찌 선생의 도()가 오늘에 있어서 무너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했겠읍니까. 선생과 선사(先師)의 서로 친함은 마치 저 도 잠(陶潛)과 혜원(惠遠), 한 유(?)와 태전(太顚)의 그 사이와 같았는데 거기에 있어서 무슨 예와 이제가 있겠읍니까.

 아아, 선사가 먼저 떠나시고 선생이 또 그 뒤를 따랐읍니다. 그러나 그가 끼친 향기는 아직도 분명히 종이에 남아 있기에 때때로 그것을 받들어 읽고는 두 줄기 눈물이 뺨을 흘러 내립니다. 선생의 문하에 석사가 있으니 선생이 비록 땅 속에 계시더라도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불초 연(不肖演)은 아직 선사의 방을 엿보지 못했는데, 석사가 이처럼 내 도를 칭찬하심은 진정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장(詩章)이란우리 집안의 군더더기 일입니다. 그러나 옛날 득도(得道)한 사람들이 혹은 그 깊은 진리를 시로 나타내지마는 그것은 자연히 음률에 맞는 것이니, [23]노능(盧能)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따위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은 선사를 곡()한 뒤로 일에 대한 흥취가 모두 떨어지고 또 나이도 아주 늙었으므로, 마음을 맑히고 생각을 고요히 하여 나의 변하지 않는 처음 뜻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아침에 읊고 저녁에 지껄여, 저 문필(文筆)을 일삼은 [24]도필(刀筆)의 벼슬아치처럼 한다면 반드시 대방가(大方家)의 우스게가 될 것입니다.

 혹 경계에 부딪치고 인연을 만나면 부득이 서시(西施)의 찡그림을 본받는데 이 산중에는 글하는 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에 의외의 칭찬을 과히 듣게 될 뿐이니, 그럴 때는 늘 마음이 부끄럽고 얼굴이 붉어집니다.

 석사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은 내가 하려고 한 말인데 석사가 먼저 해 버렸으니, 이것이 어찌 저 우물의 개구리가 바다로 갔을 때 자라가

 「나는 못내 즐겁다. 왜 여기 들어와 보지 않는가?

고 하는 말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읍니까?

 나도 속가(俗家)에 있을 때 선유(先儒)의 글을 읽거나, 혹은 운 상인(雲上人)의 글을 보았는데, 그것은 석사의 말과 같았읍니다.

 내 지금 그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크게 한 번 웃습니다. 저 교()의 깊다는 것이 우리 교의 얕다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데, 석사는 그 깊고 얕음의 어떠함을 깊이 연구하지도 않고, 도리어 [25]시축(尸祝)[26]준조(?)를 넘어 [27]할팽(割烹)을 대신하겠다 하니 너무 지나치지 않읍니가.

 옛날의 고명(高明)한 선비들로서 나이 젊고 기운이 왕성할 때에는 마음으로 그르다 하고 입으로 비판하면서 못할 짓이 없다가 늙으막에 가서 달식(達識)의 고론(高論)을 듣고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자들이 가끔 있었읍니다. 그런데 석사의 오늘의 고집이 저 숭악(嵩岳)의 태전(太顚)과 황벽 희운(黃蘗希運)의 불러 일으킴에 의해  비로소 꿈을 깨게 될는지 어찌 알겠읍니까. 이교(二敎)의 깊고 얕음에 대해서는 말로는 장황하고 붓으로는 번거로우므로 다음 날 만날 때로 미루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전등록(傳燈錄)에 대해서는 시키신대로 하고 싶은 생각 간절하오니, 어두움속의 밝은 달은 반드시 칼을 어루만지는 이의 돌아봄이 되기 때문에, 석사의 천하가 크게 밝게 되는 때를 기다려 드리는 것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봄 날씨가 차츰 따뜻해집니다. 면식(眠食)이 한결같으시기를 바라오며,  오직 석사님이 잘 살피시리라 믿습니다.

 

 백암화상문 서(栢庵和尙文序)

 

 옛 사람은 글을 조박(糟粕)이라 했다. 그렇다면 글은 결코 귀하다 할 것이 못 된다.

 그런데 아아, 마음은 한 몸의 주인이요 만물의 근원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 곳이 없고 그 체()는 형상이 없는 것이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형상이 없는 것의 그림자이니 글도 또한 그런 것이다. 그러나 흐름을 더듬어 그 원인을 얻고 싹을 인해 뿌리를 알게 된다면 이 우주에 없어서 안 될 것도 또한 글인 것이다. 그러므로 [28]삼교(三敎)의 성인(聖人)들도 형상이 없는 몸으로 말이 없는 가르침을 말씀하시어, 인간 세상에 남겨 두어 지금까지 쇠해지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 가지 표준이 있으니 덕()을 세우는 것과 공()을 세우는 것과 말()을 세우는 것이다. 덕이 잇는 사람은 반드시 공과 말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겸하기는 성인(聖人)이 아니면 될 수 없는 것이다.

 옛날부터 말을 세우는 사람은 모두가 그 한 반점(斑點)을 엿보아 문장을 이루는 것이니, 그 말도 또한 빈 말이 아니다. 달마(達摩)가 비록 선문(禪文)으로 성품을 밝힌다 했지마는 그래도 선경(禪經)과 선게(禪偈)가 있으니, 그 밖엣 것은 논할 필요가 없다. 아난(阿難)이 대장경(大藏經)을 결집(結集)한 뒤에 용수(龍樹) · 마명(馬鳴) · 천친(天親) · 무착(無着)이 논()을 짓고, 진외(塵外) · 혜장(慧長) · 증관(澄觀) · 종밀(宗密)이 소()를 지어, 그 속을 드러내고 그 머금은 것을 토했으니 그것은 다 도()를 나타내는 도구인 것이며, 나아가서는 종()이 오파(五派)로 나눠지게 된 것이다.

 한 칼과 한 입으로 불조(佛祖)를 죽이고 삼키되, 혹은 꽃을 들고 혹은 게송을 외워 불을 번쩍이고 위엄을 부리면서 귀에 천둥을 울리고 눈에 번개불을 번쩍이는데, 이로 인해 귀머거리와 장님의 그 눈이 밝아지고 그 귀가 트이어, 다시 푸른 하늘과 흰 날을 보며, 다시 흐르는 물과 높은 산을 구경하게 되셨으니, 이로써 본다면 귀할 것도 없는 것이 또한 귀하게도 되는 것이다.

 슬프다, 우리 선사(先師)께서는 석문(釋門)의 주석(柱石)이신데, 외롭고 가난하여 고생하면서, 묘령(妙齡)에 머리 깎고 물 드린 옷을 입으셨다. 그리하여 교해(敎海)의 물결이 무너짐을 한탄하고 선등(禪燈)의 불꽃이 꺼짐을 슬퍼하면서, 마음과 생각을 괴롭혀 불조(佛祖)의 피육(皮肉)과 골수를 파헤침으로써 자기의 책임을 삼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외전(外典)에 통달하고 여가에는 문장(文章)을 일삼아, 솥이 세 발을 이루고 수레가 바퀴로 구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때의 문인(文人)과 달사(達士)들은 도잠(陶潛)과 혜원(慧遠), 육수정(陸修靜)과 혜교(慧皎)와의 사이가 되어 시문(詩文)을 서로 주고 받으니 그것은 모두 주옥(珠玉)과 같았으므로, 비단옷을 입었고 홑옷을 걸쳤지마는 그 명성(名聲)이 날로 드러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우리 동방(東方)의 공문(空門)에서 문장으로 근세(近世)에 울린 사람은 서산(西山)과 백곡(白谷)이었는데, 서산은 도()가 문()보다 낫고 백곡은 문이 도보다 나았었다.

 선사께서 세상에 계실 때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백곡은 마치 큰 가람(伽藍)의 대전(大顚)과 층각(層閣)이 첩첩이 솟아 있어 새가 날개를 펴고 꿩이 날으는 듯 사람의 눈을 번쩍이게 하고 마음을 흔드는데, 수조(水槽)와 헛간, 방앗간, 창고, 부엌, 뒷간 등이 그 사이에 나와 함께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 고전(古殿)이 있는데, [29]이루(離婁)가 먹줄을 감독하고 [30]장백(匠伯)이 연장을 다루었으며, 승요(僧繇)는 인각(麟角)과 봉치(鳳觜)의 지짐으로 서촉(西蜀)의 단청(丹靑)에 화()하여 그 교묘함을 한껏 드러내 천전(天殿)이 날아 떨어지고 규궁(虬宮)이 솟아오르는듯 하여 사람들이 둘러서서 하루 종일 구경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 같다」하였으니, 이것은 정확한 비판이다.

 옛 사람이 「왜 자기를 모르는가」고 말하였지마는 선사께서는 자지(自知)하고 자부(自負)하는 것이 이와 같았었다.

 옛날 중니(仲尼)가 요순(堯舜)[31]조술(祖述)할 때에 [32]재아(宰我)가 중니의 도덕과 문장을 칭송(稱頌)하되

 「요순(堯舜)보다 훨씬 어질다.

하였지마는, 내가 선사 취미(翠微)의 후손으로 선사에 대해서

 「조금도 좋음에 아첨하지 않는다 함은 맹씨(孟氏)가 이미 말한 것이다.」하리라.

 옛 사람은 문()을 도()[33]서여(緖餘)라 하였는데 만일 그렇다면 문을 말리고 금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조박(糟粕)이 비록 주마(酒痲)의 찌꺼기이지마는 주마만 있고 조박이 없는 이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과 조(), ()와 외(), ()과 말()은 어떤 물건에나 다 있는 것이다. ()에서 정()으로, ()에서 내()로 들어가는 것이니, 이 정()과 내()가 있음으로 해서 조()와 외()가 따르는 것을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옛 사람이 조()인 줄 알면서 버리지 않았고, 선사(先師)도 또한 그러한 것인데, 내게 와서 그것을 끊고 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옛 사람을 어기고 선사를 배반하는 것이니, 옛 사람을 어기고 선사를 배반하고서 어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제 선사의 시문(詩文)을 모아 보았는데 거의 七, 八권에 이른다. 이것을 모두 출판하려 하나 힘이 부족하며, 또 중니(仲尼)가 시서(詩書)를 깎은 것처럼 나도 가장 정요(精要)한 것만 추려 상하편(上下篇)으로 만들어 출판에 붙이는 것이니, 과연 서방(西方)에 계시는 그 영()이나마 머리를 끄덕이실는지 모르겠구나. 선사께서 만일

 「연(), 너희들은 내 자취만 알고 내 근본을 모르는구나. 내게는 광대하지만 문자가 없는 경전 한 권이 있는데 너는 그것도 출판하겠느냐. 거기서는 이 몇 권의 글만이 흘러 나왔을 뿐 아니라, 삼장 십이부(三藏十二部)와 유도(儒道)의 모든 책도 다 거기서 나왔으며, 나아가서는 사성육범(四聖六凡)과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삼라만상(森羅萬象)까지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여러 가지를 내 면목(面目)이라 해도 내 제자가 아니며 내 면목이 아니라 해도 또한 내 제자가 아니니라.

하신다면, 제자는

 「예!

할 것이다.

 

 심경소기회편 서(心經記會編序)

 

 이 종이 반 장의 경()은 글자 수는 적고 글은 간략하지마는 六백권의 중심에 있으면서,  모든 반야(般若)의 뜻을 포괄(包括)하고 큰 장교(藏敎)의 이치를 다 거두었으니, 가히 모든 부처의 어머니요 모든 법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음 대사(觀音大士)가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받들고, 그 넓은 이치를 간략히 설명하여 모든 세계에 두어 항상 七중()의 입술과 혀 위에서 굴리시는 것이다. 비록 화엄경(華嚴經)을 모든 경전의 종원(宗源)이라 하더라도 많이 지송(持誦)하기는 이보다 더하지 않나니, 만일 뜻이 풍부하고 글이 간략하며 상()을 없애고 공()을 밝히어, 꽃을 보는 눈어리()를 긁어내고 나비로 화()한 꿈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돌속의 온윤(溫潤)을 보는 사람은 많으나 아는 이가 적기 때문에 부득이 현수(賢首)가 주각(注脚)을 짓고 옥봉(玉峰)이 연주(連珠)를 만든 것이다.

 우리 문형(門兄) 석실공(石室公)이 다행히 그 소()와 기()를 얻었는데, 그 소로써 경을 통하고 기로써 소를 통하는 것은 마치 가지로 인해 줄기를 얻고 줄기로 인해 뿌리를 얻는 것과 같음을 기뻐하였다. 그러나 기()만을 별행(別行)하여 보는 이들이 병으로 여기는 것을 개탄하고는, 그것을 합해 편집하여 장차 출판에 붙이려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깊은 경의 오묘한 뜻을 마음 눈에 환히 나타나게 하니, 창을 열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지극한 것이다.

 옛날 책공(策公)이 석벽기(石壁記)를 규봉(圭峰)의 소()에 붙여서 금강경(金剛經)의 대의(大義)를 천년 뒤에까지 환하게 하였는데, 석실공의 마음이 곧 책공의 마음이다. 현재를 끌어 과거에 견줄 때 누가 먼저이며 누가 뒤이겠는가.

 석실공이 나를 못났다 하지 않고 내게 그 교증(校證)을 의논하면서 그 전말(顚末)을 쓰라 하기 때문에 나는 그 송무(松茂)를 기뻐하여 손을 다칠 것도 잊어 버리고 감히 일빈(一嚬)을 본받는 것이다.

 

 신간 범음집산보 서(梵新刊音集?補序)

 

 범음(梵音)이 처음 지어진 것은 조위(曺魏) 시대인데, 우리 동방의 진감(眞鑑) 노인이 중화(中華)에 들어가 본은 받아 돌아온 뒤로, 옥천(玉泉)의 남은 메아리가 우뢰처럼 울리고 산처럼 응하여 그 더러운 개구리 소리가 한 번 변해 지나(支那) 인도(印度)의 그것과 방불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법이 떨어지고 사람이 생소한데 음()도 또한 그 따라서 감히 포고(布鼓)로 천뢰(天雷)를 드리받는 자가 도도(滔滔)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방장(方丈)의 음()이 온 나라를 덮으니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겠는가. 그 읊는 게구(偈句)는 선법율(禪法律)의 三장()에서 많이 주워 모았으나, 혹은 그 때 명언(名彦)들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서 입으로 가르치고 손으로 전하면서 [34]오언(烏焉)을 분별할 수 없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성인(聖人)을 속이려 하나 어찌 될 수 있겠는가. 크거나 작거나 자리를 베풀어 불천(佛天)과 신기(神祗)에 공양할 때, 만일 성인들이 그 잘못을 볼 수 있다면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니, 아아, 어찌 두렵지 않으랴.

 아무 상인(上人)은 방장(方丈)의 무리다. 그는 그 음웅(音雄)을 바로잡았으니 그야말로 발췌(拔萃)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성교(聲敎)의 물결이 무너짐을 개탄하고, 마음으로 그 괴이한 집착을 이해하고 그 틀린 것을 바로 잡되,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뛰어난 여러 성도(聲徒)들을 청하여 번잡한 것은 깎고 빠진 것은 보충하면서 그 틀린 것을 고쳐 三축()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또 내게 그 고증(考證)을 청하고 그 전말(顚末)을 쓰라 하였다. 나는 그런 자격이 없다고 굳이 사양했으나 그의 청이 더욱 굳고 심하였으므로 이웃 사람들이 달아날 것을 돌아보지 않고 구태어 [35]서자(西子)를 본받은 것이다.

 

 중간 선문염송설화 서(重刊禪門拈頌說話序)

 

 과거의 승국(勝國)에서는 선법(禪法)을 간성(干城)으로 삼아 적병(敵兵)을 막고 국운(國運)을 늘리었었다. 그래서 그 때의 선법이 왕성하기는 중국(中國)에 뒤지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산성(散聖) 목우(牧牛)의 사법(嗣法) 제자인 무의자 심공(無衣子諶公), 선문(禪門)의 영걸(英傑)들이 혹은 염()하고 혹은 송()하며 혹은 대()하고 혹은 별()한 것과, 본사(本師)의 말씀하신 것과 가섭(迦葉)으로부터 그 이후에 나타난 이들의 어록(語錄)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 편집하여 三十권을 만들고 그 이름을 염송대별략(拈頌代別略)이라 하였다.

 그것을 학인(學人)들에게 주었는데, 그 말이 어려우면서 간략하고 또 내외(內外)의 여러 책에서 나왔기 때문에, 관견자(管見者)들로 하여금 도리어 창창(蒼蒼)하다고 하는 허물을 면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구곡 각운공(龜谷覺雲公)이 그것을 민망히 여겨 따로 설화(說話)를 만들어 밝혔으니, 송인(宋人)이 뽑아 올린 벼 이삭이 그 이삭으로서는 해로왔으나 해파리가 새우를 기다림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으니 그것이 후진(後進)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실로 컸던 것이다.

 그러나 그 판본(板本)이 당시에는 성행(盛行)했으나 산하(山河)가 한 번 변하지 나라가 그와 함께 망하였던 것이다. 아아, 그 뒤로는 학자들이 그 책을 얻어 보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마침 미천 노주 북산(彌天老主北山)이 오래동안 개탄하다가 다행히 그 고본(古本)을 어떤 곳에서 얻어 향산사(香山寺)에서 판각(板刻)하였지마는 여기서 묘향산이 몇 천리나 되는가. 그래서 남방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큰 불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암자(雪岩子) 붕공(鵬公)이 그 아버지의 소를 잡아 먹고 싶어 북방에서 남방으로 오니 월저(月渚)가 바로 그 법부(法父)라 붕공이 그 뒤를 따라 팔영산 능가사(八影山楞伽寺)로 갔었다. 그 절의 중 매고(邁古), 상기(尙機), 의헌(義軒) 등은 그 절의 거벽(巨擘)이었다. 상기가 그 일을 맡아 의헌과 함께 꾀하고 붕공의 무리 몇 사람이 그 비용을 대기로 하였는데 또 그 절에서 도왔으므로 일은 구인(九仞)의 높이를 쌓으면서 일궤()의 모자람도 없었다. 그 뒤로는 남북이 한 소리요 부자가 같은 바람이었으니, 붕공이야말로 뒤를 잘 이은 사람이라 하겠다.

 그런데 아아, 이 일의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붕공이 떠났으니, 그것은 또 월저 안노(月渚安老)에게 갑자기 상예(喪豫)의 슬픔이 일어났던 것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능가사의 여러 스님네가 선림(禪林)의 시들어 떨어짐을 개탄한 끝에 지금 이 일을 주장한 그분들에게 고하여 이처럼 유한(遺恨)이 없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이 총림(叢林)의 일대성사(一大成事)인가. 어허! 붕공의 보람이 ?른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여기 있구나, 바로 여기 있구나!

 

 영남로 곤양군 봉명산 직조암 신성 모연문(嶺南路昆陽郡鳳鳴山直照庵新成募緣文)

 

 부처의 법은 청정(淸淨)하고 고원(高遠)하여 속세와 같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염과 머리를 깎고 운림(雲林)에 살되 몸은 마르고 생각은 죽어 토굴을 파고 흩어져 살면서 인간 세상을 아주 잊어 버리는 것이다.

 말세(末世)가 되어 사람과 법이 바뀌고 게으를 때, [36]백장대사(百丈大士)가 집을 지어 노병(老病)을 편히 쉬게 하였던 것이다. 그 뒤로는 광대한 절을 다투어 지어 수선(修禪)하는 사람들을 편히 살게 하였으며 선()을 좋아하는 이는 그 복을 심었으니 그 복리(福利)의 미침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서봉사(棲鳳寺)는 연기 국사(烟起國師)가 창건한 오랜 도장(道場)이다. 그 남쪽으로 백보(百步)쯤 밖에 유명한 절터가 하나 있는데 오래 동안 복고(復古)하지 못했으니, 이는 어찌 때가 돌아오지 못하고 사람을 얻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대사(大師)가 방장산(方丈山)에서 와서 여러 해를 거기 살았는데 법호(法號)를 광밀(廣密)이라 하였다. 온 절의 대중이 모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청하기를

 「우리 대사님의 재능과 덕은 그 절을 이루기에 넉넉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괴로움을 잊어 버리시고 이 불후(不朽)의 공을 이루어 보십시오.

하였다. 그리하여 대사는 굳이 사양하지 않고 그 말을 따랐으니, 이야말로 때가 돌아오고 사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화당(華堂)이 떨어지고 보전(寶殿)이 솟아, 여우와 토끼들이 놀던 마당에 그것이  엄연(儼然)히 서게 될 것을 미리 점칠 수 있는 것이다.

 무용자(無用者)는 비록 그 산과 절의 훌륭한 경계는 보지 못했으나, 멀리서 그 큰 일이 이루어질 것을 기뻐하여 이 글을 적어, [37]단문(檀門) 여러분이 그 힘을 따라 보시(布施)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보시란 [38]十도()의 으뜸이 되는 것이니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읍니까.

 축원하노니,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락하소서.

 

 단교 모연문(斷橋募緣文)

 

 외나무 다리에는 사람이 혼자 지나가고 여량(輿梁)에는 수레가 마음대로 다니니 여량이 좋은가. 나무다리는 썩기 쉽고 돌다리는 깨뜨리기 어려우니 돌다리가 좋은가. 무지개 다리의 구멍은 둥글고 커서 물 줄기가 세더라도 물의 타격이 적으니 무지개 다리가 좋은가. 돌다리와 무지개 다리는 오래가지마는 그것을 이루려면 노력과 비용이 매우 많이 들기 때문에 한 사람이 혼자 맡아 할 수도 없거니와 하루에 될 일도 아니다.

 단교(斷橋)[39]부차(浮槎)의 동문(洞門)인데 큰 내가 내리쏟고 성낸 조수(潮水)를 맞아 들인다. 그 넓이는 한 화살이 지날 만하1고 그 깊이는 한 발이 넘으며, 진흙조차 찰지기 때문에 사람은 옷을 걷고 건너기 어려우며 말은 머뭇거리면서 건너려 하지 않는다.

 성습 상인(性習上人)이 담박에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내되 저 썩기 쉬운 것을 버리고 단단하고 오래 갈 것을 좋아하여, 다른 산을 깎아 내어, 귀하고 천한 사람과 짐승을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 오르게 하려 하니 어찌 위대하지 않은가. 그러나 털 하나로 공이 될 수 없고 여러 홉()이면 바다를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을 믿겠는가. 땅을 믿겠는가.

 하늘이 비록 덮어 주고 땅이 비록 실어 주더라도 일의 성패(成敗)에 있어서 그 책임은 사람에 있는 것이다.

 사람에도 四품()이 있는데 사()가 가장 으뜸 되나니, 높고 밝은 지혜로써 바른 가르침을 들으면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뢰는 것이니 보시(布施)란 집의 유무(有無)에 있지 않고 마음으로 믿고 웃음에 있는 것이다.

 

 태안사 봉서암 신건 모연문(泰安寺鳳瑞庵新建募緣文)

 

 태안사(泰安寺)는 신라 시대 혜철 국사(慧撤國師)의 창건이다. 많은 세월을 지나고 여러 번 병화(兵火)를 겪어 꿩의 남음과 새의 날개 같은 건물이 갑자기 불에 다 타고 여우와 토끼의 놀이터가 성상(星霜)을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국로(國老)의 구비(龜碑)와 안탑(鴈塔)은 글자가 희미해 보이지 않은 채 땅에 엎드려 있고 이끼가 낀채 하늘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그 뒤에 방포(方袍)의 무리들이 고인(古人)의 유적(遺跡)이 오래 동안 가시덤불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못내 개탄한 나머지 겨우 약간의 전당(殿堂)을 얽어 지금까지 지내왔었다. 그러나 골짝이 깊고 세상이 멀기 때문에 거기 사는 스님네가 극히 적었으니, 그 쇠잔하고 고달픈 형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옛날부터 땅을 가리는 사람이 말하기를

 「이 곳은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추는 곳으로서 다행히 총림(叢林)을 세우면 바야흐로 그 전성 시대가 오리라.

 이른바 봉서암이 안산(案山)의 뿌리를 눌렀으니, 주인과 손이 서로 응하는 것은 마치 봉황(鳳凰)이 서로 즐거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주인이 그 손을 잃고 봉()이 그 황()을 잃었으니 그 쓸쓸함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였다.

 이 말이 이치에는 꼭 맞지마는 그러나 누가 손에 침을 뱉고 마음에 맹세하면서 그 말을 즐겨 믿고 그 책임을 맡겠는가? 이럭저럭 미루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으니 실로 개탄할 만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 괴납(壞衲)이 큰 원앙을 내어 그것을 다시 일으키려 생각하지마는 일은 크고 힘은 약한지라, 마치 [40]우로(愚老)가 산을 옮기고 [41]정위(精衛)가 바다를 메우려는 것과 같아서, 이것이 비록 내 힘을 헤아리지 않은 일이지마는 그렇다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인과(因果)를 알기 때문이다.

 단신(檀信)들이 바둑알이나 별처럼 가는 곳마다 널려 있으니, 손수 선실(禪室)을 짓고 온갖 맛난 음식이 그 손을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북을 맞이하고 죄를 뉘우치는 이로서 이 일을 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적더라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며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 좋으리.

 우러러 비옵나니, 왕기(王基)가 공고(鞏固)하시고 성수(聖壽)가 유구(悠久)하라.

 

 조계산 송광사 함청각 단확 모연설(曹溪山松廣寺咸淸閣丹募緣?)

 

 송광사는 해동(海東)의 하나의 큰 명찰(名刹)로서 온 나라 사람이 귀천(貴賤)이 없이 이것을 한 번 못 보는 것을 일생의 한()으로 삼는다.

 그것은 오직 十六성()[42]유촉(遺躅)이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침계루(枕溪樓), 임경당(臨鏡堂), 함청각(咸淸閣) 등 三절()이 솔밭같이 옥계(玉溪) 위에 높이 다달아 있는데, [43]휘비(翬飛)와 조혁(鳥革)의 그림자가 밝은 거울 속에 인()을 치고, 송금(松琴)과 간슬(澗瑟)의 소리는 노니는 나그네의 귀를 시원하게 하나니, 무릇 복선(福善)을 공문(空門)에 심으려는 사람으로서 여기를 두고 어디로 가겠는가.

 이 절의 스님네가 함청각이 나무다리를 의지해 있으므로 썩기 쉬움을 흠이라 하여 돌로 무지개다리를 만들어 다시 그 위를 새롭게 하니, 그 경상(景像)이 이전보다 몇 갑절이나 아름다와졌다. 만일 거기에다 승요(僧繇)의 묘한 솜씨로 새 집의 얼굴에 단장을 더 했더라면 보는 이들의 눈이 뜨이고 마음이 흔들려 마치 옥경(玉京)의 十二루()가 그 책임을 맡았지마는 짐은 무겁고 힘은 막히어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털을 구해 공을 만들려는 것이니, 만일 선()을 좋아하는 여러분이 아니면 어떻게 이 크고 묘한 일을 마칠 수 있겠읍니까.

 삼가 바라건대 힘을 따라 보시하시어 불후(不朽)의 종자를 함께 심으십시오. 인과(因果)가 틀리지 않는 것은 마치 그림자의 형체나 그릇의 틀과 같은 것이니 어찌 의심할 수 있겠읍니까.

 

 태안사 삼일암 신건 모연문(泰安寺三日庵新建募緣文)

 

 선사(禪舍)의 역사는 오래입니다.

 우리 만정각자(滿淨覺者)께서 三十二상()과 八十종호(種好)로 서천(西天)의 사위국(舍衛國)에 그 자취를 나타냈을 때 급고독 장자(給孤獨長者)는 그 높은 산을 우러러 태자(太子)의 동산에 겸금(兼金)을 깔고, 그 정사(精舍)를 천중천(天中天)께 바쳤던 것입니다. 그 뒤로 아전(鵝殿), 조혁(鳥革) 앙려(鴦廬), 휘비(翬飛) 등은 마음을 닦는 이들에게 각기 그 장소를 얻게 함으로써 재물을 보시하는 이들로 하여금 복을 맞이하고 죄를 참회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삼일암은 옛 터는 아니지만 앞 봉우리들은 첩첩히 읍()을 드리고, 용호(龍虎)는 층층으로 껴안았으니 실로 도()를 도울 만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못난 나이지만 거기에 몇 간의 선실(禪室)을 지어 운유(雲遊)의 상사(上士)들로 하여금 三일 동안만 앉았어도 마음을 밝힐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니 그것은 송광사 상사당(松廣寺上舍堂)의 인연과 같은 것입니다.

 삼가 원하노니, 단나(?)님네는 유한(有限)한 재물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무궁한 복을 지으시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읍니까.

 엎드려 빌건대, 바람이 화창하고 비는 때를 맞추어,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락하여지이다.

 

 백운암 불전 모연문(白雲庵佛殿募緣文)

 

 불전(佛殿)을 짓기 시작한 것은 백장화상(百丈和尙)이 총림(叢林)을 둔 때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 뒤로 그 제도가 크게 유포(流布) 되어 오직 거찰(巨刹)만이 아니라 난야(蘭若)로 또한 그랬으니,이것이 화연(化緣)으로 복전(福田)에 심으라고 권하는 까닭입니다.

 백운암은 용문사(龍門寺)의 동부(洞府)위에 있는데, 흉년이 든 때에 적화(賊火)에 다 타 버렸기 때문에 먼저 좌우의 양당(兩堂)을 짓고 아직 불전(佛殿)은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어느 상인(上人)이 그것을 개탄하고 무거운 짐을 맡았으니, 큰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큰 집도 나무 하나로는 버틸 수 없는 것이니, 여러 단나(檀那)님네는 각기 그 힘을 따라 보시하시어, 미래의 큰 복을 받을 과보의 인()을 함께 짓기를 삼가 원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 또 무슨 할 말이 있겠읍니까.

 

 성기암 상량문(聖祈庵上樑文)

 

 ()이 영()을 내려 성인(聖人)을 잉태(孕胎)하니 [44]니구(尼丘)[45]구해(九垓)에 날고, [46]영우(靈祐)가 위산(潙山)을 얻어 선()을 여니 동산(桐山)이 팔로(八路)로 가도다. 하늘의 아낌을 이미 깨뜨리고 땅의 비밀을 비로소 열었도다. 간사(幹事)의 상인(上人)은 육척(六尺)의 짧은 키에 [47]삼명(三命)의 뛰어난 기술이다.

 방의 경쇠가 [48]적취(積翠)에 달렸으니 백년이라 해도 한 평생이며 창자의 천둥이 오랜 동안 울었으니 三十일에 한 끼니를 어찌할꼬? 벌은 꽃을 더듬어 꿀을 만들고 까치는 나무가지 물어다 둥우리를 짓도다. 집집이 낯가죽이 두꺼운데 곳곳에서 꼬리를 흔들도다.

 백련(白蓮)의 정사(精舍)는 동림(東林)의 원법사(遠法師)의 고상한 정취(情趣)요 벽운(碧雲)정거(淨居)는 서악(西岳)의 휴상인(休上人)의 맑은 운치(韻致)로다. 오늘날의 그림자와 울림은 곧 옛 사람의 형체와 소리이며, 길지(吉地)는 길인(吉人)을 만났는데, 신지(神地)는 신안(神眼)에 통했도다. ()을 돌이켜 방에 들었으니 철국사(哲國師)는 엿보지 못하였고 사람이 하늘에 이겼으니 옥상제(玉上帝)도 막지 못했도다. [49]공수(公輸)가 도끼를 놀리고 이루(離婁)가 먹줄을 퉁기나니 대부(大夫)의 좋은 재목을 다 들였고 금강(金剛)의 예리한 기구를 모두 썼도다. 각각 제 자리를 차지하며 각각(覺覺)의 기둥이 마주하였고 홀로 그 몸을 닦으며 암암(岩岩)의 돌이 외로이 섰도다. 비록 부처의 해를 바라볼 수는 없으나 거의 오산(鰲山)과 어깨를 견주겠구나. 원앙(鴛鴦)의 날개를 숨기어 쉬게 하고 무지개의 허리를 비끼어 들만하다.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나니 금까마귀가 흰 구름 속에서 날아 나온다. [50]만수(曼殊)가 三월()에 부끄러움을 가리기 어렵거니 아마 아침마다 온 얼굴이 붉으리라.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나니 땅이 기이한 바위를 받들어 이 암자를 지키도다. 천추(千秋)에 우뚝 서서 허리를 굽히지 않거니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교만하고 한편으로는 사내답네.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나니 세 날개 밖의 푸른 산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잣나무는 뜰 앞에 서 있지 않지마는 조사(祖師)의 온 뜻은 이미 다 드러났네.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나니 굽어보면 벌집들은 어찌 저리 뒤섞였는고. [51]조혁(鳥革)이여, 휘비(翬飛), 어찌 너희들의 공()이뇨? 백호광(白虎光)이 자손들을 보살피는 힘이로다.

 들보를 상방(上方)으로 던지니 九만리 푸른 하늘에 티끌이란 하나 없다. 높이 달린 해와 달이 어디고 비치거니 철위산(鐵圍山)이 그 속인들 어찌 안가리.

 들보를 하방(下方)으로 던지나니 지륜(地輪) 그 다음에는 금륜(金輪)이로다. 가련하여라. 八한() 八열()의 저 무리들이여, 그 모두 전생에 죄 지은 자들이네.

 엎드려 원하옵나니, 상량(上樑)한 뒤에는 창 앞의 호랑이는 착해지고 뜰 위에는 연꽃이 나며, 밥부대와 오줌주머니는 절룩발이 파리를 불꽃에서 쓸고 얼음창자와 쇠눈(鐵眼)은 좋은 나비를 꽃향기에서 끌어 오소서.

 

 매학당기(梅鶴堂記)

 

 매학당 주인은 산수 가운데 고요하고 한산한 곳에 초헌(草軒) 한 채를 지어, 처사(處士)의 혼()을 불러 섬돌 위에 두고 청전(靑田)의 격롱(翮籠)을 불러 섬돌 밑에 가두니, 위 아래가 다 한가한 맵씨요 우모(羽毛)가 새하얀 그 빛깔이다.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나 오히려 출처(出處)의 태도가 있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나니 [52]현포(玄圃)의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다. 어찌 흰 눈의 휨과 흰 옥의 휨과 같이 빛깔이 다만 희다 뿐인가?

 주인이 이 二물()로 당()을 이름한 데는 깊은 뜻이 있겠구나. 주인은 속()을 벗어난 사람이라, [53]안씨(顔氏)의 단사(簞舍)와 표음(瓢飮)의 즐거움을 우러러 그와 같기를 생각하며, [54]유자(孺子)[55]탁영(濯纓)과 탁족(濯足)의 노래를 듣고 거스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저 물건들로 이 당()을 이름한 것은 허황된 것이 아니요 꼭 맞는 것이다.

 어허, 그러나 주인의 소유가 어찌 매학(梅鶴) 뿐이겠는가? 말하자면 큰 산은 밖으로 싸고 작은 산은 안으로 안았으니 이것은 주인의 성곽(城郭)이다. 대나무 소리는 소소(蕭蕭)하고 소나무 소리는 석석(浙浙)하나니 이것은 주인의 금슬(琴瑟)이다.

 은은(殷殷)한 우뢰소리 폭포는 주인의 종고(鍾鼓), 삼삼(森森)히 벌려선 나무들은 주인의 병장(屛障)이며, 둥글둥글한 비단돌은 주인의 베개요, 맑고 트인 옛 못은 주인의 거울이며, 밝고 깨끗한 산의 달은 주인의 등불이요, 한겹으로 한 번 가림은 주인의 폐부(肺腑)이며, 산의 새와 산의 꽃은 주인의 [56]우우(友于)요 긴 하늘과 두터운 땅은 주인의 금석(衾席)이며,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주인의 붕우(朋友)이다.

 어찌 그 뿐이겠는가? 주인의 배를 기다리는 것은 시냇가의 애기고사리요, 주인의 입을 양치질하는 것은 돌확의 옥같은 샘물이며, 주인의 눈을 뜨이게 하는 것은 떨어지는 놀과 끊어진 구름이다.

 그렇다면 영영(營營)할 것 없이 백년의 생애(生涯)가 족하고 역역(役役)할 것 없이 한 몸의 기거(起居)가 편하다. 피곤하면 잠 자고 배 고프면 밥 먹으며, 추우면 옷 입고 목 마르면 물 마시면서, 스스로 함이 없고 일이 없는 한한(閑閑)한 한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시원하지 않고 즐겁지 않겠는가?

 주머니 속의 천지라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며 항아리 속의 건곤이라 제왕(帝王)도 잡을 수가 없나니, 그렇다면 녹수청산(綠水靑山)을 빼앗을 자 누구며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다툴 자 누구인가? [57]웅경조신(熊經鳥伸)도 여기서 할 것이요? 탄하복기(呑霞服氣)도 여기서 할 것이다.

 천재(千載)에 세상을 싫어하는지라 손으로 섬돌 위의 옥매(玉梅) 가지를 잡고 몸으로는 섬돌 밑의 [58]설령(雪翎)의 학()을타며, 九만리의 구름 하늘에 표연(飄然)히 날고 十二층의 경루(瓊樓)에 우연(于然)히앉는 이가 바로 주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주인이 이 당()의 이름을 짓고 손이 이 당의 기문(記文)을 쓰는 것이 실로 뒷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이에 노래하나니

 「녹수와 청산은 천지의 소유인데 주인이 그것을 가졌고, 설학(雪鶴)과 빙매(氷梅)는 신선(羽人)의 소관인데 주인이 그것을 주관하나니, 주인 주인이여, 사람 밖의 사람이로다.

 

 조계산 선암사 영성루기(曹溪山仙岩寺迎聖樓記)

 

 언관(彦寬)과 영민(英敏) 두 장로(長老)가 마음과 힘을 합하면 복을 구하고 선()으로 향하는 집을 찾아 갖은 수고를 아끼지 않고 선암사 대웅전(大雄殿)앞에 한 누각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이 낙성(落城)된 뒤에 강남(江南)의 한 과객(過客)은 이 글을 쓴다.

 신라 시대 대각 국로(大覺國老)가 창건한 뒤로 거의 천 여년이 되었다. 그 동안에 가끔 뛰어나고 빠르기 매와 같은 이들이 있었지마는 이 절에 이 누각을 세웠다는 말은 듣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이 절은 사람의 몸으로 치면 한 부분이 모자란 채로 지난지가 오래였었다.

 무릇 천지의 물건은 다 무엇인가를 기다려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붕새()는 배풍(培風)을 얻어서야 九만리의 날개를 떨칠 수 있고, 기마(驥馬)는 백락(伯樂)을 만나서야 천리의 발을 펼 수 있으며 영룡(靈龍)은 운우(雲雨)를 얻어서야 하늘을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없이 이루어진다는 이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절이 있는데 이 누각이 없이 되겠는가? 누각이 없이 이 절이 이루어져서야 되겠는가?

 아아, 이 누각이 지금에 처음으로 있고 옛날에는 없었으니 옛 사람이 지금 사람보다 못한가. 지금 사람이 옛 사람보다 나은가. 대각 국로(大覺國老)가 크게 깨달은 뒤에 그 이름을 얻었다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기 어찌 九만리 뿐이겠는가? 그런데 이 누각을 짓지 않음으로써 이 절로 하여금 천 여년 동안 한 결함을 그대로 가지게 하였으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라 하겠다. 추측컨대 대각이 이로(二老)를 천 여년 동안 기다린 것은 저 언 대사(大師)가 三백년 뒤의 배()를 기다린 것과 같은 것인가? 그러나 저기에는 기록이 있고 여기는 없으니 분명히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아, 이 절에 이 누각이 이루어진 것은 사람이 몸을 갖춘 것 같고 이 누각이 이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붕새의 바람, 용의 구름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절의 이루어짐은 누각에 있고 누각의 이루어짐은 사람에 있는데 사람의 이루어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예리한 칼과 긴 창이 늠렬(凜烈)하고 삼엄(森嚴)하게 용정준여()의 사이에 벌려 서 있어서, 날으는 새도 지나갈 수 없는, 八면의 여러 봉우리가 다 날카로운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산 위에는 두 마리 흰 용()이 구슬 하나를 놓고, 두 갈래로 갈라진 구름에서 머리를 들고 꼬리를 떨치면서 달릴 때에 앞 뒤가 모두 험준하기 때문에 그 구슬을 두 겨드랑에 끼고 몸을 합쳐 가는 것 같으며, 또 동서의 두 갈래 시내가 마지막에는 한 시내가 되는 것 같은 것이다.

 이상은 그 큰 것이지만 그 밖의 허다한 풍물(風物)이야 낱낱이 다 들 수 없는 것이다.

 이 누각은 신유년(辛酉年) 봄에 시작하여 그 해 가을에 낙성하였으니 어찌 그리 빠른가. 그것은 곧 온 절의 보차(輔車)의 형세 때문이었다. 왜 그 이름을 영성(迎聖)이라 하였던가. 운수(雲水)를 여기에 베풀고, 경음(鯨音)을 여기서 떨치며 어범(魚梵)을 여기서 울려 사성(四聖)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누가 그 이름을 지었던가? 이 절 주지 약휴(若休)라는 사람이니, 그가 내게 부탁하여 이 기문을 쓰는 것이다.

 

 양성당기(養性堂記)

 

 사람이 천지 사이에 난 것은 흰 말이 문틈을 지나가는 것과 같은데, 파초와 같은 체질(體質)로 금석(金石)과 같은 계획을 세워 쌓아 모으지마는 흩어지지 않을 것인가. 어찌 오직 흩어지지 않고, 또 더욱 쌓는 것만을 좇을 것인가? 하나의 작은 물건을 얻고는 기뻐하며 한 물건을 잃고는 슬퍼하나니, 그런 사람이 가련한가? 행복한가? 예나 이제나 그런 사람에서 벗어난 이가 몇이나 되는가? 만일 이런 일을 생각하면, 이 몸은 두려운 그 재물에 맡기는 것과 같아 닦지 않음만이 쌓이게 되어 그는 없고 스스로를 깨뜨린다. 내가 분발하면 봉()이 날개를 정사(精舍)에 깃드리고 새가 다니듯 쾌할한 납자(衲子)이러니, 이로써 만일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시원한 사람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 당()을 지은 대사(大師)의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저 가련한 사람에 견주면 몇 층이나 높으며 몇 리나 먼가?

 감인(堪忍)세계는 괴롭고 안양(安養)세계는 즐겁다. 하루 저녁에 혹을 베어버리고 이 세계를 떠나 저 서계로 가는 것이 슬프겠는가? 양성(養性)은 종오 대사(宗悟大師)의 법호(法號)인가, 당호(堂號)인가?

 

 승평부 대광산 용문사 신화 용화회기(昇平府大光山龍門寺新畵龍華會記)

 

 우리 본사(本師)이신 석가모니불의 좌보처(左補處)인 미륵 대사(彌勒大士)는 석가불이 멸도(滅度)하신 뒤에 도솔천(兜率天)에 상생(上生)하여 상호(相好)의 업()을 닦아 본사(本師)와 같이 되었다.

 그리하여 미래 [59]감겁(減劫) 중 사람의 수명이 만세가 될 때에 바라문(婆羅門)의 집에 하생(下生)하여서는 출가(出家)하여 도()를 이루고, 용화수(龍華樹) 밑에서 三회()에 걸쳐 설법하여 무수한 사람을 구제할 것이다.

 익 장로(翊長老)가 이 소문을 듣고는 기뻐하여 글을 가지고 화연(化緣)하여 화사(畵師)를 부르러 한 비구(比丘)를 보냈다. 그리하여 그 대사가 하생하고 출가하고 성도하고 설법하는 거동과 그 좌우 보처와 여러 제자와 인간 천상 등 八부()가 에워싸서 법을 듣는 모양을 수十폭의 모시 위에 그려서는 극락대전(極樂大殿)의 오른 벽에 엄연히 걸어 두었다. 그리고 우러러 예배하는 이들로 하여금 다 훌륭한 인()을 맺게 하였으니, 이 장로의 마음은 곧 보살의 마음이다.

 그 때 나는 은봉(隱峰)의 작은 암자에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무한히 기뻐하였다. 일이 끝난 뒤에 그 장로는 몇 장 종이를 가지고 와서 내게 간절히 말하기를,

 「일이 끝났으니 기문(記文)이 있어야 하겠읍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화연(化緣)은 누구고, 재물 보시는 누가 했으며 증사(證師)는 누구, 화사(畵師)는 누구, 및 시작하고 마친 연월일과 시화(施化)를 칭찬하거나 비방하는 인과(因果)를 알게 하여, 믿음이 있는 이는 더욱 믿게 하고 믿음이 없는 이는 믿음을 내게 하면 그것도 하나의 교화사업이 아니겠읍니까? 그렇다고 내 공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요 대사의 글에 아첨하는 것도 아니니, 대사는 힘써 주십시오. 대사가 이미 권소()를 지었는데 지금 또 기문을 쓰신다면 이 두 가지 일만 해도 한 자의 베나 한 말의 곡식을 보시하지 않더라도 그 보시는 큰 것입니다. 왜 사양하십니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장로님, 장하십니다. 장로님의 거사는 참으로 큽니다」하였다. 그리하여 이미 지난 부처님의 초상화는 세상에 많이 있지마는 미래의 것은 미리 헤아리려 해도 내가 보지 못했다. 장로님의 보기 드문 그 경광(耿光)은 묻어 둘 수 없다. 이 장로는 수년 전에 본사(本師)의 팔상성도(八相成道)의 상()을 본떠 전각(殿閣)에 봉안(奉安)했을 때 내가 기문을 썼을 뿐 아니라, 또 불전(佛殿) 앞의 광명등(光明燈)과 석경(石檠)과 재()를 올릴 때 쓰는 난경(卵鏡), 욕기(浴器), 소대(), 사로(使路) 각첩(各帖)과 하단의(下壇衣) 등을 장로가 다 갖추었으니 장로의 공이 큰 것이다. 경전에

 「불상을 보리() 알만치 만들더라도 무량한 복을 얻는다.

하였다. 그러나 장로의 지은 복은 보리보다 몇 배나 더 많고 그 수도 한 둘이 아니니 그 복은 무량한 위에 또 무량할 것이다. 세간이나 출세간(出世間)의 큰 복의 과보(果報)는 오직 마음으로만 구해지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세간의 화살로 허공을 쏘겠는가? 출세간은 금강(金剛)을 먹는 것이다.

 장로가 말했다.

 「부처를 만들거나 부처를 구하는 것이 어찌 다른 데에 있겠는가?

 내가 「그렇다면 장로님의 구하는 것은 큽니다. 내가 기문을 쓴다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하자 장로는 빙그레 웃었다.

 아아, 장로가 권소문()을 가진지는 갑신년 늦가을인데, 이듬해 을유년 봄에 손을 끊었으니, 만일 간사(幹事)의 능숙함이 아니었다면 어찌 이렇게 될 수 있었겠는가?

 이 뒤에 장로의 풍도(風度)  사모하는 사람으로서 장로의 하는 일을 하고 장로의 구하는 것을 구한다면, 장로의 도()는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이니 후인들은 힘써야 할 것이다.

 장로의 법자(法字)는 정익(精翊)이니 부사(浮槎) 사람이요, 승평부 조계산 송광사에서 출가하였다가, 뒤에 이 절로 옮겨 온지 이제 수十년이다.

 

 

 승평부 대광산 은봉암기(昇平府大光山隱峰庵記)

 

 나는 영천암(靈泉庵)에 있을 때부터 대중을 흩어 버리고, 산뜻한 조그만 암자로서 높지도 않고 ?지도 않으면서 내 진()을 기를 만한 곳을 찾았는데, 이 암자가 내 눈에 들었기 때문에 여기 내려와 살고 있었다.

 그 이듬해에 초안(初安) 장로가 낙포(樂浦) 어구에서 단교(斷橋)를 돌무지개 다리로 만들고 있다가 내가 이곳으로 옮겨 왔다는 말을 듣고는 늙은 다리로 걷지는 못하고 나귀를 타고 와서 내게 감사하기를,

 「내가 이 암자를 세우고 十여년 동안 스승을 봉양하고 있었는데, 스님이 세상을 떠나 화욕(火浴)까지 마쳤읍니다. 그리고 나도 이제 늙었으므로 여기서 일생을 마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업풍(業風)에 불리어 조용히 있지 못하고 이 암자를 비워 두었었는데, 지금 대사(大師)님이 오셔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읍니다.

 내가 원래 이 암자를 지은 것은 꼭 내 스님이나 내 몸을 위해서만이 아니요, 또한 [60]백업(白業)을 닦는 이도 편히 거처하게 하려던 것이었는데 지금 대사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것은 내 행복입니다.

 또 만일 가정 살림을 살면서 아이들을 가진 자가 살았다면, 여기서 술을 마시고 여기서 매질을 하며 속문(俗文)을 읽고 성내는 온갖 소리가 내 암자를 뒤흔들 것이요, 선구(禪句)를 외우는 소리는 듣지 못했을 것인데, 이제 그것을 면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이 암자의 행복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암자를 세우기 위해, 나는 내 마음과 생각을 태우고 내 힘줄과 뼈를 괴롭혔읍니다. 앞에 기둥이 없으니 드나들기에 걸림이 없게 하고자 함이었고, 뒤에 아늑한 방이 있으니 앉거나 눕거나 따뜻하게 하고자 함이었읍니다. 여기 이 꽃은 누가 심었으며 풀은 누가 옮겼겠읍니가? 저기 저 대()도 내가 쌓은 것이요 나무도 내가 심은 것입니다.

 돌 위에 외로운 소나무는 내 몸처럼 보호하였고, 난간 앞에 늘어선 대나무는 상족(上足)처럼 사랑하였으니, 그것은 서리와 눈을 무릅쓰고 변하지 않음이 군자(君子)의 큰 절개와 같음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복숭아 나무는 뒤에 있고 오얏나무는 앞에 있는데 꺾지도 말고 절하지도 마시오. 말이 없어도 그 밑에 길이 이루어짐을 귀여워 하나니 천지가 중도(中道)를 지켜 만물을 기르는 것과 같음이요, 감나무는 왼쪽에 있고 배나무는 오른쪽에 있는데 흙을 쌓고 돌을 쌓아 목마름을 축이고 시장기를 면하게 함을 사랑하나니 보살이 그 살을 베어 주리는 이를 구제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이외의 날로 쓰는 즙물(汁物)에 있어서는 혹은 남의 재물을 빌기도 하고, 혹은 내 힘을 괴롭히기도 했으나 모두 우리 대사님에게 속한 것이니, 남의 물건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다 내 소유로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심은 것은 북돋우어 주고 기울어 지는 것은 붙들어주며 집이 새거든 기와를 덮고 벽이 떨어졌거든 흙손질을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 부처님께 예배하고 내 시주님을 축원해 주며 내 방에 앉고 내 북을 치고 내 암자에 살고 내 뜻을 따라 행하시면, 내 괴로움을 위로할 수 있고 시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내 암자의 기문을 써서 여기 사는 이를 깨우치고 지나가는 이에게 이 일을 알게 하는 것도 또한 하나의 훌륭한 일이니, 부디 고요한 선정을 어지럽힌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이 암자를 짓기 시작하여 마친 것은 정묘년 이요, 부처님을 조각하고 그린 것은 기사년이니 대략 말하자면 이상과 같습니다」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좋습니다. 내 비록 재능은 없지마는 장로님의 청이 간절하거늘, 어찌 글을 못 쓴다 하여 굳이 사양하겠읍니까?

장로님의 말은 장로님 암자의 기문을 쓰기에 충분합니다.

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또 四운() 一율()을 지어 다음에 붙인다.

 

 곡성현 통명산 운흥사 원통암 신창기(谷城縣通明山雲興寺圓通庵新創記)

 

 원통(圓通)이란 관음(觀音)의 다른 이름이니 대사(大士-관음)는 귀로 원통을 얻기 때문이다. 관세음(觀世音) 보살의 음()은 어느 세계에나 그 몸을 나타내어 중생의 소리를 듣고 그 고통을 구제한다는 뜻인데, 이 암자 이름을 원통이라 하여 관음상(觀音像)을 모신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지난 계미년에 유신 도인(裕信道人)이 어디서인지 와서 이 지세(地勢)의 훌륭함을 보고 자기 재산을 모두 털어 수도(修道)하는 사람을 살게 하였고 석해 상인(釋海上人)이 그를 따라 시주(施主)를 얻어 관자재(觀自在=관세음) 보살의 훌륭한 상()을 조각하고 그려 봉안(奉安)하였으니 이 두 상인(上人)의 마음은 다 같은 것이다.

 암자가 이루어졌으나 그 주인이 없다면 원통이란 뜻이 어디 있으며, ()을 비록 만들었더라도 장소가 없으면 자재(自在=관음)의 몸이 무엇을 의지하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두 사람이 합심(合心)하여 한 암자가 명실(名實)을 얻은 것이다. 이 암자와 이 상()이 비록 다 무너지더라도 이 두 상인의 공업(功業)은 하늘이 없어질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원통이란 이름은 관음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이 뒤에 여기 사는 사람으로서, 두 사람의 마음을 본받고 한 보살의 도()를 사모하여 귀를 기울일 때에 소리 아닌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들으면 원통이 저절로 나타나리니 도가 어찌 사람을 가리겠는가? 그렇다면 두 상인의 소망이 이루어지고 한 보살이 기뻐해 웃을 것이니, 부디 모두 힘써야 할 것이다.

 이 밖에 이 암자의 튼튼함이나 경치의 풍부한 것은 여기 오는 이로서 눈이 있다면 스스로 짐작할 것이다.

 또 一절()을 쓴다.

 

 조계산 송광선원 수석정기(曹溪山松廣禪院水石亭記)

 

 갑오년 여름에 나는 대목을 시켜 절에서 가까운 동쪽 시내 위에 겨우 한 간 되는 조그만 정자를 짓고 이름을 수석정(水石亭)이라 하였다. 왜 수석정이라 했는가 하면, 내가 평생에 사랑하는 것이 돌과 물이기 때문이다.

 돌은 단단하면서 고요하나니, 나도 마음을 안정시켜 흔들리지 않게 하고자 함이며 물은 흐르면서 맑나니, 나도 만물에 응하여 걸림이 없게 하고자 함이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도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상(無常)이면서 상()임에야 어찌 물이나 돌 만하겠는가? 여름 五 · 六월에 한창 가물어 금석(金石)이 녹아 흐를 듯할 때 나는 샘물에 목욕하고 정자에 올라가 앉았으려면 수석정으로 가는 것이다.

 그 때에는 청량(淸凉)이 사방에서 오는데, 먼 것은 우거진 나무들의 짙은 그늘이요, 가까운 것은 흰 돌과 싸늘한 못물이다. 나는 비로소 가슴 속이 시원해지면서 온갖 생각은 구름처럼 흩어지고 본래 마음은 달과 같나니, 여기서 비로소 [61]부자(夫子)[62]곡굉(曲肱)이 부질없는 곡굉이 아니요 증점(曾點)[63]영귀(詠歸)가 부질없는 영귀가 아님을 알 수 있으니, 내 마음에 참즐거움을 일으킴은 이 정자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무지한 사람들이 함부로 세상을 깔보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렇다면 내 허물이 내게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정자여, 정자여, 너는 공자(孔子)의 춘추(春秋)와 같구나.

 옛 사람이

 「나를 아는 이가 드물다.

하더니 참으로 드물구나. 그래서 이내 사운(四韻)을 쓴 것이다.

 

 경상도 양산 통도사 성골영탑(慶尙道梁山通度寺聖骨靈塔)과 호남 구례 화엄사 장륙(湖南求禮華嚴寺丈六)의 중수(重修)를 경찬()하는 소()

 

 사바계 승금주 해동 조선국 경상도 양산군 영서산 통도사(娑婆界勝金洲海東朝鮮國慶尙道梁山郡靈棲山通度寺)의 부처님을 받드는 제자 아무는 호남로 방장산 화엄사(湖南路方丈山華嚴寺)에서 二층 보전(寶殿)을 새로 세우고 三여래(如來)와 四 보살의 초상(肖像)을 만들어 받들고, 또 이 산 이 절에 본사(本師)의 성골영탑(聖骨靈塔) 및 조각과 회화를 중수한 뒤에 이 달 어느 날에 삼가 경찬()하는 수륙(水陸)의 삼일제(三日齊)를 베풀고는 온갖 공양 거리를 준비하여 화엄회(華嚴會)의 다함 없는 三보() 바다에 우러러 드리면서 부족하나마 하정(下情)을 하소연하나이다.

 보변(普遍)을 말하고 항상을 말하며 원융(圓融)을 말하는 법은 비로(毘盧)의 많은 몸을 흩으며, 부처를 만들고 탑을 만들고 절을 만드는 공은 [64]언우()의 큰 입을 찢습니다. 그러나 몇 겹의 화장(華藏)은 하나의 가람(伽藍)을 삼키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는 구목(龜木)속에서 사람의 몸을 얻고 침개(針芥)위에서 부처님 제자가 되었읍니다. 교의(敎義)의 물결이 바다를 뒤엎치니 어지러운 머리털과 헝클어진 실을 가리기 어려움을 어찌하며, 현로(玄路)의 새가 공중을 날으니, 혹 봄의 얼음과 눈의 칼날을 밟을 수도 있읍니다. 운구(雲衢)에서 날개가 부러진 학()이요 용문(龍門)에서 아가미를 쪼이는 고기입니다.

 그러므로 상()이 있고 번뇌가 있는 인()을 지으니 남을 위하고 자기를 위하는 업()이라 할 수 있읍니다. 「내게 보시하라, 내게 보시하라」하니 차라리 [65]포대()[66]청광(淸狂)이요 「돌이키라, 돌이키라」하니 이 또한 증씨(曾氏)의 격어(格語)입니다. 타수()를 빌고 폐우(蔽牛)를 쪼개어 二층 보전(寶殿)을 방장산(方丈山)의 남쪽 언덕에 세우니, 三 여래와 四 보살의 묘한 모습이 찬란하며 우() 임금의 도끼를 얻고 진시황(秦始皇)의 채찍을 빌려 三급()의 옥탑(玉塔)을 취서(鷲棲)의 동쪽 기슭에 닦으매 八부() 금강(金剛)과 모든 천신(天神)들의 위용(偉容)이 늠연(凜然)하니 아름답고도 아름다와서 九년 동안에 세 번 다녀갔고 이러이러 하니 조각 땅에 긴장대 같은 가람(伽藍)을 세웠다.

 여기 사흘 밤 사흘 낮의 재()를 베풀고 삼가 十방 十처()의 三보()를 청하나니, 구름은 옥같은 낱알을 찌고 안개는 향의 연기를 일으킨다. 구슬이 바다에 나오매 사람사람이 보배를 쥐고 꽃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매 걸음걸음에 연꽃이 난다. 웅장하게 사무치는 범음(梵音)은 어산(魚山)에서 비로소 내려오는가 의심스럽고, 장엄하게 구민 보련(寶輦)은 옥경(玉京)에서 처음으로 오는가 의심스럽다.

 중건(重乾)의 괘()가 다달으매 꽃은 처음 떨어지고  버들은 한창 푸르며, 단양(端陽)의 철이 가까와지매 구름은 타고자 하고, 보리는 처음으로 알에 든다. 날이 따뜻하고 바람이 부드러워 꾀꼬리가 노래하고 제비가 춤 추나니 빛깔빛깔이 공양하는 빛깔이요 소리소리가 찬패()의 소리로다.

 화장(華藏)의 사바(娑婆) 밖이 아니거니 고락(苦樂)이 엇갈리고, 중생이 어찌 성인(聖人)과 멀겠는가. 염정(染淨)이 한데 뒤섞이나니 공양 거리는 변변찮으나 법계(法界)에 두루하기를 바라고, 물건은 비록 미소(微笑)하나마 정성은 실로 크며, 사람은 비록 많으나 마음은 오직 하나이다.

 삼가 원하옵나니, 十방을 꿰뚫는 낙락(落落)한 원음(圓音)을 귀머거리는 듣고 귀를 얻으며, 十방에 사무치는 당당(堂堂)한 묘상(妙相)을 장님은 보고 눈을 뜨도록, 글 조감(藻鑑)의 밝음을 돌이켜 이 근원(芹暄)의 정성을 비추소서.

 또 삼가 원하옵기는 이 공덕을 굴려 저 단나(檀那)에게 향하게 하고, 용루(龍樓)에는 요풍(堯風)이 불어 하늘이 무너질 때까지 수()를 누리시고, 봉각(鳳閣)에는 순일(舜日)이 걸려 땅이 재가 될 때까지 오래 사시며, 옥엽(玉葉)과 금지(金枝)는 대춘(大椿)이 말라 떨어질 때까지 더욱 무성하고, 선원(禪源)과 선파(璿派)는 큰 바다가 마를 때까지 길이 흐르시며, 들의 늙은이는 늙음을 잊고 거리의 어린애는 수()를 받들어지이다. 친하고 친하지 않음이 평등하거니 보시하거나 않거나 그 복에 무슨 구별이 있겠읍니까.

 그리하옵고 이상의 중생들은 사람 수명이 八만년 될 때에 이사(理事)와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계를 빨리 증득하고, 용화(龍華)의 처음 한 모임에 찰진(刹塵)과 진진불사의(塵塵不思議)의 몸구름을 보아지이다.

 팔릉(八稜)의 옥호(玉毫)를 우러러 삼가 한 장의 정소()를 올리나이다.

 

 맹인경찬소(盲人慶)

 

 삼각(三覺)의 본사(本師)는 항상 빛나 끊임없이 혁혁(赫赫)하고, 두 눈이 장님인 제자는 긴 밤에 깨지 못하고 침침(沈沈)합니다. 체성(體性)은 비록 같다 하지만 상용(相用)의 먼거리를 어찌하겠읍니까?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는 어린 나이에 세속을 벗어나 늙으막에 이르러 장님이 되었읍니다. 인과(因果)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라 네게서 나온 것이 반드시 네게로 돌아가는 것이니 회한(悔恨)이 생기며, 혹 진()을 등졌다가도 진()과 합할 수 있으매, 오는 일은 고칠 수 있지마는 지난 일이야 어찌하겠읍니까? 한갖 스스로 뉘우치는 것만이 어찌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여 씻는 것 만하겠읍니까?

 그러므로 이제 좋은 때를 가리어 마침 천중(天中)의 계절을 맞이하였고, 훌륭한 땅을 결계(結界)하여 다행히 동리(桐裡)의 산을 얻었읍니다. 간략히 공양을 드리는 의식을 마련하고 겸하여 죄를 뉘우치는 자리를 베풀었읍니다. 물질은 비록 가벼우나 마음은 무겁사오니 정성이 지극하면 성인이 반드시 내림하실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저 영취산(靈鷲山)의 섭삼귀일(攝三歸一)의 모임에 계신 불보살(佛菩薩) 성인과 오과사향(五果四向)의 어르신네께서는 이 정성스러운 마음을 살피시고, 이 깊고 무거운 죄를 씻어 주소서. 그리하여 눈에 있는 막()을 긁어 내고 몸의 막힌 길을 열어 주시며, 과거와 현재의 부모 등 九족()이 모두 굴레를 벗어나 소요(逍遙)하고 위 아래 귀옥(鬼獄) 등 三도()가 고통을 쉬고 즐겁게 하소서. 간절히 비는 지극한 정성을 견디기 어려워 삼가 이 글을 올리나이다.

 

 야 소()

 

 모든 부처님은 十방에 두루한 방편의 문을 크게 여시고, 중생은 온갖 혹()을 안아 혹업(惑業)의 길이 갈래가 많습니다. 슬픔을 우러러는 물이 맑으면 사랑으로 응하는 달이 곧 인()칠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는 슬기의 눈을 이미 잃었는데 살덩이의 눈마저 또 어두웠으니, 큰 길은 매우 평탄한데도 몇 번이나 지름길에 들어가 군색하게 걸었으며, 흰 날은 환히 밝은데 오직 어두움만 보면서 슬퍼하였읍니다. 이것은 지난 세상에 지은 인() 때문이요 결코 이 생()만이 아닐 것입니다. 받는 과보(果報)가 이러하거니 뉘우쳐 운들 어찌하겠읍니까. 참회하고 씻어야 할 것입니다. 재장(齋場)을 이미 열었으매 정성스런 마음이 그것과 함께 깨끗하고 공구(供具)를 비로소 베풀었으며 축원과 관()이 그 때문에 더욱 많습니다.

 엎드려 바라옵나니, 十방의 법계는 끝이 없고 三보()의 자존(慈尊)은 세기 어렵사온데, 마음은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몸은 청정한 자리로 달려갑니다. 나로 하여금 죽기 전에 다시 청천(靑天)의 백일(白日)을 보고 죽은 뒤에는 옥호(玉毫)의 금광(金光)을 보게 하시며, 부모 친척과 사승(師僧) 및 다른 무리들도 모두 고취(高趣)를 벗어나 다 함께 낙방(樂邦)에 오르게 하소서.

 간절히 비는 지극한 정성을 견딜 수 없어 삼가 이 글을 올리나이다.

 

 중 소()

 

 한 보살과 열 명왕(冥王)은 그윽한 갈래 속에서 가장 존귀(尊貴)하고, 고독한 몸에 두 눈이 먼 자는 인간 세상에서 가엾사오니 건장한 사람이여, 이런 병물(病物)을 가엾이 여겨 주시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는 본래 대대로 [67]비사(毘舍)이온데 지금은 비구(比丘)의 몸으로서 젊었을 때에는 기운이 응당하여 용부(勇夫)도 눈 안에 들었더니, 늙마당에 장님이 되어 三척() 동자(童子)가 면전(面前)에서 속이나니, 이것은 스스로가 취()할 것이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닙니다.

 이에 참회하는 자리를 베풀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호소하옵나니, 당대(當代)의 교주(敎主)와 十방에 두루하신 여러 어르신네는 이미 강림(降臨)하시어 공양을 받으시고, 고통을 구제하시는 대사(大士)와 죄를 다스리는 여러 성인(聖人)은 차례로 이 모임에 오셔서 향냄새를 맡으소서.

 엎드려 바라옵건대 저희들로 하여금 과거의 잘못을 참회해 씻고, 미래의 길을 열어 통하게 하시며, 우로(雨路)를 골고루 내려 매마른 생명들이 모두 젖게 하소서.

 간절히 비는 지극한 정성을 감당하기 어려워 삼가 이 글을 올리나이다.

 

 혜공당 소상재 야소(慧空堂小祥齋夜)

 

 六취()의 고륜(苦輪)을 멎게 하는 것은 부처님의 하실 수 있는 일이요 三보()의 자실(慈室)을 우러르는 것은 중생들의 슬픈 마음이온데, 나무가 마르면 봄이 부질없고 강이 맑으면 달이 인()치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떠나신 영혼은 부처님의 밝은 가르침을 전하고 내게 있어서는 계사(戒師)입니다. 나이는 八十이 넘었으니 단수(短壽)가운데서 장수(長壽)요 몸은 四대()와 五음()이 흩어졌으니 전음(前陰) 밖의 후음(後陰)입니다. 현재의 마음은 죄가 없다 하더라도 과거의 업()인즉 헤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68]천발(薦拔)하는 식()을 따라 간단히 포색(浦塞)의 공양을 베풀었읍니다. 여럿의 마음이 정성을 다했으니 十방이 다 알고 다 보시기를 바라오며, 외로운 달이 오직 밝았으며, 다행히 하룻밤도 비가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음을 힘 입었읍니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十방의 여러 성인께서는 남의 마음을 환히 살피시어 잠깐 본국(本國)을 버리고, 내 정성스런 마음을 비추어 본보기로 나를 이끌어 주소서. 그리하여 四보()로 된 七중()의 행수(行樹)와 七중의 그물과 七중의 난간에서 무량한 수명으로 소요(逍遙)하면서 즐기고 三대()로 솟은 상품 금강(上品金剛)과 중품 황금(中品黃金)과 하품 연화(下品連花)에서 고요하고 안한(安閑)한 기쁨이 다함이 없게 하소서.

 간절히 비는 지극한 정성을 감당할 길이 없어 삼가 이 글을 올리나이다.

 

 주 소()

 

 모든 성인(聖人)을 멀리 뛰어났으니 十호()를 갖춘 최상의 대사(大師)시며, 모든 경전 위에 높이 있으매 오직 一승()인 존귀한 묘전(妙典)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즐거움을 주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슬퍼함으로써 고통을 덜어 주면서도 함이 없나니 어찌 귀의하지 않으리까? 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 등이 치의(緇衣)를 입고 백의(白衣)를 벗은 것은 비록 본사(本師)의 깊은 은혜라 하겠사오나, ()를 받고 단()에 오른 것은 바로 갈마(羯磨)의 두터운 은덕이었읍니다. [69]기이()에서 十여년을 채우지 못하고 하루 아침에 갑자기 명막(冥漠)으로 돌아갔나니, 추천(追薦)하는 것은 제자의 정성이옵고 구제하시는 것은 불법의 힘이옵니다.

 삼가 생각하오면 연화(蓮花)의 묘한 경전은 때를 맞추어 말씀하신 지극한 말씀이요, 석가(釋迦)의 인자한 어르신은 세상에 드문 대성(大聖)이십니다. 부처는 모양이 아닌데 모양으로 나타내고, 법에는 말이 없는데 말로서 말합니다. 괴로움의 바다를 건네 주는 배요, 헤매는 꿈을 깨뜨리는 경쇠입니다.

 사람은 많으나 마음은 하나이며 재()를 또 올리나니 한 돐입니다. 세상은 뜨거우나 법은 시원하나니, 혼이여, 낙국(樂國)으로 돌아가소서.

 엎드려 원하옵나니,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삼대존보(三大尊寶)께서는 저희들 후진(後進)이 삼삼품(三三品) 가운데 있음을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 스님의 앞길을 금금대(金金臺) 위로 이끌어 주소서.

 간절히 비는 지극한 정성을 감당할 길이 없어 삼가 이 글을 올리나이다.

 

 개흥사 수륙재 주소(開興寺水陸齋晝䟽)

 

 영취(靈鷲)의 금색상(金色相)은 천상(天上) 천하(天下)에 오직 하나로 짝이 없는 높은 이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부처가 있거나 없거나 항상하여 변하지 않는 경전이니, 그러므로 귀의하는 이는 큰 이익이 있고 우러르는 이는 그 공이 헛되지 않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 등은 중과 같으면서 중도 아니요 바로 속()이면서 또한 속도 아닙니다. 개흥사(開興寺)에서 머리를 깎았으나 어찌 다른 산에 회중(會中)이 있는 줄을 알았으며 환화신(幻化身)에 삿갓을 씌웠으나 제 마음이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옵니다. 복을 도모하는 것이 실로 유루(有漏)이지만, 사람을 교화하는 것은 진실로 공덕이 없지 않사옵니다.

 비록 목욕하고 바람으로 빗질하면서 힘줄과 뼈를 괴롭히지마는 산과 들에서 누가 보시하고 누가 안 한다고 어찌 헤아리겠으며, 혹은 곡식을 주고 혹은 돈을 주지만 어느 것이 많고 어느 것이 적은 줄을 가리지 않았읍니다.

 수륙(水陸)이 대회(大會)를 베풀고 경외(敬畏)하는 작은 마음을 일으키나니 구름은 해상(海上)에 피어오를 때요 보리는 천중(天中)의 절기(節期)에 익습니다. 나는 구름과 춤 추는 제비는 번개(幡盖)와 함께 나란히 나부끼고 우는 새와 노래하는 꾀꼬리는 각패(角貝)와 함께 어울려 울립니다. 향과 꽃과 차와  과일은 초초(楚楚)한데 종과 경쇠와 어산(魚山)과 범패(梵唄)는 융륭(隆隆)합니다. 날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며 옷은 검은데 마음은 붉습니다. 영산(靈山)의 三보()를 청하매 드리는 공양 거리가 여러 가지요, 오늘의 一심()을 살피매 모시는 연여(輦輿)와 함께 강림하십니다.

 엎드려 원하옵건대, 여러 단나(檀那)들은 살아서는 복과 수()가 더욱 늘어나고, 죽어서는 지옥을 벗어나 천상에 오르게 하소서.

 남은 물결이 적시는 곳에는 괴로와하는 무리들을 모두 즐겁게 하소서.

 

 야 소(夜䟽)

 

 모든 부처님의 자비의 구름이 덮여 지혜의 해는 더욱 밝고, 중생들의 탐애(貪愛)의 물이 뿌려 괴로움의 불은 더욱 ?(熾盛)하나니, 어찌 귀의하지 않으리까. 실로 견디기 어렵나이다.

 삼가 생각하오면 수륙재(水陸齋)란 양 무제(梁武帝)가 물결을 두드리고 경희(慶喜)가 근원을 열었으니, 三도()의 우물을 길어 내는 두레박줄이요 九천()의 전당(殿堂)에 오르는 계단입니다.

 여기 힘을 다해 경영하나니 다섯 번 꽃이 지는 것을 보았고, 애써 재물을 모아 베푸나니 사방에서 듣고 구름처럼 모입니다. 절기는 천중(天中)을 열었고 동산은 바다 위를 차지했읍니다. 달빛은 맑은 낯보다 밝고 밤 기운은 깊은 가을보다 시원합니다. 향과 꽃과 차와 밤 등, 온갖 공양은 등불 속에 삼엄(森嚴)하고 증명() · 병법() · 법주() · 선덕() , 많은 사문(沙門)들은 번개(幡盖)밑에 제정(齊整)했읍니다. 물건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거리 들이요, 사람마다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입니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十방의 여러 성인님네는 이 도량(道場)에 강림하시어 이 붉은 정성을 받으시며, 모든 단생(檀生)의 앞에는 복의 기초가 튼튼하고 수명의 자리가 높아지며, 합원(合院)은 지금부터 도()의 생각이 일어나고 티끌 생각은 사라지며, 지옥에는 연꽃이 나고 아귀(餓鬼)들은 불이 꺼지며 축생들은 서로 죽일 생각 잊고 수라(修羅)들은 서로 다투기를 그쳐지이다.

 

 중 소(重䟽)

 

 명천(冥天)의 시왕(十王)은 위로 [70]조감(藻鑑)의 밝은 지혜를 가지시고, [71]인계(忍界)의 중생들은 밑으로 불나비(燈蛾)의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는데 만일 생전에 복을 닦으면 신후(身後)의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사람이 이 세상에 날 때는 스스로 어느 길에서 왔거나간에 각각 금전을 구하지마는 빈 손으로 무엇을 바칠 것입니까? 다투어 옥부(玉府)에 빚을 내면 남은 빚을 갚지 못하나니, 만일 지금에 잠자코 있으면 이 뒤에는 반드시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을 다하여 삼가 마련하온 바 이에 수()와 같이 향을 피우나이다. 안은 모나고 밖은 뚜렷하매 천지의 형체를 본뜬 것이며, 여기서 모으고 저기서 쌓나니 산악(山岳)이 우뚝 높은 것 같습니다. 겸하여 정결한 옥립(玉粒)을 드리고, 또 아름다운 화과(花果)가 따르나니, 향불연기는 골짝에 가득하고 범패(梵唄) 소리는 허공을 뒤흔드나이다.

 엎드려 원하옵나니 지장자성존(地藏慈聖尊)께서는 도명(道明)과 무독(無毒)의 二반()과 더불어 같이 내리시고, 염라대황제(閻羅大皇帝)는 진광(秦廣)과 초강(初江)의 九왕()과 함께 나란히 다달으시어, 내 정성을 살피시고 내 공양을 받아 주소서.

 또 원하옵나니, 모든 조()의 판관(判官)과 그 외의 권속들도 각각 그 열위(列位)를 따라 자비를 골고루 일으키시되 물의(物儀)의 정결하지 못함을 두려워하옵는 바, 비록 성현의 뜻에는 맞지 않사오나 어리석은 저의 소()가 극진하지 못함을 용서하소서. 이 범부들을 허물하지 않으시기 바라면서 삼가 이 글로 하소연하나이다.

 

 찬불소()

 

 정해년 어느 달 어느 날, 부처님의 제자 지택(智擇), 여원조(呂圓照) 등은 신도들의 인연을 널리 모아, 삼가 석가여래(釋迦如來)님과 제화(提花), 미륵(彌勒) 등 삼대존상(三大尊像)을 조성(造成)하고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일체 단나(檀那)와 돌아가신 부모와 모든 친척과 六도()의 중생들과 더불어 [72]열 가지 일이 뜻대로 되는 몸을 굴려 九련()에 화생(化生)하는 이와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부처의 도()가 높고 또 깊지마는 그 뿌리에 나아가 싹을 보이며, 범부의 의식이 ?고 또 얕지마는 흐름을 찾아 근원을 얻기가 어찌 멀다 하겠읍니까? 그것은 바로 거기 있는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제자들은 머리를 깎고는 안으로 이어가고, 수염을 두고는 밖으로 살아가면서, 비구(比丘)라는 이름을 더럽히니, 호랑이 가죽에 양()의 몸임을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실상이 파색(波塞)과 어긋나니 맹금 새 깃에 봉()의 울음을 사람들이 비웃읍니다. 음광(飮光)을 바라보면 九萬이 나직한데 정명(淨名)을 사모하면 三천()이 가깝습니다. 그릇은 금옥(金玉)이 아니지만 법은 바로 제호(醍醐)이오매 과각(瓜刻)과 보찬()의 희성(戱誠)이 이미 이루어졌사온데 이소(泥塑)와 목조(木彫)의 정박(精朴)이 어찌 지금에  없겠읍니까?

 두 사람의 마음은 같으나 세 어른의 자리는 다릅니다. 권한 사람은 힘이 들었고 베푼 사람은 재물을 내었읍니다. 털을 모아 털공을 만들었으니 저 사람의 정으로 발을 폈다 할 수 있고, 사람을 인해 일을 이루었으니 남의 술로 얼굴을 냈다고도 할 수 있읍니다. 백옥(白玉)의 묘산(妙山)이요 청련(靑蓮)의 향해(香海)입니다. 비슷하게 도리천(忉利天)에서 도로 내려온 듯 하고 방불(彷佛)히 금강좌(金剛座)에 처음 오른 듯합니다.

 진흙 뭉치와 흙덩어리가 모두 광명을 놓나니 비로소 천가(千家)가 한 불씨임을 알겠고, 어린 바가지와 겨울 오이가 다 법을 연설하나니 비로소 만구덩이 같은 바람임을 깨닫겠읍니다. 금용(金容)이 이미 내림(來臨)했거니 근성(芹誠)을 드려야 하겠읍니다. 마음과 마음은 대추와 같고 물건과 물건은 구름과 같습니다. 자초(蔗草)의 줄기가 또한 아름답나니 누가 장주(莊周)의 화()한 나비이며 눈동자 그림자가 어찌 그리 질박(質朴)하니, 섭공(葉公)이 좋아하던 용()이 아니겠읍니까.

 엎드려 원하옵나니 지금 이 묘한 인연으로 마지막에는 훌륭한 과보(果報)를 얻되 보시를 했거나 그림을 그렸거나 그 六친()과 六도()가 각기 괴로움을 벗어나며, 의신(依身), 법신(法身), 보신(報身)으로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면서 진()을 깨닫고, 여리(如理), 도리(道理), 의리(義理)로 원만히 통달하소서.

 저 하늘은 다함이 있어도 이 원은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옥호(玉毫)를 물끄러미 우러르면서 잠깐 거친 말로 하소연하나이다.

 

 일로(一路) 곤수() 등을 대신하여 여러 해 동안 두 차례씩의 별무(別貿)의 계()를 교환함에 감사함

 

 머리에 붙은 불을 꺼 주셨으니 진실로 한 두 번의 즐거움이 아니었고, 눈의 가시를 빼어 주셨으니 그것은 실로 五十여년이었읍니다.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에게 감사할꼬. 나를 학대하고 나를 가엾이 여길 뿐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오면 저희 중들은 마음을 헤아리니 더욱 어긋나고 정수리를 만져보니 사문(沙門)입니다. 날개를 치고 목을 빼는 것이 비록 미련한 꿩의 재앙의 표적이 되지마는 달가운 마음으로 활을 쏘라 권하는 것이 어찌 대인(大人)의 인자한 마음이겠읍니까? 설사 한 입의 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열 손이 다 응해 줄 수 없는 것이온데 하물며 많은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어찌 한 손으로 다 부축할 수 있겠읍니까?

 더구나 이 별무(別貿)는 병정(丙丁)이전에는 일찌기 없었던 일이요 무기(戊己) 이후에는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근원의 시작으로부터 흐름의 갈래에 이르러서는 정수리까지 빠지게 되었으니, 사나운 불길에 마른 섶나무를 보태고 어린애에게 무거운 짐을 더하는 것 같아서, 비록 높이 날고자 하나 큰 그물을 천지에 두루 쳤고, 혹은 굳게 머물고자 하면 양 쪽의 불이 동쪽 서쪽에서 핍박합니다. 九천()에 부르짖어도 아무 말이 없고, 十지()를 두드려도 답이 없으니, 그저 마음을 썩힐 뿐이요 팔을 걷어 붙인들 어찌하겠읍니까?

 그런데 어찌 뜻했겠읍니까? 절룩발이가 길을 걷기를 기약하지 않았는데 두 다리가 갑자기 펴졌고, 장님이 물건 보기를 바라지 않았는데 두 눈이 갑자기 열리었읍니다. 어두움이 끝나면 밝음이 오고, 굽힘이 오래인데 펴기에 이르렀으니 비로소 하늘에 귀가 있음을 알았고 바야흐로 땅도 신령을 가졌음을 깨달았읍니다.

 이것은 대개 순상 합하(巡相閤下)께서 九중()의 윤언(綸言)을 받들어 一方의 민망(民望)을 막고, 의로운 바퀴의 벽월(碧月)을 걸어 천강(千江)의 맑은 물결에 인()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나운 짐승의 잇발과 뿔을 꺾고, 기우는 그릇의 넘어지고 엎어짐을 붙들었으며, 싸늘한 골짝에 풀이 푸르고 마른 나무에 꽃이 붉었으니, 이것이 어찌 머리털이 있는 무리가 티끌 세상에서 새우처럼 손벽을 칠 뿐이겠읍니까? 또한 수염 없는 무리들도 연기와 놀 속에서 참새처럼 될 것이니 그 덕을 칭송하자면 부질없는 말이 될 것입니다.

 저희 중들은 감히 「돈수 계수(頓首稽首)니 지은 보은(知恩報恩)이니 하지를 않겠읍니다. 그저 「높은 산을 우러름이여, 다툼이 없는 유인(維人)의 법측이요, 푸른 대를 바라봄이여, 아름다움이 있는 군자(君子)의 생각」입니다.

 

 곡성쉬(谷城倅)에게 올림

 

 <빈도(貧道) 아무는 드립니다. 지난 번에 친히 와 주시고 또 보패(報珮)가지 받자왔는데, 길이 험해 직접 나아가 사례 드리지 못하옵고 우선 하정(下情)을 사룁니다.>

 병든 호흡을 잊기 어려운데 과분하게 자모(慈母)의 친히 다달음을 입었삽고, 촌정(?)을 거절하지 않으매 거종(巨鍾)의 빨리 응함을 깊이 감사하옵는 바, 이것이 그 둘인데 또한 많지 않습니까.

 엎드려 생각하오면 빈도(貧道)는 덕은 아직 노성(老成)하지 못했고 재주는 어린애 장난입니다. 초파리가 그 장소를 얻었으니 항하리 속의 건곤이 크고 메추라기가 거기서 줄기나니 쑥대 밑의 일월(日月)이 밝습니다. 세상일은 꽃의 미소(微笑)에 부치고 숲의 흥()은 새의 노래소리로 보탭니다. 여름 벌레가 비록 三동()의 얼음은 알지 못하지마는 아침 버섯은 반 나절의 목숨에 보탤만합니다.

 이것은 다 명부 합하(明府閤下)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즉 九문()에서 [73]()을 받들매 한 나라 변방까지의 걱정을 나누고, 백리의 성()을 맡으매 물결이 四민()의 밖에까지 미칩니다. 바람은 구름 속에 누워 잇는 풀을 쓰러뜨리고 비()는 길 가는 사람의 입술에 새겨집니다. 사람으로써 사람을 가르치고 새()로써 새를 기릅니다. 그러하온데 하물며 여러 해의 산목(散木)이 늦게야 큰 장인(匠人)의 거둠을 입었고, 한 곡조의 파가(巴歌)가 갑자기 백설(白雪)의 화답을 얻음이겠읍니까?

 가난한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 치고 마른 나무가 다시 무성해졌읍니다. 원량(元亮)은 백련(白蓮)의 정사(精舍)를 찾고 동파(東坡)는 금산(金山)의 옥대(玉帶)를 두었읍니다. 오리를 그린 그림자는 사라졌으나 앉은 자리의 남은 향기를 남기고 보배로운 게송(偈頌)이 빛을 홀리매 경패(瓊珮)에 답함으로써 영원히 좋을 것입니다. 소리가 푸른 물에 더하니 빛은 청산의 갑절이며, 그 덕은 창창(蒼蒼)에 견줄 만하거니 어느 날인들 감히 그 은혜를 잊겠읍니까? 빈도(貧道)는 감히 새벽의 향과 저녁의 등불로 하늘과 그 수명이 같기를 빌고, ()임금의 해와 순()임금의 바람에 백성들과 함께 즐기기를 바라면서 간절한 정성을 감당할 길이 없어 악시(惡詩)를 곁들여 올리나이다.

 

 강남부백(江南府伯)에게 올림

 

 [74]()와 배()와 귤과 유자는 그 맛은 같지 않으나 여러 사람의 입에 다 맛이 있고, 공자와 석가와 [75]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도는 서로  반대되나 그는 모두가 한 마음이거늘, 어찌 이것은 해롭다 하여 공박합니까?

 엎드려 생각하오면 산승(山僧)은 하루 저녁에 옷자락을 떨친 뒤로 十년 동안 구름속에 누워있읍니다. 아홉 마디의 외로운 지팡이는 마노(馬奴)의 행색(行色)을 대신하고, 갈갈이 헤어진 한 벌 누더기는 한서(寒暑)의 생애(生涯)를 도맡아 있읍니다. 두어 소리의 맑은 경쇠요 한 가치의 좋은 향입니다. 항아리 속에 건곤이 있는지라 부귀가 뜬 구름 같고,  산중에 달력이 없는지라 꽃과 잎으로 봄 가을을 점칩니다.

 한 성품을 기르는 것이 어찌 거문고이겠읍니까? 모든 일을 깨뜨리는 것도 술이 아닙니다. 남곽(南郭)의 은궤(隱几)를 사모하면서 북산(北山)의 분기(焚芰)를 웃습니다. 세간에서 사람을 이루는 것이 어찌 숲 속에서 나()를 잊는 것만 하겠읍니까?

 ()이 푸른 하늘에서 세 번 우나리 만 가닥의 맑은 바람인데, ()이 찬 못에서 한 번 읊조리나니 한덩이의 밝은 달입니다. 세상 생각은 뜬 구름과 더불어 흩어지고, ()의 마음은 흐르는 물과 함께 맑습니다. 덧없는 인생인 이 세상에 일이 없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자벌레에게 굽히기를  배우거니 어찌 다른 날의 폄이 없겠으며, 용사(龍蛇)에게 숨기를 가르치나니 다만 이 몸의 보전을 도모할 뿐입니다.

 엎드려 듣건대 합하는 총명이 남보다 뛰어나 일찌기 하늘의 열림을 알았으니 그 도()는 공주(孔周)를 각곡(刻鵠)하고, 천문(天文)의 역()에 올랐으니 그 재주는 양마(楊馬)[76]연표(連鑣)합니다. 조충(雕虫)이 어찌 월계(月桂)가 되겠읍니까? 아무리 뛰어난 솜씨라도 그것을 일으켜 쓰지 않습니다. ()은 선폭(仙瀑)에서 붉음을 더 하고 고기는 용문(龍門)에서 꼬리를 태웁니다. 몇 해 동안이나 표범이 五운()에 숨어 있었던고. 오늘에 붕새가 만리를 날읍니다.

 백리 남천(南天)에서 일일이 백성 걱정이요 九중() 북궐(北闕)에는 마음 마음이 나라 갚음입니다. 사람이 고요해지자 바람이 방에 드나니 벼슬아치 그림자가 드문 때요, 거문고 소리가 맑아 달이 창을 엿보나니 세상 일을 잊어버리는 밤입니다.

 이에 도잠(陶潜)은 가만히 혜원(惠遠)을 그리워하고 한유(韓愈)는 태전(太顚)을 더욱 생각합니다. 도의 갈래가 각기 달라 창과 방패가 서로 등진다 하더라도 나기는 한 해를 같이 하였으니 나무와 돌이 단()을 같이 했다 할 수 있읍니다. 형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각기 태극(太極)을 갖추었고, 한 발()과 백 발(百足)이 천기(天機)를 고루 움직이니, 그러므로 달사(達士)는 물결을 같이 하고 성인(聖人)은 뿔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보매 천지도 또한 시비(是非)가 있어 혹 검기도 하고 혹 누르기도 하지만 그 빛깔이 어찌 다르겠으며, 하나는 덮고 하나는 싣지만 그 공()이 어찌 완전하지 않다 하겠읍니까? 어찌 이 뿐이겠읍니까? 만물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 다르다는 면으로 보면 여러 수레가 없는 수레요. 그 같다는 면으로 보면 만물이 한 물건입니다.

 합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내게 그것을 버리라 하지 마십시오. 고기는 강호(江湖) 가운데 있는 것을 잊고, ()는 몸둥이의 바깥에서 끊습니다. 그러므로 바위 사이에 살면서 물을 마시면 주린 호랑이의 재앙을 면할 수 있고, (簿)을 높은 문에 달면 속의 더운 병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오직 귀천(貴賤)을 잊는 담박(淡泊)한 벗만을 말합니까? 또한 인덕(仁德)을 돕는 본래의 친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는 뜻을 말하는 것이라 하여 어찌 그만 두어서야 되겠읍니까?

 

 부휴당(浮休堂)을 제사하는 글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는 것은 옛 사람이 한 말입니다. 이미 그 우()를 얻었나니 추월(秋月)이 그 벗이요, 또 그 좌()를 얻었나니 백암(栢庵)이 그 손자입니다. () 두 세개의 변변찮은 제물(祭物)에 三로()가 함께 모였읍니다.

 

 백암당(栢庵堂)

 

 내 몸을 낳은 이는 부모요 내 마음을 지도한 이는 사우(師友)인데, 더구나 여러 해를 모시면서 듣지 못했던 것을 들음이겠읍니까? 그 은혜는 큰 바다보다 깊은데 갚기는 티끌 만큼도 못했읍니다.

 인생 七十이 드물다고 옛부터 말합디다마는, 갑자기 [77]광언(狂言)을 감추시니 나는 어디로 돌아가리이까?

 감히 석감(石龕)을 만들어 유골(遺骨)을 삼가 받드옵니다마는 영혼인들 어찌 여기 붙어 있겠읍니까? 그것도 이미 여기서 떠났읍니다. 그렇다면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는 그것은 어떤 면목(面目)입니까!

 

 추월당(秋月堂)

 

 염불삼매(念佛三昧)는 그 자취가 아직도 남아 있으니, 네 개의 돌을 포갰던 것이 차례로 차츰 작아 갑니다.

 본래부터 스스로 천연(天然)이어늘 무엇 때문에 새기고 쪼으옵니까?

 바위 언덕에 홀로 우뚝 서셨다가 차츰 그 이웃을 얻었나니, 세 노인이 정답게 무생(無生)을 이야기하는 것도 또한 즐거우시지 않겠읍니까?

 삼가 사뢰옵나니 부디 많이 드시옵소서.

 



[1], 정언(正言) ·· 벼슬이름. 조선시대 사간원(司諫院)의 정六품 벼슬.

[2], 희황(羲皇) ·· 중국 신화에 나오는 태고의 천자(天子), 복희 씨.

[3], 촉룡(燭龍) ·· 종산(鐘山)의 신명(神名).

[4], 운붕(雲鵬) ·· 대붕(大鵬).

[5], 한사(寒士) ·· 가난한 사람.

[6], 명부(明府) ·· 현령(縣令).

[7], 보타(寶唾) ·· 아름다운 글귀. 또는 명언(名言).

[8], 달 속의 계수나무 ·· 과거에 급제하는 것.

[9], 도룡(屠龍) ·· 용을 희롱하는 것. 세상에서 쓰이지 않는 재주.

[10] 11, ()과 막() ·· 담막(淡漠)은 욕심이 적고 조용한 상태.

 

[12], 원추(鵷鶵) ·· 봉황새의 한 가지.

[13], 체리(體履) ·· 건강.

[14], 근정(斤正) ·· 밝게 살펴서 바로 잡음.

[15], 산인(散人) ·· 벼슬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사는 사람.

[16], 오마(五馬) ·· 五馬作隊. 행군하는 말의 대오.

[17], 나경(蘿逕) ·· 담쟁이 ?쿨이 우거진 오솔길.

[18], 임하(林下) ·· 산()

[19], 이언(邇言) ·· 속된 말. 여기서는 자기의 말을 낮추어서 한 말.

[20], 곡성(曲城) ·· 형세의 변화에 따라 사물에 잘 응하는 것.

[21], 풍색(風色) ·· 날씨. 여기서는 편지 보내는 사람의 근황(近況).

[22], 조주() ·· 사람보기를 청하는 것. 또는 소제를 하고 손님을 기다림.

[23], 노능(盧能) ·· 六조 혜능(慧能)선사

[24], 도필(刀筆) ·· 옛날 중국에서 종이가 나오기 전에 죽통(竹筒)에 글씨를 쓰던 붓과 오자(誤字)를 깎아 내던 칼. 여기서는 글을 잘하기 위해서 추고를 일삼는 것을 뜻함.

[25], 시축(尸祝) ·· 신주(神主)와 제문(祭文).

[26], 준조() ·· 제사 때 술을 넣는 그릇과 고기를 괴는 도마.

[27], 할팽(割烹) ·· 살코기를 짤라서 삶는 것. 요리.

[28] 삼교(三敎) ·· 유 · 불 · 선(儒佛仙).

[29], 이루(離婁) ·· 이주(離珠), 중국 고대 사람. 백보(百步) 밖에서도 털끝을 잘 분간했다는 사람. 눈 밝은 사람.

[30], 장백(匠伯) ·· 대목(大木)의 우두머리.

[31], 조술(祖述) ·· 스승이나 조상의 도를 이어 받아서 서술하여  밝힘.

[32], 재아(宰我) ·· 宰予.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문인. 子는 子我.

[33], 서여(緖餘) ·· 본업(本業) 이외에 하는 일.

[34], 오언(烏焉) ·· 오자(誤字)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35], 서자(西子) ·· 서시(西施). 여기서는 「서시봉심(西施捧心)」의 뜻. 즉 같은 행위라도 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경우에 따라서 효과가 다른 것을 뜻함. 옛날 서시(西施)는 가슴이 아파 가슴에 손을 대고 아픔을 참으려 얼굴을 찡그렸다. 이를 본 추한 여인이 자기도 가슴에 손을 대고 얼굴을 찡그리니 더욱 추악하여 사람들이 놀라 달아났다고 한 고사(古事)에서 온 말.

[36], 백장대사(百丈大士) ·· 백장 회해(百丈懷海)선사 청규(淸規)를 만들어 선승(禪僧)의 기강을 바로 잡았다.

[37], 단문(?) ·· 단월(?). 신도.

[38], 십도(十度) ·· 십바라밀(十波羅蜜).

[39], 부차(浮槎) ·· 뗏목.

[40], 우로(愚老) ·· 늙은이가 스스로를 낮추어 한 말.

[41], 정위(精衛) ·· 해변에 사는 까마귀와 비슷한 새. 옛날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에 빠져 이 새가 되었다. 언제나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날아다 동해를 메우려 했다는 고사가 있음.

[42], 유촉(遺躅) ·· 옛 자취.

[43], 휘비(翬飛) ·· 궁전의 아름답고 훌륭한 모양.

[44], 니구(尼丘) ·· 공자가 태어난 곳. 그래서 공자를 가리키는 말.

[45], 구해(九垓) ·· 九천의 밖. 또는 나라의 끝.

[46], 영우(靈祐)는 백장 회해(百丈懷海)의 법사. 위산(潙山)에 절을 세우고 선을 지도하고 중생을 교화하기 四十년. 종풍(宗風)을 크게 드날렸다. 때문에 위산영우(潙山靈祐)라 함.

[47], 삼명(三命) ·· 주()나라의 관제(官制)로 대국(大國)도는 차국(次國)의 벼슬().

[48], 적취(積翠) ·· 푸른 산의 형용. 여기서는 靑山.

[49], 공수(公輸) ·· 춘추시대 노 나라의 명장(名匠).

[50], 만수(曼殊) ·· 문수사리(文殊師利).

[51], 조혁 휘비(鳥革翬飛) ·· 새가 날개를 편 것 같고 꿩이 나를 것 같다. 궁전이 아름답고 훌륭함을 나타내는 말.

[52], 현포(玄圃) ·· 곤륜산(崑崙山)위에 있다고 하는 신선의 거처.

[53], 안씨(顔氏)는 안회(顔回). 그는 춘추 노나라 사람. 항상 대로 만든 그릇()에 밥을 담아먹고 하나의 호로병()에 물을 담아 마셨다.

[54], 유자(孺子) ·· 어린 아이.

[55], 탁영(濯纓)과 탁족(濯足) ·· 물이 깨끗하면 갓 끈을 씻고 더러우면 발을 씻음. 세족을 떠나 초연함.

[56], 우우(友于) ·· 형제.

[57], 웅경조신(熊經鳥伸) ·· 선인(仙人)의 도인법(導引法)의 하나. 조신(鳥伸)은 새와같이 고개를 쭉 펴는것. 웅경(熊經)은 곰이 앞발을 들어 나무를 짚고 서서 숨을 들이쉬는 것과 같은 방법.

[58], 설령(雪翎) ·· 날개짓이 눈처럼 흰 것.

[59], 감겁(減劫) ·· 사람이 목숨이  무량한 때로 차츰 적어지는 겁.

[60], 백업(白業) ·· 선한 업. 또는 일.

[61], 부자(夫子) ·· 공문(孔門)의 제자가 공자를 가리켜 이같이 불렀으므로 공자를 가리킴. 스승을 일컫는 말.

[62], 곡굉(曲肱) ·· 청빈낙도(淸貧樂道). 하두 가난하여 베개가 없이 팔을 베고 누어 자는 것에서 온 말.

[63], 영귀(詠歸) ·· 교외의 경치를 감상하며 시를 읊으면서 돌아옴.

[64], 언우() ·· 「언」은 이가 들어난 것. 「우」는 충치. 충치가 들어난 큰 입.

[65], 포대() ·· 「布袋」. 후량(後梁)의 고승. 늘 지팡이 끝에 포대를 매고 다녔는데 그 속에  그가 필요한 물건이 들어 있었다.

[66], 청광(淸狂) ·· 지나치게 청빈한 것.

[67], 비사(毘舍) ·· 인도의 사성계급(四姓階級)중 농 · 공 · 상(農工商)에 종사하는 서민계급.

[68], 천발(薦拔) ·· 관()에 추천하여 발탁하는 것.

[69], 기이() ·· 백살.

[70], 조감(藻鑑) ·· 사람이나 사물을 감별하는 훌륭한 감식(鑑識).

[71], 인계(忍界) ·· 사바세계.

[72], 열 가지 일(十事) ·· 十선().

[73], () ·· 임금의 말씀.

[74], () ·· 조박(糟粕).

[75], 두 사람 다 주 나라 말기 사람. 양주는 이기설(利己說), 묵적은 겸애설(兼愛說)주장, 맹자는 사설(邪說)이라고 배척했다.

[76], 연표(連鑣) ·· 말()의 자갈을 이음.

[77], 광언(狂言) ·· 도리에 계합한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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