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대장경 제82권

천경집(天鏡集) 서문

oṃ maṇi padme hūṃ 2026. 2. 27. 23:47

 천경집(天鏡集)

 

 서 문

 

내가 불경을 읽을 때 그 말이 六경()과 달라서 四방을 돌아보나 아득하기만 하여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오직 게송(偈頌)만은 우리 유가(儒家)의 시가와 같아서 읽어 보면 곧 기뻐하면서 一종의 어리석은 생각을 조금 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의 제자로서 게송에 근원하여 시가삼매(詩家三昧)에 침투한 자가 六조() 이래로 계속 뇌락(磊落)하였고 우리 동방에 이르러서도 대대로 그런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 그 도()에 있어서는 같지 않으나 시도(詩道)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세상에서 비방하는 이들은 혹은 [1]진량(津梁)이 또한 피로하다고 한다. 더구나 비단 같은 말이 그 구업(口業)을 따라 몇 겹의 안()을 범함이라 함에랴?

 대개 저 세존(世尊)이 조음(潮音)을 내고 아난과 가섭이 번갈아 찬탄하여 게송으로 유전하고, 보리 명경(菩提明鏡)도 또한 六조()의 사화(詞華)인즉, 그것이 어찌 기어(綺語)의 범안(犯案)이며, 진실로 만일 연려(緣慮)를 짓는 것이 없다면 또한 도피안(到彼岸)에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함월 선사 해원(涵月禪師海源)은 청허(淸虛)의 적파(嫡派)로서 환성당 지안(喚惺堂志案)의 문에 놀면서 그 종문(宗門)의 묘한 이치를 다 얻고는 학성(鶴城)의 석왕사(釋王寺)에서 포교하고, 입실(入室)한지 四十여년에 공()과 색()을 다 깨치고 원융(圓融)하고 자재(自在)하여 그 종지를 듣고 그 묘리를 전한 이가 수천인이었다.

 그는 수증(修證)의 여가에 시문(詩文)에 관여하여 비록 그 말은 아훈(雅馴)하지 못하였으나, 스스로 얻은 취미와 조예의 높음을 알기에 족하였으니 대개 천재였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뇌묵당 등린(雷默堂等麟) 및 그 문도 영제(瀛濟)가 그 원고를 모아 출판하려고 학성(鶴城)의 부아(府衙)로 나를 찾아와 그 책의 서문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간략함을 취하여 받아들이면서 말하기를 「그 스님의 도는 내가 말하는 그러한 도는 아니다.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의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 길에 있어서는 같으므로 그 때문에 나는 스님의 시를 언급하는 것이다」하였다. 내가 아는 그 스님의 시에 대해서는 그 스님이 인편에 보낸 편지에 「시는 선()과 같다. 선은 깨쳐 들어감에 있고 시는 신해(神解)를 귀하게 여긴다」하였다.

 이 한 마디 말을 보아도 그 정진의 공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니 참으로 삼매의 투득(透得)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스님 같은 이는 저 집의 혜휴(惠休)와 도림(道林)이리라.

 신사년 중추에 학성 부백(鶴城府伯)은 향설헌(香雪軒)에서 쓴다.



[1], 진량(津梁) ·· 나루터의 다리. 부처님이 중생을 고뇌에서 구하고 깨달음의 경지에로 인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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